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에 담긴 ‘레몬나무 숲’… 패션, 향기로 완성되다[Premium Life]

  • 문화일보
  • 입력 2023-01-11 08:56
  • 업데이트 2023-01-1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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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남성적인 향기가 매력적인 구딸 ‘파리 믹스드(MIXED)’ 퍼퓸 컬렉션. 구딸 제공



■Premium Life - 프랑스 대표 향수브랜드 ‘구딸’

쿠키 냄새 맡기 좋아하던 ‘구딸’
그라스 유명조향사 소사나 만나

칵테일 연상시키는 ‘아드리앙’
장미·배 더한 ‘쁘띠 쉐리’제조

향수·병·포장까지 전부 수작업
40개국 부티크로 명성 이어가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프랑스 남동부의 지방 도시 엑상프로방스에서 태어난 아닉 구딸(1945∼1999)은 제과점을 운영하던 부모 밑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제과 명인(名人)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구딸은 쿠키와 초콜릿의 고소한 향을 맡으며 제품을 손님들이 보기 좋게 진열하는 일을 틈틈이 했다. 구딸에게는 맛과 향이 좋고 예쁜 과자를 구별할 줄 아는 재능이 있었고, 이런 유년 시절의 경험은 그녀가 세계적인 조향사이자 프랑스를 대표하는 향수 브랜드 ‘구딸(Goutal)’을 만든 인물로 성장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구딸의 재능이 가장 먼저 꽃피운 분야는 음악이었다. 그녀는 피아노에 재능을 보여 이미 16세 때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전국 단위 음악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녀는 곧 영국 런던에서 ‘오페어(au pair·집안일을 도와주고 숙식을 제공받는 제도)’ 생활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세계적인 패션 사진가로 주목받던 데이비드 베일리를 만났다. 피아니스트가 될 뻔한 구딸은 그에게 발탁돼 패션모델로 10년간 일하게 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딸의 설립자인 아닉 구딸의 젊은 시절 모습.



음악과 패션을 즐기며 젊은 시절을 보낸 구딸은 30대에 접어들어 파리로 돌아와 ‘폴라브릴(Folavril)’이라는 작은 앤티크 숍을 연다. 폴라브릴은 프랑스 작가 보리스 비앙이 쓴 소설 ‘붉은 잔디’의 등장 인물로, 주인공은 아니지만 극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여성 캐릭터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대도시에서의 삶을 살고자 했던 그녀의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어느 날 구딸의 친구가 화장품에 향을 넣는 일을 그녀에게 부탁했고, 당시 향수 산업의 본고장이었던 프랑스 그라스(Grasse)로 떠나면서 구딸은 조향사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라스에서 구딸은 당대의 유명한 조향사였던 앙리 소사나를 만난다. 당시 조향사는 전문학교에 들어가 고난도 교육을 받고 학위를 받아야 하는 직업이었지만, 구딸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본 소사나는 구딸에게 조향의 기본을 알려주게 된다. 1977년 파리로 돌아온 구딸은 자신이 운영하던 폴라브릴에서 소소하게 향수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만들던 향수는 딱 세 종류였다. 그녀의 앤티크 숍 이름이기도 했던 ‘폴라브릴’과 아직도 구딸에서 출시하는 향수인 ‘패션(Passion)’, 그리고 지금까지 구딸을 대표하는 향수인 ‘오 드 아드리앙(Eau d’Hadrien)’이다. 구딸의 ‘아름다운’ 재능은 순식간에 프랑스 전역으로 알려졌고, 1981년 프랑스 파리의 벨샤스(Bellechasse)가에 있는 서점 한쪽에 첫 번째 향수 부티크를 내면서 향수 브랜드 ‘구딸’이 탄생하게 된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닉 구딸이 딸 카밀 구딸을 안고 있는 모습.



구딸의 첫 번째 향수이자 시그니처 제품인 ‘오 드 아드리앙’은 구딸의 첫 작품으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 이탈리아의 편백나무, 레몬나무가 늘어선 테라스를 연상케 하는 향과 시트러스향, 칵테일의 톡톡 튀는 신선하고도 세심한 향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구딸이 딸인 카밀 구딸에게 선물한 향수인 ‘쁘띠 쉐리(Petite Cherie)’는 어머니와 딸 사이의 무한한 사랑을 담았다. 장미와 배의 향기를 바닐라와 머스크가 포근히 감싸 부드러운 보살핌이 연상되는 향으로 구딸의 아이콘으로 꼽힌다. 구딸은 지금까지도 수작업으로 향수와 향수병, 포장을 만든다.

쁘띠 쉐리의 탄생에서 보듯 브랜드의 정체성인 ‘사랑’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구딸의 여성 조향사들은 “우리가 경험한 수많은 순간과 함께했던 향기가 삶의 기억이 돼 나의 이야기가 된다”고 강조한다. 구딸은 50대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사랑이 담긴 향은 딸인 카밀 구딸에게 이어지고 있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구딸은 지난해 9월 서울 성동구 한 카페에서 ‘향기로 기억되는 삶의 순간(Scents Of Your Life)’을 주제로 브랜드 캠페인을 열었다. 구딸 제공



구딸은 지난 2011년 아모레퍼시픽에 인수된 이후에도 전 세계 4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자체 부티크를 운영하며 명품 프랑스 향수로서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여다경 역할을 맡은 배우 한소희가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아이콘인 쁘띠 쉐리는 일명 ‘한소희 향수’로도 불리며 젊은 여성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지난해 9월 구딸은 브랜드 정체성을 강화한 새로운 브랜드 로고와 패키지를 선보이면서 ‘향기로 기억되는 삶의 순간(Scents Of Your Life)’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누군가에게 처음으로 선물을 받거나 혹은 선물했던 향기의 기억을 떠올려 보게 한다.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향수 브랜드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구딸은 ‘프랑스 최고 향수점(French High Perfumery)’에 이름을 올리고 끊임없이 발전하면서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을 담은 향기를 이어가고 있다.

김호준 기자 kazzyy@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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