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자원 민족주의’ … ‘땅 밑의 전쟁’ 뜨겁다[Global 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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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07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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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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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섬 소로와코 인근 니켈 광산에서 채굴된 니켈 광석이 트럭에 실려 운반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Global Economy - 희토류 이어 리튬·니켈 패권다툼

세계 10위 리튬 매장국 멕시코
국유화 나서 “美·中·러 손 못대”
볼리비아 등 남미 개발독점 강화

印尼, 니켈판 OPEC 설립 의지
수출금지하며 정제련 산업 육성
“비난 받아도 정책 되돌릴순 없다”

미국, 자국내 리튬 공급망 구축
유럽, 특정국 의존 낮추기 나서
기업들 광산업체 투자 등 분주


우크라이나 전쟁이 전 세계에 끼친 또 하나의 병폐가 천연자원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공급망 혼란을 경험한 전 세계가 앞다퉈 자원 민족주의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특히 희토류 등 일부 금속에 국한돼 오던 자원 민족주의가 수급 불균형을 보이는 리튬·니켈 등 다른 핵심 자원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탄소 중립 기류에 맞춰 산업 질서가 재편되면서 수요가 급증한 전기차·배터리·반도체 등에 사용되는 주요 원자재 확보가 국가 안보로 직결되는 분위기도 이 같은 움직임을 부추기고 있다.

◇“하얀 석유, 리튬은 우리 것” = 스마트폰·노트북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료인 리튬 확보를 위해 각국 간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 확대로 리튬 수요는 2040년까지 40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흰 금속인 리튬은 지난 1년 새 가격이 4~5배 뛰어 이미 ‘하얀 석유’ ‘백색 황금’으로 불린다. ‘리튬 트라이앵글’로 불리는 칠레·아르헨티나·볼리비아를 중심으로 전 세계 매장량의 절반 이상이 중·남미 지역에 몰려있다.

특히 멕시코는 최근 리튬을 국유화하는 법안을 공포했다. 멕시코는 세계 리튬 매장량의 약 2%를 보유한 세계 10위권의 리튬 매장국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리튬의 탐사 및 채굴권을 국가에 귀속시키는 법안을 공포하며 “리튬의 주인은 국가다. 러시아도, 중국도, 미국도 손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리튬은 우리 것(The lithium is ours)’이라는 멕시코 대통령의 외침은 1938년 석유 자원 국유화 당시 멕시코 정부가 내세운 ‘석유는 우리 것(The oil is ours)’이라는 구호를 연상시킨다”고 평가했다.

리튬 매장이 집중된 남미는 일찍이 국유화 및 수출 금지를 통해 리튬 개발 독점을 꾀해왔다. 이미 지난 2008년 볼리비아가 리튬을 국유화했고 칠레는 리튬을 헌법상 ‘전략 자원’으로 명시한 데 이어 조만간 국영 리튬 기업을 설립할 예정이다. 남미뿐 아니다. 지난해 12월에는 리튬의 세계적 매장지인 짐바브웨가 가공하지 않은 리튬의 수출 금지를 발표했다. 모두 에너지·자원 분야에서 국가의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자원민족주의의 확산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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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켈 판’ OPEC 설립 움직임도 = 각종 자원이 풍부한 아시아에서도 원자재 수출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자국 경제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네시아다. 인도네시아는 자국산업 활성화의 일환으로 2020년부터 니켈 수출을 금지했다. 또 올해부터는 구리와 보크사이트 등으로 이를 확대할 계획이다. 이처럼 원자재 수출을 막는 것은 인도네시아 내 정·제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다. 원광 형태가 아닌 국내에서 1∼2차 가공을 통해 관련 산업도 키우고 수출품의 부가가치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게다가 인도네시아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유사한 형태의 니켈 기구 설립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 바흐릴 라하달리아 인도네시아 투자부 장관은 지난해 11월 성명을 통해 “OPEC 같은 니켈 생산국을 위한 특별 기구 설립 준비에 공식 착수했다”며 “호주·캐나다 정부와 만나 기구 설립에 함께할 것을 제안했다”고 밝혔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비록 우리가 다른 나라들로부터 비난을 받더라도 지금의 정책을 되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웃한 필리핀 역시 자국산 니켈에 대해 비슷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특히 필리핀은 자국에서 수출되는 니켈에 대한 10% 세금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 중국은 자국의 희토류 단속에 나섰다. 중국 당국은 핵심 전략 물자 중 하나인 희토류의 정제·가공·이용 기술을 ‘수출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 포함시키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세계 희토류 정제 역량 중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기술 제한에 나설 경우 반도체 등 첨단 부품 시장에 혼란이 불가피하다. 미 디플로맷은 “이들 국가는 자유 무역의 후퇴와 무관하게 자국의 경제 상황을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칠레 북부 아타카마 사막의 염호에서 채굴된 리튬이 트럭에 실려 운반되고 있다. dpa 연합뉴스



◇총성 없는 자원 확보 전쟁 가열 = 주요 자원 생산국들이 수출 통제 및 채굴권 독점에 나서자 신재생·배터리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선진국과 기업들의 자원 확보전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미국은 해외 자원 의존도를 줄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자국 내 리튬 공급망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최근 미 에너지부는 네바다주에서 리튬 채굴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호주기업 아이어니어에 최대 7억 달러(약 9217억 원) 자금 대출을 승인했다. 미국은 자금 지원을 통해 네바다주 리튬 광산에서 매년 37만 대의 전기차를 생산할 수 있는 리튬 확보를 기대하고 있다.

유럽 역시 핵심 원자재 공급망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초유의 에너지 위기를 겪은 이후 러시아발 에너지 쇼크와 같은 사태가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확산하면서다. 특히 유럽연합(EU)은 조만간 중요 광물 원자재 공급망 확보를 위한 ‘핵심원자재법(CRMA)’ 입법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리튬·마그네슘·천연흑연·희토류 등을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특정 국가에 대한 자원 의존도를 낮추고 공급망을 다변화하는 내용이 포함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세계 1위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캐나다의 리튬 채굴 기업 시그마 리튬 인수를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전기차 제조와 배터리를 생산하는 테슬라는 최근 리튬 정제에 손을 댄 데 이어 채굴까지 뛰어들어 전기차 생산 공급망을 통째로 확보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앞서 미 최대 자동차 업체 제너럴모터스(GM)도 캐나다의 리튬 광산 업체 리튬 아메리카스에 6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일본 토요타도 아르헨티나에서 수입한 리튬을 후쿠시마(福島)현에서 가공해 전속 공급하기로 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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