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BTS’ 보다 ‘기업판 BTS’ 키워라

  • 문화일보
  • 입력 2023-03-27 09:12
  • 업데이트 2023-03-2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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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맨 위 사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그룹 방탄소년단, NCT DREAM, 에스파, 뉴진스 등은 글로벌 MZ세대를 공략하며 K-팝 전성시대를 열었다.



■ K-팝 3.0… 3개의 전선 - (1)글로벌 주도권 전쟁

SM엔터테인먼트(SM)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포스트 BTS 시대’로 가기 위한 거대한 진통이었다. 최근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글로벌 K-팝 아티스트는 있되,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없다”고 일갈했다. K-팝의 성장이 BTS라는 미증유의 스타로 일군 사상누각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오는 31일 카카오와 손잡은 SM이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SM 3.0’을 본격화하는 시점에 맞춰, 지속가능한 K-팝 성장을 위해 성취해야 할 것들을 주도권 전쟁, 콘텐츠 전쟁, 플랫폼·팬덤 전쟁이라는 주제로 3회에 걸쳐 살펴본다. 첫 번째로 이규탁 한국조지메이슨대 교양학부 교수,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임진모 평론가, 차우진 평론가의 제언을 들어봤다.

글로벌 K-팝 아티스트 많지만
받쳐줄 엔터테인먼트기업 적어

“BTS, 아티스트이자 사업모델”
부가가치 높은 IP 발굴 목표로
스타 육성·앨범 유통·공연 등
모든 분야 아우르는 조직 필요

K-팝 세계시장 점유율 2%뿐
삼성·현대처럼 유통망 갖춰야


◇K-팝 시장의 위기, 극복 가능한가

방 의장은 K-팝 시장의 둔화 지표가 명확하다고 위기론을 꺼내 들었다. 실제 여러 나라에서 성장률이 주춤하는 모양새다. 반면 BTS의 부재 속에서도 미국 빌보드 차트 정상을 밟는 K-팝 그룹의 수는 늘었다. K-팝은 위기인가.

이 교수는 “현재 K-팝 시장을 위기로 보고 있지 않다”며 ‘과도기 혹은 전환기’라고 규정했다. 이 교수는 “지금은 BTS가 완성한 3세대 K-팝 시장에서 후배들이 이끄는 4세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이자 전환기”라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어느 정도 진통은 감수해야 한다. 동시에 향후 K-팝 수용자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BTS의 공백을 단순한 ‘스타 부재’와는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차 평론가는 BTS와 또 다른 월드스타인 테일러 스위프트를 비교하며 “스위프트는 아티스트이지만, BTS는 아티스트인 동시에 하나의 사업모델이다. 지식재산권(IP)으로서 BTS가 갖는 가치가 더 크다”며 “결국 BTS의 부재는 그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IP의 부재’다. 단순히 BTS를 잇는 아티스트를 키우는 것을 넘어, 부가가치가 높은 IP를 발굴한다는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IP는 단편적 접근으로 일구기 어렵다. 삼성과 현대가 세계적 유통망을 갖고 휴대전화와 자동차를 공급했듯, 신곡이 동시다발적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흘러나오는 저변을 마련해야 한다.

글로벌 3대 음악기업인 유니버설그룹뮤직, 소니뮤직그룹, 워너뮤직 등의 세계 시장점유율은 60%에 육박한다. 하지만 K-팝 시장의 세계 점유율은 2% 미만이다. 하이브와 SM이 각각 0.9%, 0.6% 수준이다. 개별 그룹의 역량을 통해 이 수치를 비약적으로 개선시키기는 어렵다. ‘규모의 경제’ 논리는 K-팝 시장에도 적용된다.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질문에 대다수 전문가는 “가능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박 교수는 “콘텐츠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스타를 키우고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거대 자본을 바탕으로 앨범 유통과 홍보, 공연장 관리 및 운영까지 아우르는 조직이 등장해야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이브와 SM의 사업모델은 다르다?

글로벌 엔터테인먼트 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K-팝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K-팝을 콘텐츠가 아니라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스타를 키워 세계로 나간다’는 근시안적인 태도다.

하이브의 SM 인수 과정을 지켜보며 ‘하이브는 BTS의 회사’ ‘SM은 소녀시대의 회사’라는 1:1 등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제히 “하이브와 SM은 전혀 다른 모델을 가진 기업”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이브는 BTS를 보유한 빅히트, 뉴진스가 속한 어도어, 세븐틴을 배출한 플레디스가 모인 하나의 ‘플랫폼 그룹’인 반면, SM은 직접 소녀시대, 엑소, NCT 등을 프로듀싱하고 매니지먼트하는 연예기획사다. 즉 글로벌 기업으로 덩치를 키운다는 것은 BTS 같은 아티스트를 키워내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코어 에너지를 가진 여러 그룹을 한데 모은 클러스터를 구성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델을 구축하는 작업이다.

