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한잔 생각나~는 밤’… 그 사람이 같이 있는 듯 불러보세요[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01-09 08:59
  • 업데이트 2023-01-0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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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임창정 ‘소주 한잔’

한때 백만 장 팔면 뭐 하나. 더 이상 부르지 않는 노래들은 박물관에서 잠자는 신세나 다름없다. 2022년 한 해 동안 노래방에서 가장 많이 부른 노래 순위가 알려졌는데 ‘사랑은 늘 도망가’ ‘소주 한잔’ ‘Tears’ ‘가시’ ‘취중고백’ 순이었다. 5등까지 제목만 붙여서 읽으면 상투적인 멜로 한 편이 뚝딱 완성된다. 사랑이 떠난 후 술잔에 눈물이 가시처럼 돋아나서 뒤늦은 후회. 불현듯 박인환(1926∼1956)의 시 ‘목마와 숙녀’ 일부가 재생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음악동네에선 사랑과 이별이 교통사고만큼 빈번하다. ‘사랑이란 게 참 쓰린 거더라/ 잡으려 할수록 더 멀어지더라/ 이별이란 게 참 쉬운 거더라’(임영웅 ‘사랑은 늘 도망가’ 중) 사람들은 외로워서 만나고 괴로워서 헤어진다. 처음에 ‘그대 없이는 못 살아’로 시작해서 결국은 ‘그대 먼 곳에’로 끝난다. 헤어진다고 깔끔하게 그 자리가 비워지는 것도 아니다. 외로움이나 괴로움보다 끈질긴(끈적거리는) 감정이 그리움이다. ‘그리움이 쫓아 사랑은 늘 도망가/ 잠시 쉬어가면 좋을 텐데’ 노래마을에 사랑보다 짝사랑이 많은 덴 나름 이유가 있다. “용기가 부족할 뿐 저 사람도 날 좋아할 거야” 수줍은 착각도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면에서 본다면 가성비가 높은 편이다.

소찬휘의 ‘Tears’는 아무나 부를 순 있어도 아무데서나 부를 순 없는 노래다. 엄청난 고음부가 성대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그래도 악을 쓰며 부르는 건 ‘잔인한 여자라 나를 욕하지는 마’를 외칠 때의 통쾌함 때문일 것이다. 스스로 규정한 잔인함의 정체는 도입부에 제시된다. ‘아무 일도 내겐 없는 거야/ 처음부터 우린 모른 거야’ 사랑을 저지르고 그 사랑을 애써 부인하는 태도는 어쩌면 뺑소니보다 잔혹하지 않은가.

버즈의 ‘가시’는 상처받은 청년들의 합창으로 제격인 노래다. ‘차라리 앓고 나면 그만인데 가시처럼 깊게 박힌 기억은 아파도 아픈 줄 모르고’ 가슴을 후벼 판다. 그러나 노래가 끝난 후 그 고통의 근원이 누구로부터 시작됐는지 한번 성찰해볼 여지가 있다. ‘제발 가라고 아주 가라고 애써도 나를 괴롭히는’ 그 가시는 사실 내가 심고 키운 것이다. 괴롭히는 사람 없냐고 물었을 때 자신을(목적어) 괴롭히는 사람만 기억하는 게 인지상정이다. 네가 괴롭히는 사람(주어)이 될 수 있다는 건 왜 상상조차 못 하는가. 버즈의 ‘가시’는 매번 이걸 취조한다.

밤의 노래방은 고해성사가 아니라 취중고백의 장소로 적합하다. ‘친구들 만나서 오랜만에 술을 좀 했는데 자꾸만 니 얼굴 떠올라’ 김민석(멜로망스)의 ‘취중고백’엔 ‘눈물이 날 만큼 원하고’ 있으면서도 ‘아냐 안 취했어 진짜야’라고 거듭 말하는 담백한 이중성(?)이 나온다. 급기야 가면을 벗고 ‘맨날 술이야 널 잃고 이렇게 내가 힘들 줄이야’(바이브 ‘술이야’ 중) 울부짖는다.

음악동네 양조장에선 사랑과 눈물을 섞어서 술을 빚기도 한다. ‘용서할 수 없는 사람 용서하려 또 마시고/ 취하면 무너지지만 눈물의 술로 나를 달래네’(심수봉 ‘눈물의 술’ 중) 사랑과 눈물의 관계는 이미 1960년대부터 예측되었다.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나훈아 ‘사랑은 눈물의 씨앗’ 중, 1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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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정의 ‘소주 한잔’은 20년 전(2003)에 나온 노래다. 듣는 노래보단 부르는 노래로 일찌감치 자리 잡았다. ‘술이 한잔 생각나는 밤/ 같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좋았던 시절들 이젠 모두 한숨만 되네요’ 스코틀랜드의 조지 밸런타인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위스키브랜드가 아직도 유명하듯이 약간은 징징대는(?) 임창정의 21년산 ‘소주 한잔’도 숙성발효를 거듭할수록 생명력이 깊어질 것이다.

술은 마셔야 술이고 노래는 불러야 노래다. 아무리 좋은 노래도 불러야 내 것이 된다.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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