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극복 아닌 적응하는 것 … 왼발 하나로 내 삶을 찾았다”[M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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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06 08:58
업데이트 2023-01-06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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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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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범식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경산시지회 지회장이 지난해 12월 경북 경산시 사동 사무실에서 왼쪽 발가락으로 휴대전화를 만지고 있다. 그는 “손발이 없어도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가 있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 M 인터뷰 - 이범식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경산시지회장

감전사고로 두팔·오른다리 잃어
컴퓨터 배우면서 사회 적응 노력
사업 실패 등 겪으며 다시 좌절도

47세 늦깎이 대학생으로 새 도전
왼발로 필기해 공부… 박사학위도
대학 강사생활에 기관대상 특강

중증장애인 실업 무심한 사회서
일자리 제공 매개하는 일 하고파
장애인도 ‘함께사는 세상’고민을


경산 = 박천학 기자 kobbla@munhwa.com

“장애는 극복하는 게 아니라 순응하고 적응하며 살아내야 할 또 다른 삶의 형태입니다. 장애인은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자신의 장애에 맞춰 변화시키려 해서도 안 됩니다. 자신이 변해야 하고, 필요하면 노력하고 ‘쟁취’해야 합니다. 손발이 없어도 고난을 이겨낼 수 있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경북 경산시 사동 이범식(59)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경산시지회 지회장. 그는 20대 때 사고로 두 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어 거듭된 절망의 시기를 보내다 40대 후반에 늦깎이 대학 공부를 시작해 50대에 박사학위를 받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힘들고 지치고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은 많은 사람에게 새 출발을 할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전하는 1급 지체장애인이다. 지난해 12월 7일 지회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성한 왼쪽 발가락과 오른발 의족으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발바닥으로 마우스를 굴리고 있었다. 발가락으로 안경을 쓰고 휴대전화 벨이 울리면 받고 메시지를 능숙하게 보내기도 했다.

이 지회장은 군 전역 후 1985년 10월 전기회사에 취직한 지 1개월도 채 안 돼 전봇대에 올라가 작업하던 중 감전사고를 당해 두 팔과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당시 나이 21세. “손발이 없어서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됐어요. 병원에서 1년여 동안 고통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다 자살까지 생각했어요. 하지만 ‘적응’을 생각하며 퇴원하자마자 왼발로 글을 쓰고 식사를 하는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동작을 하나하나 익혔어요.”

그리고 그는 양팔이 없는 자신을 위한 일자리나 사업 아이템을 찾아 거리를 배회하던 중 컴퓨터가 삶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확신하고 6년여 동안 밤낮없이 배웠다. 그는 전문가 수준이 되자 컴퓨터와 관련된 회사에 취업했다. 하지만 1년여 만에 실직하고 이어 손댄 컴퓨터 판매사업은 쌓이는 적자로 파산했고 결국 그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역경의 연속인 세월을 보내던 그는 47세가 되던 2011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늦깎이 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해 장애 복지 분야에 관한 공부를 시작한 것. 옛 대구미래대 사회복지과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가다 2013년 대구대 산업복지학과에 편입해 직업 재활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집에서 버스를 2번 갈아타고 하차 벨을 입으로 누르며 1시간 넘는 거리를 악착같이 다녔어요. 학점을 맞추기 위해 계절학기를 수강했고 교수님의 양해를 구해 앞에 앉아 왼발로 책에 줄도 긋고 필기도 했지요. 30년 가까이 차이가 나는 학생들보다 2∼3배 열심히 공부했어요.”

이후 2017년 8월 대구대 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그해 9월 같은 대학 일반대학원 재활과학과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2021년 2월 그는 ‘중도장애인의 외상 후 성장 모형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이학박사 학위(재활과학과 직업재활전공)를 받았다. “삶을 살던 중 장애를 입는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안겨주며 인생의 전환점으로 작용하지요. 하지만 장애는 성장을 위한 것으로, 나의 삶을 긍정적으로 분석해 논문을 냈어요.” 그는 “11년의 기나긴 공부를 하게 된 것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할 때 아내가 조언한 게 계기가 됐다”며 “왼발 하나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게 지금 생각해도 대견스럽고 특히 이러한 학위를 고대했던 아내에게 큰 선물이 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해 2학기부터 1년 동안 문경대학교 재활상담복지과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또 법무부 교정위원, 대구구치소 인성교육 전문강사 등을 맡아 장애인 권익 향상과 복지 증진사업, 재소자 인성교육에 힘쓰고 있다. 대학, 기초자치단체, 공무원교육원, 중·고교 등 다양한 기관에서 특강도 하고 있다. 그는 그동안 31개 기관에서 5000여 명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여러분들은 현실 속에서의 삶이 저보다 나을 것입니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격차가 있을 겁니다. 이런 조건에서 엄청난 변화나 시도는 아니더라도 더 나아질 수 있는 시도를 해보십시오. 1∼2년 안에 신수가 훤해지고 팔자가 쫙 피는 그런 기적은 없어도 여러분의 인생은 이전과 분명히 달라질 것입니다. 그것이 공부든, 가족을 향한 사랑이든, 봉사활동이든, 취미생활이든 말입니다. 특히 할 수 있는데 하지 않는 것과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다릅니다.” 그는 특강 도중 이러한 내용을 강조한다고 했다.

