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 생존 ‘한국전 10대 영웅’...“다가올 북한 위협 과거와는 다를 것… 압도적 군사력 갖춰야”

  • 문화일보
  • 입력 2023-04-24 11:49
  • 업데이트 2023-04-24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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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전투기 사진으로 특별제작한 병풍을 배경으로 102회 출격 기념패를 들고 포즈를 취한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 박윤슬 기자



■ ‘한국전 10대 영웅’ 김두만 대장

“文정권 5년간 국가 안보 실종
尹정부가 국민과 바로 잡아야”

목숨 걸고 조국 하늘 지켜내
경비행기 타고 ‘맨손 폭격’도


“앞으로 다가오는 (안보) 위협은 과거의 위협과는 다를 것입니다. 북한의 핵 위협뿐 아니라 미사일 성능이 점점 강화하는 만큼 북한이 넘보지 못하도록 한국이 압도적인 군사력을 갖춰야 합니다.”

‘한미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된 김두만 전 공군참모총장은 96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건강했고 눈빛이 살아있었다. 김 전 총장의 집 거실에는 6·25전쟁 참전 당시 사진과 훈장 등이 가득했다. 김 전 총장은 “한·미·일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굳건한 한·미·일 동맹은 북·중·러 동맹을 압도한다”고 힘을 주었다. 이어 “윤석열 정부는 지난 정권 5년 동안 엉망이 된 국가 안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한 뒤 “무엇보다도 ‘자유를 지키겠다’는 국민의 결심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장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우리 공군엔 단 한 대의 전투기도 없었다. “T-6 훈련기 10대, L-5 등 연락기 12대가 전부였어요. 모두 폭탄 장착이 불가능한 비(非)무장기였죠. 조종사는 30명 정도뿐이었고요.” 반면 북한은 전투기 및 폭격기 197대와 지원기 29대 등 항공기 226대를 확보해 놓고 있었다.

“전쟁 발발 불과 8개월 전인 1949년 10월 1일, 공군이 창설됐습니다. 미국에 T-6 훈련기 판매를 요청했지만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된다며 팔지 않았습니다. 전쟁 석 달 전인 1950년 3월 국민 성금 3억5000만 원으로 캐나다로부터 T-6 훈련기 10대를 사들였어요. 그러나 교육을 받기도 전에 전쟁이 터진 겁니다.”

김 전 총장은 전쟁 기간 동안 100회가 넘는 출격을 하면서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고 했다. ‘맨손 폭격’을 감행했던 경험담도 털어놨다. 그는 “무기 장착이 불가능한 L-5 연락기는 경비행기여서 후방석에 탄 조종사가 폭탄 2개를 안고 가서 맨손으로 투하했다”고 회고했다.

김 전 총장은 6·25전쟁 당시 가장 큰 전과(戰果)로 꼽는 대동강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승호리 철교는 중국에서 평양까지 수송된 보급 물자를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북한군 후방 보급로의 요충지였어요. 첫날은 실패했고, 이후 다시 출격했는데 일대가 구름에 덮여 있어서 2차 목표인 황해도 이천의 교량만 부수고 돌아왔어요. 실제 완전한 폭파는 후배들이 한 겁니다.” 김 전 총장은 일제강점기에 가미카제 자살특공대 요원이 됐다가 출격 직전 극적으로 8·15 해방을 맞아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던 일이 있다. 이후 1948년 5월 창설된 조선경비대 항공부대 항공병 1기생으로 선발됐다. 김 전 총장은 “지금 공군은 6·25전쟁 당시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발전했다”면서 “세계 톱 수준의 전투기에 심지어 수출까지 하고 있다”고 대견해 했다. 조국의 하늘을 지키려는 그의 헌신은 제10전투비행단장·공군작전사령관·공군사관학교 교장·공군참모차장 등을 거쳐 제11대 공군참모총장을 지낼 때까지 계속됐다. 그는 을지무공훈장·중국 운마훈장·미국 공로훈장·충무무공훈장 등을 수훈했고 1971년 공군 대장으로 예편했다.

박현수 기자 phs2000@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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