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통찰력 없는 계산기… 미래 예측과 삶 창조는 인간밖에 못해”[파워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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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08 09:27
업데이트 2023-03-08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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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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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철학자 한병철은 거침없이 진행되는 디지털화, 정보 쓰나미의 파괴적인 힘은 이제 정치 분야마저 덮쳐 민주주의적 과정에 막대한 혼란과 장애를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문호남 기자



■ 파워인터뷰 - ‘정보의 지배’로 날카로운 진단… 재독 철학자 한병철

AI는 못 박는 망치같은 기구
사람 머리 깨지않게 잘 다뤄야

우상화하다간 사람이 기계화
생산성 높이는 데만 관심둘 것
생각을 해야 제압당하지 않아

새 시대 열기 위해 ‘예술’ 중요
다른 삶 ‘창조’하는 가치 지녀

요즘‘희망’에 대한 책 쓰는 중
위기의 시대, 새로운 관점 필요


인터뷰 = 최현미 문화부장 chm@munhwa.com

한병철(64)은 일상의 철학자다. 그는 우리가 어렴풋이 느끼지만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일상을 비판적으로 성찰·사유하고 적확한 개념으로 규정해냄으로써 그 실체를 순식간에 드러낸다.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는 인상적인 첫 문장으로 시작해 열광적 반응을 끌어낸 ‘피로사회’(독일 2010년, 한국 2012년 출간) 이후 그는 부지런히 책을 내놓으며 시대의 우울과 성과주의, 나르시시즘과 타인의 추방, 투명한 디지털 감옥에 갇혀 ‘좋아요’를 외치며 스스로를 착취하는 우리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디스토피아적 진실’을 폭로해 일상의 토대를 순식간에 무너뜨리는 듯하지만 이는 그의 말대로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아내기 위한 ‘유토피아적 대항’이다.

거주하는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 전역에서 인기 높은 이 철학자가, 최근 한국을 찾았다. 코로나19 때문에 오랫동안 뵙지 못한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인데, 때마침 신간 ‘정보의 지배’(김영사)가 번역, 출간됐다. 디지털과 데이터, 정보 쓰나미와 처리방식이 어떻게 민주주의에 균열을 내는지 분석한 저작인데 챗GPT가 몰고 온 뜨거운 인공지능(AI) 담론과 논의에 깊고 날카로운 통찰을 던진다.

지난달 28일 서울 광진구 더 클래식 500에서 이뤄진 인터뷰에서 그는 “AI가 예측하는 미래는 진정한 미래가 아니”기에 두려워할 필요도, 지나치게 우상화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철학은 바보처럼 굴기에서 시작된다’는 철학자 질 들뢰즈의 말을 들어 AI는 ‘너무 지능적이어서 바보일 수 없다’는 흥미로운 아이러니도 전했다. ‘생각하기’는 기존의 모든 것과 결별해 ‘바보’처럼 굴며 전혀 다른 곳, 다닌 적 없는 곳으로 도약해야 하는데 AI, 알고리즘, 데이터마이닝은 미리 주어진 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곳으로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시대, 우리는 어디서 어떻게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구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뻗어간 인터뷰는 지금, 이곳 AI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했다.

―최근 챗GPT 때문에 AI가 우리 삶의 많은 부분, 가장 인간적인 예술창작까지 대신할 것이라며 놀라고 흥분하는 동시에 기대만큼 공포도 느끼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과대평가하고 있다. AI는 계산기다. 인간의 사고는 기계적 계산이 아니다. 감정을 수반해야 하고 욕망과 사랑, 희망이 있어야 한다. 그것 없이는 통찰이 없다. 통찰하는 AI, 깨닫는 AI는 없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 사랑을 많이 할수록 인식도 깊어진다. 또 희망이 있어야 미래가 보인다. 희망이 없으면 장님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기계, 희망하는 기계는 없지 않나. 미래의 일을 짐작하고 새로운 삶을 창조해 나가는 건 인간밖에 할 수 없다.”