이 지회장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 다양한 분야의 기관 등을 찾아가 자신의 삶을 녹인 강의를 하면서도 중증장애인 취업 문제에 대해 적잖게 고민했다. “정부가 청년 실업률은 절실히 따지면서 중증장애인 실업률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요. ‘사회’라는 톱니바퀴에 있는 이들이 좌절하지 않도록 해야 해요.” 그는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사회적 가치를 갖고 살아가는 방법은 ‘직업’을 갖는 것으로, 특히 중증 장애인에게는 절실하다”며 “청년 실업률을 두고선 갑론을박할 정도로 매우 신경 쓰면서 정작 장애인 실업률을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고 특히 중증 장애인 실업률은 통계에서 배제될 정도”라고 아쉬워했다. “정부는 고용촉진 및 직업 재활법의 중증 장애인 의무고용 등 우대 조치를 강화해 이들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하면서 살아가도록 도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그는 아울러 장애인 시설 문제도 꼬집었다. 그는 “장애인 시설에 고용된 직원 중에는 장애인은 거의 없고 대부분 비장애인”이라며 “중증 장애인들이 관련 시설에도 많이 취업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중증 장애인 일자리지원센터를 설립해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에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하는 매개역할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특히 오스트레일리아의 목사이자 연설가인 닉 부이치치처럼 ‘보통 사람’의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인생을 바탕으로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특강을 많이 하고 싶다고 했다. “닉 부이치치는 유전 질환인 ‘해표지증(phocomelia)’으로 짤막한 왼쪽 발 외에 양쪽 팔과 오른쪽 다리가 없이 태어났어요. 그는 어린 시절 우울증을 견디지 못해 삶을 끝내려다 가족을 떠올리고 행복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해요. 그리고 대학 졸업 후 세상을 돌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지요.”

이 지회장은 마지막으로 이 말도 전하고 싶어 했다. “세상은 더불어 살아가야 하고 이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수용하고 좋아하는 것입니다. 육체적 장애인이라고 해서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보다 모든 사람이 함께 사는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고민하고 찾으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범식 지회장이 왼쪽 발가락과 오른발 의족으로 컴퓨터 자판을 치고 있다. 김동훈 기자



어려운 이웃 무료 컴퓨터 교육 … 20년째 ‘사랑의 PC보내기 운동’ 이어와

■ 이범식 지회장은…

이범식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경북 경산시지회 지회장은 발로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며 7년 동안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무료로 컴퓨터를 가르쳤다. 그는 감전사고로 양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후 고통과 절망의 나날을 보내다 1992년쯤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그는 “1년여 동안 학원을 겨우 다니며 밤낮없이 컴퓨터와 씨름해 성한 왼발과 의족을 낀 오른발로 컴퓨터 수리를 완벽하게 해냈고 6년여 만에 1분에 170타를 쓸 정도로 실력을 갖추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기술로 2003년부터 7년 동안 장애인과 저소득층에 일자리를 제공하는 컴퓨터교육장을 아내와 함께 운영하며 매년 300여 명을 대상으로 무료로 교육했다.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안마사 청년, 공사장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쳐 장애인이 된 40대 인부, 화상을 입은 60대 청각장애인 등 20대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나이와 경력의 어려운 이웃이 대상이었다. 그가 컴퓨터교육장 운영과 함께 시작한 ‘사랑의 PC 보내기 운동’은 올해로 20여 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는 그동안 컴퓨터를 기증받아 수리해서 700여 대를 저소득층과 장애인에게 보냈다.

그는 올해로 16년째 ‘사랑의 햅쌀 나누기 운동’도 하고 있다. 경산지역 각 기관·단체에서 기부받은 쌀 1000㎏을 10㎏짜리 100포대에 나눠 담아 지역에 사는 어렵고 힘든 장애인을 위해 나눠주는 행사다.

그는 올해 초 ‘양팔 없이 품은 세상’(케이원미디어)이라는 제목의 책을 냈다. 책에는 감전사고 이후 인생의 쓰라린 실패와 재기, 박사학위 취득 등 그의 파란만장한 삶과 앞으로의 목표 등이 한 편의 드라마처럼 녹아 있다. 그는 책에 ‘양팔과 한쪽 다리가 없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고 단지 그 상황을 힘들게 하는 요소일 뿐이며 오히려 나를 더 강하게 채찍질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원동력이었다’고 적었다.

그는 2003년 한국교통장애인협회 경산시지회를 창립했다. 협회는 전국 150개 시·군·구에 지회를 두고 있다. 그는 “매년 교통사고로 전국에서 약 35만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으며 머리나 척수를 다쳐 중증장애인이 되는 심각한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다”며 “교통사고 예방과 교통장애인의 권익 보호를 위한 사회환경 개선과 정책 마련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지회장은 2014년 대구대 ‘행복 인재상’을 수상했다. 이 상은 봉사활동, 자기계발, 효행 등 모범이 되는 활동으로 학교의 명예를 높인 학생들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또 2015년에는 ‘제35회 장애인의 날’ 보건복지부 장관상, 2016년에는 교도소 수형자 교화활동 등 교정행정에 이바지한 공로로 법무부장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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