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前 ‘개구리 소년’ 실종… 아직도 범인 실마리 못찾아[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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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3-20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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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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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91년 3월 26일 대구 달서구 와룡산에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갔다가 실종된 다섯 명의 아이들을 찾기 위해 가족들이 1992년 3월 14대 총선 대구 서구 합동유세장에서 시민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다.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1991년 3월 26일은 지방자치제가 30년 만에 부활해 기초의원을 뽑는 선거일이었다. 대구 성서초에 다니던 다섯 명의 아이들은 임시공휴일이라 학교에 가지 않은 이날, 도롱뇽 알을 주우러 간다며 집을 나섰다. 그리고 와룡산에 오르기 전 마을 주민에게 마지막으로 목격된 후 감쪽같이 사라졌다. 당시 도롱뇽 알이 개구리로 와전되면서 ‘개구리 소년 사건’으로 불리게 됐다.

사건 초기 단순 가출로 판단했다가 뒤늦게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단서를 찾을 기회를 놓쳐버렸다. 대통령 특별지시와 당시에는 파격적인 현상금 4200만 원, 국내 단일 실종 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연인원 35만 명의 수색 인력이 투입되고 전국에 1000만 장의 전단지가 뿌려졌지만, 소년들의 행방은 묘연했다.

부모들은 생업을 포기하고 사진을 붙인 트럭을 몰고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 헤맸다. 우철원(당시 13세), 조호연(12), 김영규(11), 박찬인(10), 김종식(9) 등 아이들의 이름과 사진이 엽서와 공중전화 카드, 담뱃갑 등에 새겨지고 온 국민의 관심 속에 개구리 소년 찾기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펼쳐졌다. 안타까운 사연은 노래와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아이들이 돌아오지 않자 외계인 납치설, 북한 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설 등 온갖 헛소문이 나돌고 수많은 허위 제보가 쏟아졌다. 1996년에는 한 대학 교수가 “김종식 군의 아버지가 소년들을 살해한 뒤 집에 암매장했다”고 주장해 경찰이 중장비를 동원, 집 마당과 화장실 등을 파헤치는 일도 있었다. 누명을 썼던 종식 군 아버지는 5년 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애타게 기다리던 아이들은 실종된 지 11년이 지나 2002년 9월 도토리를 줍던 시민에 의해 와룡산 중턱에서 싸늘한 유골로 발견됐다. 집에서 3.5㎞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경찰은 길을 잃고 저체온증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유골 감정을 한 경북대 법의학팀은 두개골 손상 흔적 등을 근거로 타살로 결론 내렸다.

범인은 물론 범행 도구도 밝히지 못한 채 결국 2006년 공소시효가 끝나 장기 미제 사건이 됐다. 2019년 또 다른 미제 사건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이 밝혀진 후 경찰이 재수사에 착수했지만 별다른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개구리 소년 사건이 발생하고 32년이 흘러 부모들은 70대 노인이 됐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고통과 슬픔 속에 살아온 부모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이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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