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서 빛난 비범한 별… ‘역주행 사건’을 일으키다[주철환의 음악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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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1-30 08:55
업데이트 2023-01-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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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윤하 ‘사건의 지평선’

평범하게 생겨서 고민이라는 스타 지망생에게 슬기롭게 응답한 분이 계셨다. “조물주가 평범한 얼굴을 많이 만드신 이유가 뭐겠니.” 웃으면서 덧붙이길 “하늘의 별이 잘생겨서 그 자리에 있냐. 어두워지면 빛을 내니까 별이라 대우하는 거지. 너도 너의 색깔로 세상을 밝혀보렴.” 뒷줄에 섰던 평범한 내게도 그분의 말씀은 빛처럼 다가왔다. 그날 일기장에 외우기 쉽게 적어두었다. ‘평범한 얼굴 그러나 비범한 생각.’

생각하지 않고 말부터 내뱉는 사람이 늘고 있다. ‘생각이 많은 건 말이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야’ 이렇게 조곤조곤 시작하는 노래는 제목부터 심상찮다. 하기야 평범한 제목이 많은 건 (신이 아닌) 당신이 그런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렇다 쳐도 이따금 당신에게 생각이 범람한다면, 그걸 말로 토해내지 않고는 화가 나서 못 견딜 지경이라면 5분쯤 침묵한 채 제방 뒤에 서서 과학과 철학과 예술이 뒤엉킨 이 노래를 곱씹어보는 건 어떨까.

‘여긴 서로의 끝이 아닌 새로운 길모퉁이 익숙함에 진심을 속이지 말자’(‘사건의 지평선’ 중) 진심 뒤에 본심을 숨긴 사람이라면 뜨끔할 것이다. 도대체 이 노래를 부른 사람은 누구이며 이런 가사를 쓴 사람의 의도는 무엇일까. 비범한 제목(‘사건의 지평선’)만 듣고 노래채집가는 처음에 ‘범죄의 재구성’을 연상했다. 흔히 말하는 구성의 3요소가 인물, 사건, 배경인 데다가 좀 오글거리긴 해도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범죄는 상대의 마음을 훔치는 일이라 여겨서다. ‘아름다운 죄 사랑 때문에 홀로 지샌 긴 밤이여’(조용필 ‘그 겨울의 찻집’ 중)

얼마 전에 예기치 못한 곳에서 ‘동백 아가씨’를 소환한 사건이 있었다. 그 노래는 한산도 작사 백영호 작곡 이미자 노래인데 이 세 분의 조합으로 1960년대에 숱한 히트곡이 생산됐다. ‘지평선은 말이 없다’도 그런 곡들 가운데 하나다. ‘그리워 불러보는 이름이건만 지평선은 말이 없다 대답이 없다’ 여기서 지평선은 그리운 대상(어머니와 고향)을 가로막는 무심한 존재다. TV 수상기가 희귀하던 시절에 이 노래가 히트한 건 순전히 라디오 덕이었을 거다. 그렇다면 21세기 윤하가 일으킨(?) 지평선 역주행사건은 어떻게 사람들의 가슴을 후벼 팠을까.

라이브에 강한 윤하는 현장에 출동했다. 성냥개비 하나로 활활 태울 수 있는 청춘의 숲(대학 축제)에서 ‘사건’은 시작됐다. 그러나 열창과 떼창의 주파수엔 한계가 있다. ‘VJ특공대’(KBS2TV)가 출현할 때 벌써 ‘만인에 대한 만인의 촬영’은 허용됐으나 이제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송’ 시대다. 누구나 생방송(직캠영상)으로 눈앞의 현실을 찍어 나를 수 있다.

별은 하늘에도 있고 무대에도 있고 가슴에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꿈꾸는 ‘별의 순간’은 이별의 순간을 향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트윈폴리오 윤형주의 번안가요 ‘두 개의 작은 별’(Zwei Kleine Sterne)은 1973년에 발표됐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얼마나 사이좋은 그림인가. 하지만 세상엔 ‘이 별도 나의 별 저 별도 나의 별’ 이런 욕심쟁이가 많아지니 큰일이다. 그런 사람들에겐 영화 ‘이벤트 호라이즌’(사건의 지평선)의 대사를 들려주자. “이제 돌아갈 시간이야. 내가 알기론 지옥으로(And now…It is time to go back. I know, to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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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복이 전화위복이라는 건 성실한 자에게 복음 같은 얘기다. 코로나19로 적막했던 젊음의 거리가 분주해지기까지 윤하는 ‘문을 열면 들리던 목소리 너로 인해 변해있던 따뜻한 공기’(‘사건의 지평선’ 중)를 포기하지 않았다. “팬들의 어깨 펴지는 소리 들려오는 것이 참 행복한 일이다. 오늘도 세상을 구하러 가자.” 이 얼마나 건강한 출사표인가. 모든 끝에는 시작이 붙어있다. 희망은 이미 달력에 표시돼 있다. 13일의 금요일 다음은 14일의 토요일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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