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가 자랑하는 우방 돼… 정상회담 때 ‘아리랑 합창’에 울컥”[M 인터뷰]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가 25일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 앞에서 문화일보와 인터뷰를 하면서 미국 정치 특징과 KAGC 활동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M 인터뷰 - 한미관계 연결고리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

30년새 한인 위상 많이 높아져
행사에 미 정치인 겨우 모셨는데
이젠 우리가 골라서 부를 정도

한인 투표율 미 평균보다 높고
정가 중심에 한국계 의원 진출

IRA·반도체법에서 확인했듯
행정부보다 의회 역할이 중요
한인 유권자 영향력 발휘할 것

워싱턴=글·사진 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한국계 미국인(한인) 중 미국 연방의회를 가장 잘 아는 인물로 꼽히는 김동석(65)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길 위의 운동가’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6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도 한인들의 정치후원금을 모금하고 의회 핵심 인사들을 공략하기 위해 미국 전역을 떠돌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1년이면 20여 차례 정도 미 각지를 찾고 평균적으로 2개월에 3차례는 한인들을 모아 유력의원의 후원회를 개최한다. 김 대표는 “흔히들 미국 정치하면 워싱턴DC만 바라보는데 거꾸로다. 상·하원 유력의원을 만나기 가장 어려운 곳이 워싱턴DC고 가장 쉬운 곳은 바로 그 의원 지역구”라며 웃었다.

미 정가에서 가장 인맥이 넓고 활동이 두드러진 한인으로 불리는 만큼 김 대표는 24일(현지시간) 시작된 윤석열 대통령 국빈방문에 덩달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냈다. 20년 지기인 밥 메넨데스(민주) 상원 외교위원장을 비롯한 여러 인사로부터 26일 윤 대통령 공식 환영행사, 27일 의회연설 등에 초청받은 탓이었다. 김 대표는 “백악관이 한·미 관계의 핵심 연결고리로 한인들을 부각하고 배려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한국학교 학생 50명으로 이뤄진 합창단이 공식 환영행사에서 ‘아리랑’을 부를 때는 울컥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25일 연방의회 의사당이 위치한 워싱턴DC 캐피톨 힐 인근에서 김 대표를 만나고 26·27일 통화로 내용을 보완했다.

―30년간 한인 유권자운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 당시 주류 백인사회와 비교해 봤을 때, 소수 중 소수인 한인이라는 처지가 너무 열악해 보였다. 미국에서 소수계가 살아남으려면 누군가 정치력을 결집하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냉정한 현실에 직면했다. 더구나 한인들은 분단국가 출신이라는 이중적 긴장이 있다. 사실 이 길을 선택했다기보다는 피할 수 없어 시작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내가 전적으로 공감해줬다. 1990년생인 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족의 적극 동의가 아니면 30년간 이 일을 할 수 없었다.”

―30년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07년 7월 하원에서 일본군 강제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순간이다. 일본의 로비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진실과 여성 인권 문제를 알려 법안으로 통과시킨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짜릿한 보람을 경험했다. 미 의회 역사에도 시민사회가 로비를 이긴 진실의 승리로 기록됐고, 미 정치권·지식인 사회도 한인들을 다시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결의안 통과 후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에서 한인들의 정치력 결집에 주목해 ‘한국은 미주 한인들이 있는데 일본은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국 정치권이 한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나.

“이제 대도시 한인 밀집지역에서는 정치인들이 한인사회에 긴장한다. 소수계 중에서 정치참여 열기가 높고 투표율도 높기 때문이다. 1990년대 한인 투표율은 5∼6%였지만 지금은 미 평균투표율을 웃돈다. 한인들의 투표는 몰표 현상이 있다고 알려졌는데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표 쏠림에 주목한다. 그러다 보니 30년 전엔 한인 행사에 정치인을 모셔와야 했지만 지금은 골라서 부른다. 또 선거 때가 아니어도 의원들이 한인 모임을 찾고 한글 매체에 정치광고를 내는 일이 흔한 일이 됐다.”

―한국계 하원의원 4명이 모두 재선에 성공했다.

“미국의 연방 하원의원 숫자가 435명이고 지역구당 평균 인구가 70만∼75만 명이다. 미국 내 한인이 250여만 명이니까 의원 4명은 그에 걸맞은 정치력이다. 2018년 뉴저지에서 앤디 김 의원이 당선됐는데 1992년 김창준 전 의원 이후 26년 만이었다. 지금은 의원 4명이 워싱턴정가 중심에서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성과는 미 전역에서 한인들의 정치참여가 확산한 것이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30년 동안 이어온 한인 정치참여운동이 열매를 맺고 있는 셈이다.”

―미 정치권에서 가장 발 넓은 한인으로 꼽히는 이유는.

“연방의회만 거의 20년간 접촉하고 다진 네트워크다. 의원 보좌관들이 가장 민감하게 살피는 일이 의원과 친분을 만들어 대외적으로 이용하려 하는지다. 처음에는 로비스트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한인들을 모으고 지역구 현안을 들고 반복해서 접촉하니 차츰 소통할 수 있었다.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주도했던 마이크 혼다 전 의원이 이후 정치적 어려움을 겪고 낙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켜 도왔는데 ‘한번 도움받으면 반드시 의리를 지킨다’는 소문이 났다. 그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한국 정부나 정치인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요청도 많았던 것으로 아는데 거리를 두는 이유는.

