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환갑 남편 손잡고 정원을 거닐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2-17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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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숙 수필가, 괴산 농부

남편의 환갑 맞아 찾은 여행지
보길도 세연정·다산초당 추억

돌담 하나와 소나무 한 그루도
옛 주인 닮은 것 같아 반가워

백련사 동백 숲이 우리를 반겨
우리 집 꽃밭 마지막 직장이길


어느 해보다 단풍이 아름다웠던 지난가을, 우린 떠났다. 수고한 당신 떠나라는 대형 광고판 카피처럼 새벽에 일어나 남도행 고속도로를 내달렸다. 아껴두었던 보길도 세연정, 다산초당과 백련사, 순천만 국가정원, 빼곡한 3박 4일 일정으로 남도 정원을 걸었다.

환갑을 맞은 남편 돌잔치는 핑계였고, 최근 영혼까지 탈탈 털린 50대 후반 아줌마의 지친 피로를 덜기 위한 위로 여행이었다. 시나리오는 그런대로 근사했다. 남편 환갑 생일에 맞춘 아내의 퇴직이 이렇게 맞아떨어지다니.

돌이켜보면, 가끔 다녀온 여행들은 늘 각자였다. 20년 전 귀농을 한 후론 여름휴가 한번 변변하게 다녀온 적이 없다. 누군가 휴가를 받아 우리 집으로 오면 그이를 앞세우고 근처 계곡으로 나들이 가서 너럭바위에 누워 오수를 즐기고 오는 게 전부였다. 해외여행도 같이 간 적 물론 없다. 도시에 있을 땐 해외 출장 간 남편 대신 나는 두 아이를 24시간 케어하는 독박 육아를 담당했고, 시골에 와서는 남자들만 무리 지어 선진국 농업을 보러 해외를 나가니 한 번도 손잡고 공항을 나서 본 적이 없다.

이렇게 밍밍하게 살아서 뭘 하나 고민하던 끝에, 지난달 말 다니던 곳에 사표를 던졌다. 일을 만들어서라도 여행 좀 다니고 책 좀 보고 그림 그리고 영화도 보고 싶어서. 농부의 아내가 무슨 직장을 다녔냐고 물어보신다면, 우여곡절 전설 같은 20년 농사 얘기에 나의 밥벌이 앵벌이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시골 정착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아야 설명이 된다.

20년 전 두 아이는 초등학생이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고, 남편의 농사 자립은 답이 보이지 않았다. 때론 지쳐갔다. 그리하여 농부의 아내는 농사짓는 틈틈이 귀농 상담, 체험 농장, 생협 매장 일들을 마다 않고 계약직 떠돌이로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 다행히, 시간은 화살같이 흘러 아이들은 금방 자라 우리 곁을 떠나갔다. 녀석들이 자신들을 시골에 방목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해 줄 때 입가에 웃음이 달린다. 학원 한 번 안 가고, 학습지 한 번 안 풀었으니 아이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고된 농사일에 투입돼 일손을 거들며 용돈 벌이를 자처했던 아이들이라 사회에 나가서도 일을 무서워하는 밉상은 아닐 터이니 자식 농사는 그런대로 선방한 셈인가? 그래도 6월 마지막 주엔 감자 캐러 달려와 주는 아이들이 참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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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은 얼마나 어정쩡한 나이인가? 남편 소원대로 우리 문전옥답 500평 밭에 청보리 심어서 푸른 물결 이는 보리밭을 배경으로 아는 사람들 모두 불러서 밥 한 끼 나누는 잔치를 했으면 얼마나 근사했을까? 그것도 우리에겐 넘치는 호사였는지 여름에 남편은 예초기 사고로 다리를 다쳐 서너 달을 꼬박 절름발이로 살았다. 그사이 집안이고 밭이고 모두 풀밭으로 변했다. 농사일은 모두 내 차지였다. 그리하여 우리 집 마당에서 하려던 청보리 환갑잔치는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30년을 함께 살았고 앞으로 30년은 더 살아가야 하기에 중간 점검 차 정원 여행을 함께하자고 내민 아내의 카드는 버림받지 않았다.

남편은 그날로 숙소를 검색하고 맛집을 찾아내고 걷기 좋은 일정을 작은 스케치북에 꼼꼼히 적어 나갔다. 보길도 세연정과 다산초당에 집중해서 그 주변을 걷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리고 그날, 남편 환갑날을 맞아 길을 떠났다. 오, 기대 이상이다. 이곳 괴산의 단풍은 지난번 된서리로 푹 삶겼는데 남도는 단풍이 절정이었다. 우리를 기다려준 쭉 뻗은 가로수 길 노란 은행잎부터 먼 산의 붉은 단풍까지 때아닌 눈 호강에 맛있는 남도 음식은 정원 순례길을 돕는 최고 도우미였다.

정원을 거닐면서, 그 정원을 만들고 거닐었던 옛 주인과 소통해 보려고 노력했다. 돌담 하나도, 정원을 이루는 소나무 한 그루도 모두 주인과 닮아 있다. 발걸음을 느리게 디뎌 보고 툇마루에 앉아 보기도 하며, 햇살이 내려앉은 정자 마루 위를 거닐었을 하얀 옥양목 버선발을 눈 감고 따라 걸어 보았다. 차 한 잔 손에 쥐고 오랫동안 이 공간을 지켜 왔을 따스한 공기와 숨결을 긴 호흡으로 느껴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부족함이 없었다.

정원을 통째로 전세 낸 것처럼 평일 오후 둘이서만 걸어 본 세연정도 평화롭고 좋았다. 그보다도, 깊은 계곡을 따라 숨 가쁘게 올라가 만난 다산초당은 나도 모르게 두 손 모으고 기도하게 만들었다. 등짝에 난 땀이 절로 식고 오싹한 한기마저 느껴지는 촉촉한 정원이다.

다산 선생과 혜장 스님이 차와 학문을 거침없이 나누었을 그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도착한 늦가을 오후, 백련사 차밭에 고즈넉이 내려앉은 조각 햇살은 특수 조명처럼 빛났다. 둘이서 손잡고 걷기에 딱 좋은 오솔길을 서로 부축해 가며 걷다 보니 동백 숲이 우리를 반겼다. 눈물처럼 후드득 지지 않고 몇 송이 남은 동백이 방긋 웃어주며 열심히 살아 보란다. 손잡고 천천히 걸어 내려가란다.

정원이 내 놀이터고 운동장이고 내 직장이니 맨날 나와서 풀을 뽑는다는 아흔아홉 살 어느 할머니 얘기처럼, 우리 집 정원이 내 마지막 직장이 되기를 소망한다. 남편은 농사짓다가 밭에서 죽으면 참 좋겠다고 하는데, 나는 꽃밭에서 풀을 뽑다가 죽으면 최고의 죽음이지 않을까. 농담이 진실이 되는 날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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