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는 미덕이고 가난은 악덕”...조선에도 재테크 권한 책이 있다고?

  • 문화일보
  • 입력 2023-01-22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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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안대회6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가 ‘해동화식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8세기 조선의 남인 지식인인 이재운이 쓴 ‘해동화식전(海東貨殖傳)’은 조선 유일의 재테크 책으로 평가받는 고전이다. "부는 미덕이고, 가난은 악덕"이라는 과격한 주장을 통해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누리는 방법을 모색한다. 책은 상업을 중시하는 ‘중상주의적 경영론’에 다양한 재주로 거부(巨富)가 된 실존 인물들에 관한 ‘상인 열전’을 덧붙인 형식으로 짜였다. 재물을 불리는 이야기라는 뜻의 ‘화식전’은 중국 역사가 사마천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다. 동쪽 바다, 즉 해동은 조선을 일컫는 용어임을 고려하면 ‘조선판 화식전’쯤 되는 셈. 지난 2019년 ‘해동화식전’을 번역해 출간한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를 최근 만났다. 그는 ‘해동화식전’에 대해 "조선 사회의 근간을 부정하는 불온하고 위험한 재테크 책이었다"며 "‘화식전’의 형식을 계승했으나 관점과 사유는 철저히 독창적"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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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선 양반과 사대부가 농사를 짓거나 장사로 돈 버는 일을 금기시했습니다. ‘군자는 의로움을, 소인은 이익을 추구한다’는 유학 이념이 지배한 사회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해동화식전’은 유학 이념에서 출발한 이 구도를 정면으로 배반했습니다. 가난은 자긍심을 가질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라는 다소 과격한 주장까지 펼치면서 조선의 ‘도덕적 명제’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안 교수가 말하는 ‘도덕적 명제’란 가난은 선(善)이고 부는 악(惡)이라고 보는 당대 인식을 뜻한다. 이재운은 이 명제를 뒤집어 부의 축적은 개인적 안위를 보장할 뿐 아니라 사회에도 도움이 되는 도덕적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나라가 부과한 세금을 거부하지 않는 충성스러움, 이웃에게 금전을 빌리지 않는 청렴함은 오직 부자만이 갖출 수 있는 미덕이라는 것이다.

안 교수는 부와 도덕관념을 연결지은 해석과 함께 풍족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기본적 욕망으로 인정한 것 역시 당시로선 보기 힘든 파격적 사유라고 했다. 이재운에게 부는 ‘누구나 좋아하는 생선회와 구운 고기’ 같은 것이었다. 그는 "갓난아기가 막 태어나서 응애응애 울고 있을 때 젖을 물리면 바로 울음을 그친다"며 "나이가 100살에 이르러 금방이라도 숨이 끊길 듯이 골골하는 늙은이도 자손들이 고기와 죽을 내어오면 기쁜 표정을 짓는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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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운은 조선 사회의 양반들을 향해 ‘당신들도 생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라’고 외쳤지만, ‘해동화식전’이 모로 가도 돈만 벌면 만사형통이라고 주장한 건 아니다. 안 교수는 18세기 조선과 달리 돈을 향한 욕망을 부끄럽게 여기기는커녕 돈이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하는 오늘날에는 ‘의로움이 있는 곳에 부가 따라온다’는 메시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해동화식전’에서 중상주의적 경영론에 이어 나오는 상인 열전이 바로 이런 메시지를 담고 있다"며 "상인 열전에 기록된 실존 인물들은 악착 같이 돈을 벌었지만, 풍족해진 뒤에는 어려운 사람을 돕고 선행을 베풀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상인 열전에서 ‘이재(理財)의 달인’ 이진욱은 인삼을 매점매석해 10배의 이익을 남겼고, 국제무역 상인을 대상으로 한 고금리 대출로 떼돈을 벌었다. 구두쇠를 일컫는 ‘자린고비’의 유래가 된 충청도 인물 자린급(煮吝給)은 끼니 때마다 밥을 한 술 뜨고 들보에 매단 반찬을 올려다보는 극단적인 절약으로 부자가 됐다. 한양 청파동의 과부 안 씨는 셈이 밝은 늙은 종에게 재산 관리를 전담시켰다. "이재운은 부자의 자격 조건으로 과감하게 결단하는 ‘용기’와 함께 주변을 품어 안는 ‘자애로움’과 ‘신의’를 지목했는데, 상인 열전 속 거부는 모두 이 요건에 부합하는 인물들이었습니다."

‘해동화식전’은 혁명적인 텍스트였으나 당대 지식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서자 출신으로 높은 벼슬에 이르지 못한 이재운이 주류 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고독한 지식인’이었던 탓이 크다. 아울러 ‘화식전’의 논리와 구조를 채택해 ‘해동화식전’이 18세기 조선판 ‘화식전’ 정도로 평가절하된 것 역시 텍스트를 진지하게 들여다 볼 기회를 앗아갔다. "이 책이 당대 지식 사회를 뒤흔들었다면 조선은 자본주의적 가치가 존중 받고 근대 사회로 빠르게 전환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조선 왕조 내내 ‘안빈낙도’에 안주하는 선비가 존경받는 사대부의 전형으로 여겨지면서 선조들은 서양 침투가 본격화한 대한제국 시기에 이르러서야 중상주의에 눈을 떴습니다."



나윤석 기자
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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