“한인 유권자단체가 한국 정부·정치인 일을 도우면 불법이다. 그런 일은 등록 로비스트만 할 수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한·미 관계를 좋게 만드는 것, 거기까지다. 우리 입법 활동 역시 한국 정부가 모른 척하는 게 오히려 도움이 된다.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추진할 때 가장 어려웠던 일은 워싱턴DC로 몰려오는 한국 정치인들을 말리는 일이었다. 의회를 상대로 하는 어떤 입법 노력도 미국 시민 입장에서 해야 한다. 물론 양국의 국익이 일치하는 일이면 얼마든지 힘을 보탤 수 있다.”

―다시 한인 유권자운동을 시작하던 당시의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고 들었다.

“워싱턴DC에서 필요한 최고 경쟁력은 전문성이다. 풀뿌리 유권자운동이라고 아마추어처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의회 보좌관들과 수준을 맞추지 못하면 그냥 길에서 들리는 외침 정도로 취급받는다. 그러다 보니 유능한 인력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는 재원이 문제이고 시민단체의 안정된 재원은 다수의 소액모금이다. 매달 10달러를 후원하는 회원 1만 명을 만드는 것이 새 목표다.”

―한인 유권자운동이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미국에서 의회를 움직이는 것은 결국 돈이다. 정치자금, 즉 후원금을 전달해야 의원들이 움직인다. 유대인들이 가장 잘하고 최근에는 인도계도 정치인 후원이 활발하다. 상대적으로 한인들은 아직 정치인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는 데 익숙하지 않다. 유력 정치인을 전략적·조직적으로 후원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윤 대통령이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방문했는데 현재 미 정치권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미국이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한국의 협력을 얻어내기 위해 고심하는 상황이다. 예컨대 연방정부가 한국과 갈등을 빚어도 각 주에서는 경제협력을 위해 한국과 경쟁적으로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도움으로 정치적·경제적으로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미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가장 목소리 높여 자랑하는 우방이자 동맹은 한국이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느낀 점은.

“백악관이 한국 대통령을 환영하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다. 12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 국빈방문 때는 많은 행사가 미국인 위주였고 환영행사 등도 미국 뮤지션들이 맡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뉴저지 한국학교 합창단이 아리랑을 부르고 바이든 대통령이 합창단원들과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리는 등 한·미 관계 핵심 연결고리로 한인들을 부각하고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한인들의 영향력이 커졌고 미 주류 정치권의 사고도 변화하는 모습이 느껴졌다.”

―더 건설적인 한·미 관계 방안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한국의 대미 외교는 운명이 꼭 5년이다. 정권이 바뀌는 것과 관계없이 흔들리지 않는 외교전략이 있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추진해 온 공공외교가 미국 내 한인들이 한국 정부를 위해 일하도록 작업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한인들은 미국사회에서 먼저 모범시민으로 인정받아야 양국 관계를 튼튼히 이어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008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방미해 중국계 미국인들을 모아놓고 ‘중국을 잊어라. 대신 미국에 또 다른 중국을 만들어라’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정말 부러웠다. 마지막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반도체법 등에서 확인했지만 미국은 행정부보다 의회 역할이 중요하다. 한국도 미 의회 움직임에 주목하고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가 22일 워싱턴DC K스트리트에 위치한 KAGC 사무실에서 30년간 쌓은 한인 유권자운동 성과에 대해 말하고 있다.

■ 31년 전 LA폭동 계기로 정치참여운동… 미 하원 위안부결의안 통과 주역

뉴욕 거점 전미 네트워크 결성
250만 한인 정치력신장 목표

김동석(65) 미주한인유권자연대(KAGC) 대표는 미국 내 최대 한국계 미국인(한인) 유권자 네트워크 KAGC를 통해 풀뿌리단계에서부터 적극적 참여를 통해 현재 250만 명으로 추산되는 한인들의 정치력 신장, 더 나아가 한·미 양국의 공조 강화를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강원 화천 출신으로 춘천고, 성균관대를 거쳐 1985년 미국으로 건너와 뉴욕시립대(CUNY) 정치학과를 졸업한 김 대표가 올해로 만 30년간 한인 유권자운동에 몸담은 건 1992년 로스앤젤레스(LA) 폭동이 계기가 됐다. 그는 “한인타운이 불타고 약탈당해도 아무도 한인들을 대변해주지 않는 현실에 충격받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법적 보호를 받기 위해서는 어떤 민족이든 기본적인 정치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귀국을 포기하고 1993년 한인들을 대상으로 유권자 등록과 투표 중요성을 알리는 정치참여운동을 시작했다.

김 대표는 1996년에는 뉴욕을 중심으로 한인사회의 투표권 행사 보장 및 주·연방정부를 대상으로 한인 커뮤니티 이슈를 전달하는 비영리단체 뉴욕·뉴저지 한인유권자센터(KAVC)를 설립했다. 김 대표와 한인 유권자운동이 한국에서도 주목받은 계기는 2007년 미 연방 하원이 일본 정부의 끈질긴 로비에도 일본군위안부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면서부터였다. 김 대표는 당시 톰 랜토스(2008년 사망)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이크 혼다 의원 등을 움직여 결의안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8년 뉴욕에 미국시민참여센터(KACE)를 만든 김 대표는 이후 미 정치의 중심인 워싱턴DC를 공략하기 위해 2013년 전국 단위 조직인 KAGC를 결성했다. KAGC는 한인사회 현안을 200여 명의 미 연방 의원·보좌관들에게 상시 전달하는 가교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물론 전국 30여 개 지역사회 협력단체의 시민참여 교육 및 유권자등록 프로그램 개발·운영을 지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