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12월 열흘간 ‘크리스마스의 기적’ 흥남철수작전[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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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2-12-19 08:55
업데이트 2022-12-2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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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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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흥남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갑판을 가득 메운 피란민들. 1950년 12월 23일 1만4000명을 태우고 흥남부두를 출발한 빅토리호는 25일 크리스마스에 거제도에 도착했다.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47명의 선원을 태우고 함경남도 흥남항에 도착한 미국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레너드 라루 선장은 쌍안경으로 비참한 광경을 보았다. “피란민들은 이거나 지거나 끌 수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항구로 끝도 없이 몰려들었고, 그들 옆에는 놀란 병아리들처럼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압록강과 두만강 인근까지 진격했던 국군과 유엔군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불리해지자 후퇴를 결정한다. 빅토리호가 흥남항에 도착했을 때, 12월 15일부터 열흘 동안 190여 척의 선박을 동원해 병력 10만 명과 피란민 10만 명, 군수물자 35만t 등을 철수시킨 ‘흥남철수작전’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피란민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라루 선장은 군수품을 모두 버리고 피란민을 최대한 많이 승선시키라고 명령했다.

포탄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오고 빅토리호는 흥남부두에 남은 마지막 배였기에 선원들은 한 명이라도 더 태우기 위해 한국말 “빨리빨리”를 즉석에서 배워 외쳤다. 하역용 팔레트에 사람들을 태운 후 크레인으로 들어 올려 화물칸의 맨 밑바닥부터 빼곡하게 채우고 마지막엔 갑판 위까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6시간에 걸쳐 정원 60명인 화물선에 230배가 넘는 1만4000명이 탑승했다.

23일 출발한 배 안에는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에 난방은 물론 물과 음식도, 화장실도, 의료품도 없었다. 거센 파도와 바람이 일수도 있고 북한군이 깔아놓은 기뢰도 언제 터질지 몰라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새 생명이 다섯 명이나 태어나 선원들은 아기들을 ‘김치1’부터 ‘김치5’로 부르며 보살폈다.

드디어 성탄절인 25일, 출발 사흘 만에 거제도 장승포항에 도착했다. 선원들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갑판 입구를 열었을 때 위를 바라보는 수많은 얼굴이 보였다. 추위와 굶주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희생자는 한 명도 없었다. 빅토리호는 가장 많은 인명을 구조한 배로 2004년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미국으로 돌아간 라루 선장은 수사(修士)가 돼 뉴저지주 뉴턴의 세인트폴 수도원에서 살다 2001년 87세로 세상을 떠났다. 미국에서는 그를 가톨릭 성인으로 추대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크리스마스의 기적’이라 불리는 그 항해에 대해 라루 선장은 이렇게 회고했다. “어떻게 그렇게 작은 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태우고 한 사람도 잃지 않고 그 끝없는 위험들을 극복할 수 있었는지, 하느님이 그날 우리 배의 키를 잡고 계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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