1804년 12월 2일 노트르담 대성당서 열린 ‘나폴레옹 대관식’[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2-11-28 09:12
  • 업데이트 2022-12-22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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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속의 This week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프랑스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거행된 대관식에서 나폴레옹 1세가 황후에게 관을 씌워주고 있다. 자료사진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가로 길이가 10m에 달하는 압도적 스케일로 관람객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다. 1804년 12월 2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열린 황제의 대관식을 그린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이다.

그런데 왜 황후에게 관을 씌워주는 장면일까. 사실 이날 나폴레옹은 교황이 씌워줘야 하는 왕관을 빼앗아 스스로 자기 머리 위에 올렸다. 자신이 교황의 권위를 초월하는 존재임을 만천하에 과시하고 싶었던 것이다. 충성심 강한 궁정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는 혹시나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이 장면 대신 나폴레옹이 부인 조제핀에게 관을 씌워주는 순간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그려냈다.

프랑스령 코르시카섬 출신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1769~1821)는 15세에 입학한 파리 육군사관학교에서 사투리를 쓰는 촌놈으로 놀림을 받기도 했다. 포병 소위로 임관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왕당파의 반란을 진압하는 데 큰 공을 세우며 두각을 나타냈고, 27세에 이탈리아 원정군 사령관으로 발탁돼 전투를 승리로 이끌며 인기가 치솟았다. 1799년 쿠데타로 제1통령에 올랐고, 5년 뒤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아 35세의 나이로 황제에 즉위했다.

정복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하며 승승장구하던 그는 영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영국과의 통상을 금지하는 대륙 봉쇄령을 내렸는데 러시아가 이를 어기자 1812년 6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에 나섰다가 참패하며 몰락의 길로 들어선다. 1814년 대프랑스 동맹군에게 파리가 점령당한 뒤 엘바섬으로 추방당했다가 이듬해 탈출해 재집권했지만,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면서 백일천하에 그쳤고 남대서양의 외딴 섬 세인트헬레나에 유배됐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며 유럽을 제패했던 영웅은 1821년 52세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국민으로부터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꼽히는 나폴레옹의 사망 200주년을 맞아 지난해 프랑스에서는 그의 공과에 대한 논쟁이 뜨거웠다. ‘나폴레옹 법전’을 펴내 법률적 토대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내려오는 고등 교육제도와 금융시스템을 정비하는 등의 업적이 있지만,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목숨이 희생당했고 노예제도를 부활시키고 성차별주의자라는 비판도 받는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전 “소설 같은 나의 생애여! 내가 죽으면 나에 대한 연민이 물결칠 것이다”라고 했다. 승리와 패배, 진보와 퇴행을 오갔던 나폴레옹의 인생만큼이나 그에 대한 평가는 양극으로 엇갈린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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