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 넘나드는 말러… 지휘자 상상력 자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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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시연, 경기 필하모닉과 공연

“지휘자만의 아우라는 타고나야
나를 대면하는 음악 들려줄 것”

“지휘자는 타고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지휘자만 낼 수 있는 아우라는 배울 수도 가르칠 수도 없어요.”

지휘자 성시연(사진)에게 지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를 물으니 “타고나야 한다”는 자신만만한 답이 돌아왔다. 그의 자신감엔 이유가 있다. 이미 세계적 명성의 로열콘세르트허바우(RCO)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등과 호흡을 맞추며 클래식의 본산인 유럽 무대의 중심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엔 뉴질랜드 오클랜드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수석 객원지휘자까지 맡았다. 클래식계의 유리천장을 차례로 깨고 있는 성시연을 지난 15일 전화로 만났다.

22일과 23일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공연을 앞두고 있는 그는 “지휘자는 만들어지기보다 타고나는 것”이라며 “큰 무대에 섰을 때 그 지휘자만의 아우라와 아우라에서 나오는 그만의 소리는 아무도 가르치지도 배우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2006년 게오르그 솔티 콩쿠르, 2007년 구스타프 말러 콩쿠르에서 차례로 최우수상을 받은 그에게 콩쿠르 입상 비결을 물으니 역시 “타고나야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휘는 타고나는 것이니 ‘진짜’ 지휘자로서 자질이 있는지를 보여주면 되는 것 같아요.”

성시연은 베를린 예술대학 유학 시절 비로소 지휘자를 꿈꿨다. 남들보다 늦었기에 ‘해야겠다’는 열망과 ‘아니다 싶으면 바로 그만두자’란 각오로 시작했다. 계기는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브람스 교향곡 영상이었다.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역량을 최대치로 이끌어내며 내가 화면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만드는 모습을 보고 지휘 공부를 결심했다”고 회상했다. “1∼2년만 시도해보고 내 옷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미련 없이 그만두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휘는 성시연에게 ‘잘 맞는 옷’이었다. 2006년 콩쿠르에 입상한 뒤 2007년 미국 보스턴 심포니 부지휘자, 2009년 서울시향 부지휘자까지 쾌속 질주했다. 2021년 RCO, 지난해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 영국 로열필하모닉과의 공연은 세계가 그녀를 주목하고 있다는 방증이었다. 해외 오케스트라와의 경험은 그에게 좋은 자양분이 됐다. 그는 “좋은 오케스트라일수록 눈과 호흡을 맞추며 지휘자의 조그마한 신호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며 “음악을 전체적으로 대하는 자세를 배웠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은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간 상임지휘자를 맡았던 경기 필하모닉과 6년 만의 만남이다. 연주곡은 말러 교향곡 6번. 성시연은 “말러는 지휘자에게 상상력을 최고로 자극하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깊이와 카타르시스를 주는 작곡가”라고 말했다. “말러 6번 교향곡은 신과 자연 앞에 홀로 선 인간의 모습 같은 음악입니다. 나를 대면하는 음악을 들려 드리고 싶어요.” 지난해 장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양인모는 버르토크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다.

클래식계에서 여성의 활약이 어느 때보다 거세다. 1982년에서야 여성을 제1 바이올린 정단원으로 뽑았을 정도로 차별이 심했던 베를린 필하모닉은 지난달 처음으로 여성을 악장으로 임명했다.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시대가 온 것 같다”는 성시연은 “여성 지휘자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그냥 지휘자 중 한 명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 다만 아직 남성 지휘자에 비해 여성 지휘자는 중용 받지 못하고 있다. 성시연은 “리더십이 필요한 자리에 대한 선입견이 아직 있다”며 “젊은 여성 지휘자들이 상임지휘자로 좋은 선례를 남기다 보면 편견을 깰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정우 기자 krust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