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 벅 여사, 세상 떠났지만… 인종· 국적 초월한 사랑은 영원[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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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06 09:01
업데이트 2023-03-06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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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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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펄 벅 여사가 혼혈아동과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1967년 경기 부천시에 설립한 ‘소사희망원’에서 아이들과 함께 웃고 있다. 부천펄벅기념관 제공



■ 역사 속의 This week

빈농으로 시작해 대지주가 되는 주인공 왕룽 일가의 역사를 그린 소설 ‘대지’로 잘 알려진 작가 펄 벅은 1892년 미국에서 태어나 생후 3개월 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갔다. 오랜 시간 중국에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쓴 대지는 1931년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가 됐고, 1932년 퓰리처상에 이어 1938년 미국 여성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작가로서 성공에 그치지 않고 인권운동가이자 사회사업가로 많은 활동을 했다. 미국인이었지만 중국에서 자라고 40년을 살아 ‘파란 눈의 동양인’으로 불린 자신을 ‘정신적 혼혈아’로 자처하며 동서양의 벽을 허물고 인류의 복지사회를 이루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1941년 민족 간의 이해와 교류를 위해 ‘동서협회’를 조직했고, 1949년에는 아시아 주둔 미군과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 버려진 혼혈아들을 위한 입양 기관인 ‘웰컴 하우스’를 창설했다. 지적장애를 가진 딸이 있던 그는 7명의 아이를 입양해 정성으로 키웠다. 1964년 혼혈 아동들을 돕기 위해 ‘펄벅재단’을 설립하고 이듬해 한국 지부를 세웠다.

1960년에 한국을 처음 방문한 펄 벅 여사는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1963년 발표한 ‘살아있는 갈대’는 구한말부터 해방 때까지 한 가족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출간 당시 ‘대지 이후 최고의 걸작’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소설 첫머리에 “한국은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라고 표현할 만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친분이 있던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박사가 기증한 경기 부천시 심곡동 부지에 혼혈아동과 전쟁고아를 돌보기 위해 1967년 ‘소사희망원’을 설립했다. 한국에 올 때마다 몇 달씩 머물면서 이곳을 거쳐 간 2000여 명의 아이를 손수 입히고 먹이고 씻기며 보살폈다. 이러한 헌신으로 국민훈장 모란장과 그의 이름 펄(Pearl)의 의미를 따서 ‘최진주’라는 한국 이름으로 서울시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80여 권의 책을 집필했고, 인종과 국적을 뛰어넘은 사랑을 실천했던 펄 벅 여사는 1973년 3월 6일 81세 나이에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조국 미국 다음으로 한국을 사랑한다고 했던 그는 소사희망원 개원식에서 “오늘이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라고 말했다. 그의 박애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6년 소사희망원이 있던 자리에 ‘펄벅기념관’이 세워졌다. 오늘 펄 벅 여사 50주기를 맞아 기념관에서 7일까지 추모 행사가 열린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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