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는 한국독립 헌신한 선교사, 난 귀화해 변호사 키우는 훈련사”[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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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16 09:11
업데이트 2022-12-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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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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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데이비드 린튼 한동대 한동국제법률대학원 교수가 최근 대학원 1층 도서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학생들이 국내외 어느 로펌에서 일하든 업무를 거뜬히 감당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실제 업무환경 속에서 교육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동훈 기자



■ M 인터뷰
- ‘독립유공자 후손’ 데이비드 린튼 한동대 로스쿨 교수

1895년 조선에 온 외고조부
교회 · 학교 · 병원 건립 구슬땀
1910년대 교장 역임 증조부
호남 최초 만세운동 이끌어

미국서 변호사 된 뒤 한국귀화
로펌 거쳐 지금은 교수 재직
졸업생들 국제변호사로 양성
선대 생각하면 책임감 느껴


포항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데이비드 린튼(한국 이름 인대위·51) 한동대 한동국제법률대학원(한동로스쿨) 교수는 미국 변호사 출신으로 특별귀화자다. 그는 1895년 조선 시대부터 5대에 걸쳐 한국에서 생활하며 깊은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린튼가(家)의 구성원이다. 그는 10여 년 전부터 한동로스쿨에서 다양한 법 주제를 가르치고 있다. 특히 창업·기업투자·기업 인수·국제계약 관련 내용을 학생들에게 실무 위주로 지도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스타트업 창업가이자 자문인, 그리고 투자자이기도 하다. 한동로스쿨은 아시아 유일의 미국식 로스쿨로, 국내 법학전문대학원과 달리 졸업생들은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특별귀화는 한국에 특별한 공로가 있는 외국인에 대해 법무부가 국적취득 요건을 완화해주는 제도다. 린튼 교수는 독립유공자 후손이라는 점 때문에 2014년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의 가족은 선교사로 한국에서 대(代)를 이어 종교·교육·의료 등 분야에서 폭넓은 활동을 하고 있다.

외고조부 유진 벨(1868∼1925) 목사는 1895년 조선에 들어와 평생 교회와 학교, 의료시설 건립에 헌신했다. 증조부인 윌리엄 린튼(1891∼1960) 박사가 교장으로 있던 군산영명학교에서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인 군산 3·5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참여 인원이 3만7000여 명에 달했고, 이후 전북지역에서 28차례에 걸쳐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된 촉매제 역할을 했다. 국가보훈처는 린튼 박사를 ‘2022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미국인이 독립유공자로 선정된 건 린튼 박사가 처음이다. 앞서 정부는 2010년 한국독립운동을 미국 사회와 교계에 널리 알린 공로로 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린튼 박사는 한남대 설립위원장과 초대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에도 열성적이었다.

또 조부 휴 린튼(1926∼1984) 목사는 전라도에서 수백 개의 시골·섬 교회를 세운 외국인 선교사와 한국인 목사들로 구성된 팀을 이끌었고, 시골에 결핵치료센터와 직업학교를 설립했다. 그는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으로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사망했고, 이는 국내 구급대원과 구급차 산업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아버지 데이비드 역크 린튼(73)은 직접 지은 전남 순천집에 살면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다. 작은아버지 스티븐 린튼(72) 박사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교수직을 사임하고 유진벨재단을 설립해 북한 결핵 환자 치료를 돕고 있다.

린튼 교수는 유창한 한국말로 “가족의 한국 활동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선조들을 포함해 한국에 온 기독교 선교사들의 사역(使役)이 ‘사회복음’ 또는 ‘사회복지’로 재해석되고 있는 경향을 애통해하며 “가족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고 유·무형의 유산을 보존하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에서 성장한 그는 1993년 뉴욕 컬럼비아대를 휴학하고, 2년 동안 서울대에서 한국어와 철학을 배웠다. 그는 한국어를 효과적으로 배우기 위해 서울 관악구 신림동에서 한국인 친구 2명과 함께 생활하며 다른 외국인들과의 만남을 자제했다. 그는 “방은 좁았고 온수도 나오지 않았지만 이들과 함께했던 소박한 삶은 내 생애 두 번 다시 얻지 못할 것”이라며 “이러한 경험이 한국말을 익히고 한국문화를 배우는 데 도움이 됐다”고 기억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졸업하고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있는 비영리재단과 워싱턴DC에 있는 주미 한국대사관,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회사 등에서 일했다. 이어 3년간 로스쿨에 다니며 미국 연방대법원 항소소송전문 부티크 로펌에서 인턴으로 근무했으며 미국 법무장관 사무실 업무를 보조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지만 보장된 직장이 없었다. 그는 앨라배마주 대법관 후보자 선거운동 총괄직 제안을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다. 그는 “후보가 승리할 경우 그의 전임 변호사 자리를 약속받았다”며 “다행히 그가 승리해 앨라배마주 대법원에서 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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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튼 교수는 2006년 3월 앨라배마주 대법원에서 짧은 휴가를 얻어 리더십 인스티튜트라는 재단법인의 다른 전문가들과 함께 서울에서 1주일간 진행된 세미나에서 청소년 리더십 및 정치공학 트레이닝을 지도했다. 당시 해당 세미나를 수강한 학생 중에는 개원한 지 4년 된 ‘스타트업’인 한동로스쿨의 미국인 교수진도 있었다. 그는 “당시 한동로스쿨이 지향하는 방향과 잠재력이 흥미로워 도와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학생들이 실무 경험과 더불어 이력서에 올릴 가치 있는 경력을 쌓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갓 졸업한 한동로스쿨 졸업생들을 앨라배마주 대법원의 인턴으로 채용했다. 이때 시작한 파트너십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덕분에 수십 명의 한동로스쿨 학생과 동문들이 계속해서 이 기회를 누리고 있다. 그는 또 한동로스쿨 졸업생들이 한국에서 사내 외국변호사 시장을 석권할 잠재력을 지녔다고 생각하고 대학 측이 기업 법무와 관련된 선택과목을 더 많이 가르치도록 권유했다. 이를 돕기 위해 그는 2008년에 한동로스쿨에서 최초로 한국 기업 법무 수업을 개설해 가르쳤다.