차 평론가는 “유니버설, 소니, 워너 모두 공식 명칭에 ‘그룹’이 붙는다. 여러 레이블이 뭉쳐있는 형태다. 몇몇 가수의 역량에 기대는 각 레이블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룹화하면 사업 모델이 달라진다”면서 “하이브는 이미 그룹화를 시도하고 있는 회사고, SM 역시 ‘멀티 레이블’ 체계로 하이브와 같은 모델로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이브가 저스틴 비버 등이 속한 아티카 홀딩스, 미국 힙합레이블 QC뮤직 등을 천문학적인 금액에 인수한 것 역시 단순히 아티스트 라인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 아닌, 멀티 레이블 체제를 구축한 글로벌 그룹으로 도약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유니버설, 소니뮤직그룹 등은 가수를 키우는 회사가 아니다. 배급과 유통에 중점을 둔다”면서 “지금 K-팝 시장은 제작 시스템을 중심에 세운 비즈니스 모델을 앞세우고 있는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해서는 이런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 레이블 영입 및 강화, 협업을 통해 처음부터 세계 무대를 베이스로 삼는 동시에 그 효율을 유지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꼭 ‘포스트 BTS’가 필요한가

K-팝 시장의 선순환과 성장을 위해 BTS의 공백을 메우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반드시 BTS와 비슷한 형태의 그룹이 나올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BTS를 모델로 삼는다면 아류일 뿐, 그 이상을 바라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최근 내놓은 신간 ‘Z를 위한 시’에서 ‘포스트 BTS’ 대신 ‘비욘드 BTS’라는 표현을 썼다. BTS의 노래 ‘작은 것들을 위한 시’에서 착안한 듯한 책의 4부 제목은 ‘비욘드 더 BTS, 케이팝 4세대가 온다’다. 이 교수는 “하나의 그룹이 수백만 장의 앨범을 팔아 슈퍼스타가 되는 것만으로는 K-팝 시장의 미래를 책임질 수 없다”면서 ‘세대 공략’을 강조했다. BTS 열풍은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이끌었지만, 이후 K-팝 시장은 그다음 세대의 놀이터다. 이 교수는 “Z세대 이후 알파 세대라 하는 더 젊은 취향을 가진 수용자를 어떻게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라며 “여기에는 인종이나 민족 다양성에 대한 고민까지 포함돼야 한다. 더 이상 K-팝이 ‘한국만의 음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4세대 아이돌의 과제”라고 강조했다.

차 평론가의 의견도 비슷하다. 그는 스타트업 기업이 밸류(가치)를 키우는 방식에 비유하며 “쿠팡이나 마켓컬리와 같은 기업들은 수익이 크지 않아도 밸류가 굉장히 높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이 관점에서 봐야 한다”면서 “단순히 앨범을 더 팔고 매출액을 높인다고 회사의 가치가 비례해서 커지는 것은 아니다. 꼭 BTS와 같은 글로벌 스타가 나와야 된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런 관점에서 기존 엔터테인먼트 회사나 수용자들이 보지 못한 모델을 만들어 회사 자체의 가치를 높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충고했다.


■ 거대 엔터기업의 K-팝시장 독점?… “아티스트들에게 글로벌 유통망 열어줄 수도”

“일반 제조업과는 시스템 달라
매출보다 예술을 중심에 두고
각각 장르 유지하면 폐해 없어”



하이브가 SM 인수를 적극 추진하는 과정에서 하이브 중심의 독점적 K-팝 시장 구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정작 거대 기획사가 아닌 ‘흙수저’ 출신인 BTS를 통해 회사를 일군 하이브가 숱한 스타들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하고 중소 기획사의 성장을 저해할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렸다.

이런 시선에 대해 차우진 평론가는 “그건 한국적 시선이다. K-팝 시장 자체를 한국에 국한해서 본 것”이라면서 “방 의장의 구상을 들어보면 이미 한국에서 돈을 버는 구조에서 벗어난 것 같다. 한국이 헤드쿼터 역할을 하면서 전 세계를 기반으로 활동한다고 보면 될 것”이라고 또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역시 “일반적인 독점과 동일 선상에서 보면 안 된다. 웹툰의 경우, 카카오와 네이버가 거의 독점하고 있지만 그 덕분에 중소 웹툰 제작사들이 메인 플랫폼과 연관을 맺고 성장하고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고 체계적인 유통망을 정리한다면 일반 제조업의 독점과는 다른 개념을 적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임진모 평론가는 “기업적 사고를 음악 비즈니스에 그대로 접목시키는 것은 위험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K-팝 시장에서 퍼포먼스와 영상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기본은 음악인데, 일반 제조업 시스템처럼 음악을 찍어낼 순 없다. 덩치를 키워 ‘매출 중심’의 글로벌 기업이 된다면 실험과 시도가 필요한 미지의 영역에 있는 음악들은 빛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임 평론가는 ‘글로벌 기업’이 아닌 ‘글로벌 예술 기업’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장르적 다양성을 구현할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양한 음악을 하는 프로덕션과 계약을 맺고 그들 고유의 음악성을 인정한다면 독점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교수 역시 “K-팝 시장의 독점 구조는 삼성·현대와는 다를 것이다. 직접 중소 기획사에 투자하는 동시에 글로벌 유통망을 열어줄 수도 있다. 이런 경우 단순히 구조적인 시장 논리로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현재 K-팝 시장의 미래는 예측이 어려운 시장이다. 하지만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 ‘시스템화’한다면 보다 장기적인 플랜을 세울 수 있는 체계적이고 예측 가능한 시장으로 거듭날 것이다. 단편적인 세계관이 아니라 더 큰 그림을 그리는 유니버스가 창출되는 것”이라고 동조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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