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포기하지 않는가… ‘그때’의 상처가 ‘지금’ 의 영광이 될 수 있으니까[주철환의 음악동네]

  • 문화일보
  • 입력 2023-02-27 09:12
  • 업데이트 2023-02-27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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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심수봉 ‘비나리’

스테퍼니 조앤 앤젤리나 제르마노타(Stefani Joanne Angelina Germanotta)가 누구 본명인지 맞힌다면 ‘음악동네 퀴즈왕’에 도전장을 내밀어보라. 정답은 ‘레이디 가가(Lady GaGa)’다. 이 예명이 어디서 유래했는지까지 안다면 예심은 가볍게 통과할 것이다. 정답은 퀸(Queen)의 노래 ‘라디오 가가(Radio GaGa)’.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를 봤다면 무대와 객석이 하나 되어 “라디오 가가. 라디오 구구”를 합창하던 장면이 되살아날 것이다.

사투리 억양이 센 부장님이 어느 날 내게 물었다. “가가 가가”. 레이디 가가와 라디오 가가를 합친 말? 아니다. 예전에 가요제 나왔을 땐 몹시 순박하게 보인 출연자가 어느 순간 화려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을 때 던진 질문이다. 표준어로 바꾸면 ‘그 아이가 그 아이야?’다. 좀 더 상세하고 친절하게 번역(?)하면 ‘지금 이 사람이 그때 그 사람인가’이다.

가요계엔 ‘그때 그 사람’이 ‘지금 이 사람’이 된 경우가 비일비재다. 어쩌면 인생과도 닮았다. 지금 우는 사람이 나중에 웃고, 지금 웃는 사람이 나중에 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공항에서 수하물 노동자로 일하던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가 프레디 머큐리로 거듭나는 걸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확인하지 않았나.

그때나 지금이나 오디션은 인생 축소판이다. 지금 레전드 자리에 앉아서 자신의 노래로 경연하는 후배들을 지켜보는 가수의 심정은 표정으로 드러난다. 저쪽은 얼마나 간절하고 절실하며 이쪽은 얼마나 애틋하고 기특할까. 하지만 상처 없는 영광은 없다. 고난의 시기를 견뎠고 또 겪고 있기에 불타는 경연장은 그야말로 인생극장을 방불케 만든다.

특별석에 앉은 두 사람을 유심히 본다. 심수봉은 2회 대학가요제(1978)·주현미는 2회 강변가요제(1981) 출신이다. 당시 심수봉의 지원서에 적힌 본명은 심민경이었고 약대생이던 주현미는 6인조 대학생밴드 진생 라딕스(인삼 뿌리) 2기의 일원 보컬이었다. 멤버들 이름은 그저 자막으로 몇 초 동안 흘렀을 뿐이다. 하지만 미래를 누가 단언하랴. 가수에게도 노래에도 운명이란 게 있다. 상 하나 못 받은 심민경의 ‘그때 그 사람’은 불후의 명곡이 됐고 장려상을 받은 인삼 뿌리의 ‘이 바다 이 겨울 위에서’는 40년 넘게 박물관 안 음반 속에서 취침 중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그 노래가 잠을 깰지는 누구도 장담 못 한다. 무대엔 부활절이 따로 없으니까.

채널을 돌리다가 ‘벌거벗은 한국사’(tvN STORY)라는 프로를 끝까지 시청한 적이 있다. 과거의 방송분을 살펴보니 부제에 ‘왜’가 거의 들어있다. ‘연산군은 왜 미치광이가 되었나?’ ‘어우동, 그녀는 정말 죽을 죄를 지었나?’와 같은 식이다. ‘왜’와 함께 강연자가 시청자를 옭아매는 접속어가 있는데 그게 바로 ‘그런데’다. 국면전환 때마다 리듬감 있게 등장하는 이 단어에서 나는 뜻밖에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그런데 왜 오래 살아남는가’ ‘그런데 어떻게 전설이 되는가’. 고통이 있고 상처도 많지만 ‘그런데’ 주저앉지 않고 꾸준히 노래 불렀던 그 사람이 전설이 되는 것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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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이다. 비나이다.” 저마다 소망을 품은 출연자 중 누가 전설이 될까. 심수봉의 ‘비나리’엔 소망·운명·상처가 구슬처럼 꿰여있다. ‘하늘이여 간절한 이 소망 또 외면할 거요. 예기치 못했던 운명의 그 시간 당신을 만나던 날 드러난 내 상처 어느새 싸매졌네’. 폴 뉴먼 주연의 영화 ‘상처뿐인 영광’은 원제목이 ‘저 위에 계신 분이 나를 좋아해(Somebody Up There Likes Me)’다. 얼마나 긍정적인가. 멀리 갈 것 없다. 퀸의 ‘라디오 가가’에도 비슷한 낙관이 주문처럼 박혀있다. ‘네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느니(You’ve yet to have your finest time)’.

작가·프로듀서 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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