린튼 교수는 2007년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와 국내 ‘빅 5’ 로펌 중 하나인 율촌에 합세하며 한국에 정착했다. 그는 율촌에서 부동산, 투자 등 다양한 분야의 법률 자문과 국제 분쟁 등의 업무를 담당하는 팀에서 일하며 20억 달러가 넘는 기업 인수·합병(M&A)을 이끌기도 했다. 그는 또 로펌의 해외 로스쿨 인턴 프로그램을 맡고 여러 명의 새 파트너 변호사들을 채용하기도 했다. 그는 “율촌은 국제변호사로서 역량을 개발하기에 좋은 곳이었다”며 “회사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고 중요한 일이 많았으며 선임 파트너 변호사들에게서 많은 지지를 받았다”고 말했다.

2011년 그는 한국 최대 엔터테인먼트·미디어 회사인 CJ ENM에 해외법률팀을 신설하기 위해 율촌을 떠났다. CJ ENM 재직 중 그의 팀은 두 번이나 국내 최고의 사내법무팀으로 인정받았다. 그때부터 그는 벤처 캐피털(VC) 자금 지원을 받는 스타트업 공동 창업, 기업가·투자자 자문 등 다양한 비즈니스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 중이다. 그는 그러면서 한동로스쿨 학생들을 가르치며 졸업생들이 국내외 기업, 로펌에 취직하도록 지속해서 돕고 있다. ‘스타트업 법률 액셀러레이터’는 그의 최근 프로젝트 중 하나다. 그는 “실제 업무환경처럼 교육하며 이를 위해 한국과 미국 간 업무계약서 및 소송 판례 등을 찾는다”며 “학생들이 이렇게 ‘훈련’받아야만 국내외 어느 로펌에서 일하든 거뜬히 감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린튼 교수는 “한국이 개척자와 같았던 과거 선교사들과 현재의 창업가가 지닌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앙트레프레너(entrepreneur·기업가)적인 마음을 가질 때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동로스쿨은…

아시아 최초의 미국식 로스쿨… 하버드·스탠퍼드 출신 변호사들이 교수


데이비드 린튼 교수가 재직 중인 한동대 한동국제법률대학원(한동로스쿨)은 아시아 최초 미국식 로스쿨로 올해 개원 20년을 맞았다.

한동대는 글로벌시대를 선도할 국제 법조인 양성을 목표로 로스쿨을 설립했다. 한국법을 가르치는 국내 법학전문대학원과 달리 미국법과 국제법을 100% 영어로 교육하고 있다. 학사 수료자들이 전공과 관계없이 미국 변호사가 되려면 이 로스쿨에 응시할 수 있다. 3년 과정으로 입학 정원은 50명이다. 재학 기간 로펌, 기업 법무팀, 정부기관, 비정부기구(NGO) 등에서 인턴십 활동을 하며 이론적 지식을 실무에 반영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교수진은 미국 하버드대, 스탠퍼드대, 컬럼비아대 등 출신 총 16명으로 미국에서 수년간 실무경험을 갖춘 미국 변호사들이 주축이다. 졸업생에게는 미국 로스쿨 졸업증과 같은 개념인 J.D 학위를 주며 졸업 후 1년 동안 현지 교육과정을 거쳐 미국 여러 주(州)의 변호사시험에 응시한다. 이를 위해 미국 로스쿨과 같은 강도 높은 교육을 하며 미국변호사협회(ABA)의 인증기준을 충족도록 하고 있다. 특히 미국의 변호사 지망생들과 경쟁하기 위해 법작문을 2년 과정으로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한동로스쿨에 따르면 올해까지 졸업생 545명이 워싱턴DC주 등 미국 8개 주의 변호사시험에 합격했다. 전체 졸업생 750명 중 합격률이 무려 72.7%에 이를 정도로 미국 변호사 배출의 산실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국내뿐만 아니라 미국, 중동 등의 현지법인 및 해외파견 형태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또 직접 로펌을 설립하기도 한다. 한동로스쿨 관계자는 “통상·무역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외국법 전문가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며 “이들은 미국법에 대한 이해와 영어구사 능력을 높이 평가받으며 세계 곳곳에 진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학생들은 국제인도법 모의재판 경연대회에서 2019년부터 올해까지 4년 연속 우승했다. 올해는 지난 10월 성균관대에서 열렸으며 국제적십자위원회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법무부, 외교부, 국방부가 후원했다. 이 대회는 전시와 유사한 무력 충돌 상황에서 발생하는 인도적 문제를 두고 법률적 접근과 논쟁을 하는 것으로, 인도법의 중요성을 재확인하기 위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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