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초면 뇌 도달하는 ‘설탕의 맛’… 패스트푸드에 지배당한 현대인[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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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2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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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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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식 중독
마이클 모스 지음│연아람 옮김│민음사

‘담배보다 강한’ 즉석조리식품
우리 뇌의 제동 기능 망가뜨려
하루 섭취 열량의 75% 차지

패키지·맛만 살짝 바꿔도 열광
가공음식 중독 따른 질환 많아
직접 요리·포장 등 해법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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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번성의 원동력이었던 음식 중독이 최근 40년 동안 우리에게 큰 해를 끼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미국 저널리스트 마이클 모스가 쓴 ‘음식 중독’은 이런 질문을 던지며 시작한다. 모스는 2010년 햄버거 제조 실태 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은 인물. 전작 ‘배신의 식탁’에서 패스트푸드 체인의 비윤리적 실상을 고발한 저자는 ‘중독의 과학’으로 가공식품 업계를 정조준한다. 다양한 뇌과학 실험을 통해 우리가 달고 맛있는, 빠르고 편리한, 다양하게 골라 먹는 음식에 점점 중독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더 많은 음식을 원하도록 설계된 것은 인류 진화의 결과임을 인정하면서도 미각과 신진대사를 교란하는 현대식단의 문제를 한발 물러서 사유하게 하는 책이다.

어떤 물질이 뇌를 흥분시켜 상습적 행동을 유발하는 힘은 뇌에 도달하는 물질의 속도와 관련 있다. 더 빨리 도달할수록 뇌를 지배하는 영향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다. ‘속도’는 담배에 포함된 니코틴을 헤로인만큼 중독성 강한 물질로 만드는 요인이다. 실제로 담배 한 모금을 빨면 입속 니코틴은 10초 만에 폐의 혈액을 거쳐 뇌로 전달된다. 그런데 혀의 단맛 수용체에 감지된 설탕이 뇌를 활성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0.6초. 거의 모든 가공식품에 첨가된 설탕은 담배보다 약 스무 배 빠른 속도로 뇌를 자극하는 셈이다. 설탕과 지방이 결합하면 뇌 활성화가 한층 빨라진다. 일반적인 가공식품 스낵이 설탕 57%, 지방 24%로 구성된 건 우연이 아니다. 초콜릿 케이크와 햄버거의 냄새만 맡아도 도파민이 분비되는 것 역시 ‘추동하는 뇌’의 힘이 ‘억제하는 뇌’의 절제력을 무력화하는 뇌 과학에서 비롯되는 현상이다. 저자는 “한때 먹는 것은 오로지 위(胃)에서만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었으나 최신 뇌과학은 식욕이 위가 아닌 뇌에서 비롯되는 욕구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패스트푸드와 즉석 조리식품은 기업들이 뇌의 제동 기능을 망가뜨리는 가장 강력한 요소가 속도임을 간파한 결과다. 현대인들은 제품 그대로 혹은 잠깐만 가열하면 먹을 수 있는 가공식품으로부터 하루 평균 열량의 75%를 섭취한다. 식품에 들어가는 화합물질은 각 기업이 운영하는 이른바 ‘풍미 공장’에서 다양한 배합과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다. 따로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최대한 아껴라’는 진화적 요구에도 부합한다. “허기를 느끼는 순간부터 한 끼 식사를 끝내기까지 뇌의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난다. 눈 깜짝할 새 충동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인간은 속도만큼 다양성에 열광하는 존재다. 한 연구진은 피실험자에게 맛이 똑같아도 10가지 색상의 초콜릿을 준 경우 6가지 색상만 제공했을 때보다 훨씬 많은 양을 먹는다는 것을 밝혀냈다. 기업들이 보다 많은 제품을 출시하는 데 열을 올리는 건 당연한 수순. 실제로 1980년 미국 대형마트엔 6000개 식품이 진열돼 있었으나 40여 년이 흐른 현재 식품 수는 3만3000개로 폭증했다. 이들 가운데 완전히 새로 개발한 제품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은 기존 제품에 다른 색을 입히고 포장을 달리하거나 맛을 살짝 추가했을 뿐이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함께 가공식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기업들은 앞다퉈 ‘고단백 저칼로리’를 표방한 다이어트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탄산음료를 시작으로 빵과 유제품, 고기와 냉동 피자 등 거의 모든 제품의 다이어트 버전이 시중에 나와 있다. 저자의 표현처럼 우리를 살찌게 하는 식품도, 날씬하게 만드는 식품도 생산해 이중으로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기업들은 또 식품의 유해성을 문제 삼는 소송에 맞서기 위해 영양학자와 법조인을 동원해 방어 논리를 개발하고 있으며, ‘더 건강한 음식’을 만드는 연구를 지원하면서 한편으로는 중독성을 시사할 위험이 있는 연구에선 발을 뺀다.

책은 “기업이 움직이지 않으면 소비자부터 바뀌어야 한다”며 치솟는 비만율과 각종 질환의 주범인 가공식품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한 소소한 해법을 제안한다. 한 연구에 따르면 스마트폰의 배경 화면을 흑백 모드로 바꾸는 것만으로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 저자는 이 연구를 인용해 화려한 포장지에 담긴 쿠키를 유리병에 옮겨 놓으면 덜 먹음직스럽게 보일 거라고 조언한다. 이와 함께 스파게티 소스처럼 간단한 음식을 집에서 직접 만드는 습관은 요리에 소비하는 시간이 곧 음식에 대한 탐닉을 억제하는 노력임을 깨닫게 하는 실천이라고 말한다.

당장 오늘부터 식단을 다시 짜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효과 만점’의 책이지만, 너무 방대한 내용을 담느라 초점이 흐려진 대목이 일부 있는 건 아쉽다. 다이어트 역사를 개괄하기 위해 1800년대까지 거슬러 오르거나 기업들의 유전자 연구 현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단락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가공식품의 문제를 부각하느라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먹는 게 아니라 자신이 먹는 것을 좋아한다”며 자유의지를 축소 해석하는 서술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392쪽, 1만80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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