―생각하기의 시작은 열정, 최초로 발생하는 생각은 소름인데, AI는 소름이 돋지 않고 감동이 없기에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고는.

“사람의 사고는 생명체의 표현이다. 생명이 있어야 사고가 있다. 육체 없이는 사고도 없다. 감정과 이성도 분리됐다고 생각하지만 감정이 없으면 생각도 할 수 없다. AI는 육체가 없으니 소름 끼치는 경험을 할 수 없고 감동도 없다. 생명이 없으면 계산을 할 뿐이다.”

―많은 이들이 챗GPT에 인류의 운명을 묻고, 때론 지혜까지 구하고 있다. 윤리적 문제에 대한 논의도 활발한데.

“AI는 망치처럼 기구다. 망치 없이 어떻게 집을 짓나. 하지만 망치로 못을 박지 않고 사람 머리를 깨면 안 된다. AI도 조심스럽게 사용해야 한다. 인간이 자유로워지도록, 더 좋은 삶을 살도록 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AI로 무서운 일을 할 수 있다. 인간을 지배하기 위해 사용될 수도 있다.”

그는 “AI를 우상화하다 보면 사람 자체도 기계화된다. 계산만 하고 생각을 못 하게 된다”면서 “주의하고, 방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인간은 생각하는 동안 기계에 제압되지 않고, 생각하는 동안 자유롭다”고 덧붙였다.

―지금 그렇게 되고 있나.

“그런 상황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지금 디지털화는 인간을 지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인간을 불행하게 만들고 우울하고 외롭게 한다. 생산성만 높이려 하고, 이를 위해 욕구를 생성한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사고를 못 하게 된다.”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어지러움을 느낀다. 21세기는 ‘허무주의의 시대’라며 이는 진실에 대한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 시대 진리와 진실은 진짜 불가능한가.

“우리는 지금 진리의 세계를 떠나 정보의 세계로 들어왔다. 진리와 정보는 시간성이 다르다. 진리는 영원성이 있지만 정보는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예수님이 나는 진리이고 삶이고 길이라 했듯이 진리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정보는 항상 틀릴 수 있다는 불신이 따라다닌다. 정보를 믿는 사람이 어디 있나. 진리는 불신을 없애고, 방향과 희망과 미래를 주지만 정보의 세계에선 모든 것이 순간적이다. 삶은 파괴되고 생명은 파편화된다. 인간의 삶은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 순간의 반복 속에 삶은 불가능하다. 모든 것이 파편화돼 뿌리내려 살 수 없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자신의 성찰이 ‘희망의 사고, 미래를 여는 사고’라는 철학자 한병철은 요즘 ‘희망’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는 디지털 시대 희망과 행복은 손에 있다고, 행복은 오랜 시간 공들이는 수공예 같은 것이라고 했다. 문호남 기자



“정치는 삶을 더 자유롭게 하기위한 ‘결정’… AI에 맡긴다면 기계독재”

문제 푸는 것에서 끝날게 아니라
담론·숙고·비전 담을 수 있어야

지금의 사회는 ‘좋아요’가 지배
욕망만 채우면 ‘자유롭다’ 착각
저항도 사라지고 혁명도 불가능

행복 ‘손’으로부터 느낄 수 있어
오래 걸리고 가꿔야 하는 수공예
인간을 인간답게 할 완벽한 활동


―신간 ‘정보의 지배’의 독일어판 원제는 ‘인포크라시(Infokratie)’다. 디지털 시대 정보에 기반한 인포크라시가 민주주의를 대체한다고 예견했는데, 스마트폰, 인터넷, 알고리즘과 AI를 통한 ‘정보체제’는 어떻게 민주주의에 거대한 균열을 내는가.

“민주주의는 시간성이 있다. 민주주의는 느리고, 길고 지루하다. 시간이 오래 걸린다. 결정하기 위해서 담론, 토론이 필요한데 정보는 담론을 파편화한다. 예를 들어 AI를 사용해 문제를 풀 수 있지만 정치는 문제를 푸는 것만이 아니다. 삶을 더 자유롭고 좋게 하려는 것이다. AI를 통해 얻을 수 없다. 결정을 기계에 위임하면 그건 인간을 위한 정치가 아니다. 기계의 독재다. 디지털화하면서 커뮤니케이션도 충동, 자극의 커뮤니케이션이 됐다.”

―자극의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작동하나.

“자극과 충동의 시간성과 이성(理性)의 시간성도 다르다. 이성의 시간성은 지속적이고 길다. 충동의 시간은 순간적이다. 트위터에 정치를 맡기면 멀리 보지 못하고 자극적인 말만 한다. 민주주의와 자극적인 말은 상반된다. 정보·디지털화는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우리를 변화시킨다. 어딘가에 불이 나면 보이고 소방차가 오는데, 보이지도 않고 인식도 못 하는 상태에서 바뀌니 무섭다.”

―가짜 뉴스도 정보라고 했는데 어떤 면에서 그런가.

“가짜 뉴스는 정보 사회에서만 있다. 정보사회에선 진리와 거짓이 구별 안 된다. 정보는 흥분을 먹고 자라며 자극을 준다. 가짜 뉴스가 거짓이라고 밝혀져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이미 자극을 줬고, 효과가 났으니. 진실인지 거짓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정보는 질주하며 진실을 지나치고 진실은 정보를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지난날의 ?은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를 넘어, 정치의 종말을 얘기했다. 데이터와 지능적 알고리즘 주도 시스템이 정치를 대체할 것이라고 보는가. 진짜 정치 없이 돌아가는 사회가 도래할까.

“정치는 담론과 숙고, 비전이 있어야 한다. 미래를, 멀리 수평선을 봐야 한다. 정보시대에 순간적인 효과만 내다보면 정치가 안 된다. 짤막짤막해진다. 불이 났다, 불 끄자. 이건 정치가 아니다.”

―디지털 시대, 소통하고 연결할수록 오히려 감시를 받는 투명 감옥에 갇히고 자유롭다고 착각하는 순간 지배가 완성된다고 했는데.

“우리는 여러모로 오웰의 감시국가보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먹고 놀면서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삶을 산다.”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며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에 더 이상 혁명이 불가능하고, 누구도 “이제 더 이상 그만!”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는데, 너무 암울한 전망 아닌가.

“지금 사회는 ‘좋아요’의 사회, 이 시대 지배는 ‘좋아요’의 지배다. ‘좋아요, 좋아요’를 많이 해야 생산성이 높아지고, ‘좋아요, 좋아요’ 하다 보니 편하고 욕망을 충족시킨다. 이렇게 살다 지배를 당한다. 미국 예술가 제니 홀저가 ‘Protect Me From What I Want’라고 했다.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게 힘들다. 내가 싫어하는 것에 저항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에 어떻게 저항하나. 그게 안 보인다. 남이 나를 억압하면 보이는데, 내가 좋아하는 것에 어떻게 저항이 생기나. 그런 의미에서 혁명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지배자는 디지털, 데이터와 정보를 쥔 사람인가.

“이때 지배는 통치자가 없는 지배, 모든 사람에 대한 지배다. 통치자는 자본이다. 마크 저커버그나 일론 머스크도 통치자가 아니라 희생자다.”

―그런 미래에 인간은 노동자가 아닌 놀이꾼이 되고 ‘기본소득과 컴퓨터 게임’으로 사는 삶을 예견했다.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인가.

“노동으로부터 해방되는 놀이가 아니라 지배되는 놀이다. 자기 욕구를 충족시키며 즐기고 먹다 보면, 저항도 없어지고, 그러면서 지배를 받는다. 짐승처럼 자유가 없어진다. 로마시인 유베날리스가 정치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로마 사회를 ‘파넴 엣 키르켄세스(panem et circenses·빵과 경기들)’라고 표현한 것에 대한 근대적 버전이 ‘기본소득과 컴퓨터 게임’이다.”

―쏟아지는 정보뿐 아니라 모두가 자기 자신을 내세우고 자랑하면서도 다른 사람과의 비교 때문에 힘겹다.

“자기를 드러내다 보면 이기적이 되고 우울증이 생긴다. 행복은 타자로부터 오는데, 타자가 없어지면 자기 감옥에 갇히고, 세계가 없어진다. 접속은 많지만 외롭다. 자극만 좇는 사회는 허무하다.”

―비관주의자인가.

“비관적이지 않다.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다. 비관적인 사람이 어떻게 사회를 바꾸려 하나. 인간을 행복하게 하고, 삶을 의미 있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데, 그게 허무주의인가? 그 반대다.”

―그러면 낙관주의인가.

“낙관주의도 아니다. 낙관주의에 빠진 사람은 생각을 안 한다. 모든 것이 좋아질 텐데 왜 생각을 하나. 비관적인 사람도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게 나빠질 테니 생각할 필요가 없다. 비관적이나 낙관적이라는 말을 모두 안 좋아한다. 그건 미래가 결정됐다는 말이다. 나는 희망의 사고, 미래를 여는 사고다.”

―디지털 시대에 이를 뚫고 인류는 어떻게 진보할까.

“생각해야 한다. 정보는 삶을 파편화하고, 모든 것을 순간 속에 사라지게 한다. 정보는 무의식중에 우리 삶을, 지각을, 인식 형태를 바꾼다. 의식하지 못한 채 변화 속에 빨려 들어간다. 하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것 자체가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를 해방시키는 자유를 향한 첫 단계다. 인식하면 해방이고, 인식하면 교정할 수 있다.”

―그렇다면 순간적으로 사라지고, 파편화된 세상에서 사람을 진정한 삶에 묶어두게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 존재에 정박하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행복은 손을 통해 온다. 손을 써야 하는데 디지털화되면서 손을 쓰는 것을 잊어버리고 손가락만 쓴다. 손에 행복이 있다. 일하면 손을 쓰고, 피아노 치면서 손을 쓴다. 행복은 수공예다. 오래 걸리고 가꿔야 한다. 순간 속에 마취되면 수공예의 시간성을 모른다.”

―선생님에게 행복은 어떤 것들인가.

“피아노와 정원 가꾸기다. 내 손으로 정원을 가꾸고 피아노를 칠 때 항상 행복하다. 나는 매일 피아노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치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이제 그건 나에게 기도가 됐다. 나의 그랜드 피아노는 전경기(prayer wheel)이다.”

실제로 그가 머물고 있는 호텔룸 한쪽에는 한국에 있는 누님이 가져다줬다는 피아노 키보드가 놓여 있었다. 어디를 가든 피아노가 필요하다는 그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한두 마디를 치기도 했다. 정원 가꾸기라면, 3년 동안 온몸이 녹초가 될 정도로 땅을 일구며 비밀의 정원을 가꾼 경험을 ‘땅의 예찬’이라는 책에 담아 내놓기도 했다. 그는 최근에 또 다른 정원을 하나 샀다며, 정원 가꾸기에 대한 두 번째 책을 낼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정원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모든 계절을 겪으면서 디지털 세계에서 잃어가던 현실감, 몸의 느낌이 되돌아오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우리 시대, 새로운 삶, 새로운 이야기는 철학이 아닌 예술에 맡기고 싶다고, 구원자는 철학이 아니라 예술이라 했지만, 예술도 급속히 오락화되고 있다. 그래도 예술이 구원인가.

“모든 것이 자본에 먹혀 벗어날 길이 없다. 예술도 자본에 먹혀 버렸다. 예술은 항상 저항이었다. 지금 세계와 다른 세계를 펼쳐가는 것, 또 그것에 대한 환상이 예술의 진리인데 그런 예술은 없어졌다. 하지만 예술은 다른 삶을 창조한다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철학을 예술로 실행한다.”

그래서 그는 요즘 ‘희망(hope)’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 이유를 묻자 돌아온 답은 이렇다. “지금 시대는 위기에서 또 다른 위기로, 하나의 재난에서 또 다른 재난으로 가고 있다. 삶은 생존이 됐고, 모든 곳에 희망이 없다. 우리는 새로운 또 다른 관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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