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귀면(鬼面)인가 용면(龍面)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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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12 11:53
업데이트 2023-05-12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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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장, 前 이화여대 교수

진나라 땐 용을 ‘쇠 먹는 괴물’
日선 일본 귀신 ‘오니’라 불러

용의 정면 얼굴 표현하기 어려워
양쪽으로 펼치니 귀신 얼굴 같아

성덕대왕신종의 위대한 용 조각
최고의 와공이 혼신으로 만들어


지난 2000년 국립경주박물관 관장 퇴임 기념으로 대규모 ‘신라기와 특별전’을 기획했다. 이 전시회에는 신라·고구려·백제와 고대 중국과 일본의 기와 등 모두 850여 점이 전시되었다. 당시 연구원들에게 귀면와(鬼面瓦·귀신의 얼굴을 그린 장식 기와)를 모두 용면와(龍面瓦·용의 얼굴을 그린 장식 기와)로 바꾸라고 강요하지 않았으며, 후배들이 스스로 고치기까지는 몇 년이라도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그 기와 전시 후 10년이란 세월이 흐른 2010년, 후배 이영훈 님이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소임을 맡았다. 그는 고고학자로서 드물게 예술적 감각이 있었는데, 어느 날 경주에 강연차 갔다가 그를 만나자, 갑자기 “선생님, 선생님, 용의 입에서 뭐가 나와요!” 하고 소리치며 용 사진을 보여 주었다. 그때 아,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 용으로 보이지 않아서 전해온 대로 귀신의 얼굴이라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그해 국립경주박물관 전시실 카드 설명문들에는 ‘귀면와’란 이름이 사라지고, ‘용면와’로 전면적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다른 국공사립(國公私立) 박물관들에서는 현재 일본 연구 성과를 따라 아직도 귀면(鬼面)이라고 쓰거나, 중국에 유학한 사람은 중국 학자들을 따라 막연한 수면(獸面)이라고 쓰는 경우가 있다. 또, 일본의 귀면을 그대로 순우리말로 바꾼 ‘도깨비’ 등이 용면(龍面)과 함께 네 가지 용어가 섞여 쓰이고 있어서 대혼란 상태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용면 즉 용의 얼굴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만든, 몇천 년 전부터 축적돼 온 잘못된 명칭을 살펴보자.

첫 번째 그릇된 말의 유래는 이렇다. 기원전 239년에 진(秦)나라의 재상(宰相)인 여불위가 지은 역사서 ‘여씨춘추’에서 청동기에 새겨진 용을 처음으로 도철문(饕餮文)이라고 부른다. 만물 생성의 근원인 물을 상징하는 용을, 쇠를 먹는 흉악한 괴물이라고 하니 어처구니없다. 일본은 기와에 표현된 용을 모두 일본 고유한 귀신인 ‘오니’(鬼·사람의 형태를 하고 뿔과 큰 송곳니가 있으며 사람을 잡아먹는다 함)라 부르고, 한국이 그대로 따라서 일어난 일이다. 서양 학자들도 귀면을 직역하여 몬스터(monster), 즉 괴물(怪物)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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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극도의 대혼란 속에서 필사적으로 용의 본질을 추구하며 동양의 최고 창조신(創造神)임을 증명해 내어 원래 위상으로 복원해 놓고 있다. 하지만 그 어려운 인식의 과정을 몇 마디로 설명하기를 요구하므로 난감하다. 모두 가슴에 손을 대고 용에 대해 평생 몇 분(分)이나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용의 얼굴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용은 머리로부터 몸통이 매우 길어서, 옆모습을 보고는 즉시 용으로 알아차릴 수 있으나 얼굴을 정면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실제로 상상할 수 없다. 1997년 봄에 국립경주박물관장의 소임을 맡으며 가슴 두근거리는 새로운 경주 생활을 시작했다. 때마침 성덕대왕신종의 종합적 연구가 한창이었다. 종의 천판(天板) 위로 올라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용의 모습’을 자세히 살피다가 매우 놀랐다. 앞에서 보니 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옆으로 가서 살펴보니 눈이 보였다. 문득 용의 얼굴 정면 모습을 표현하려면 정면과 양옆을 함께 볼 수 없으므로 양옆을 펼쳐서 지붕의 ‘추녀마루기와’와 ‘사래기와’에 조각했음을 깨달았다. 아하, 용의 얼굴을 펼쳐서 표현하면 그만 귀신의 얼굴처럼 보이는구나. 인류 역사상 인류의 문화를 밝힐 수 있는 최초의 단추가 풀리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 기와의 조각이 너무 뛰어나서 볼 때마다 심상찮게 생각했었다. 최고의 와공(瓦工)이 혼신을 기울여 만든 위대한 조각이라고 감탄해 왔다. 그렇다면 그 조각은 단지 귀신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라는 의문이 뇌리에 늘 박혀 있었다. 게다가 통일신라에서는 중요한 여래(如來)나 사천왕상(四天王像) 같은 조각만을 단지 흙이 아니라 아름다운 녹유(綠釉)를 입혔으니 귀신의 얼굴을 녹유로 입힐 리가 없다. 녹유란 녹색 유약을 말하며, 신성(神性)과 관련된 경우에만 베푼 것임을 알아야 한다.

만일 내가 경주 생활 12년 동안 신라 천 년의 사찰 터와 궁궐터의 발굴을 참관하며 그 모든 터에서 출토하는 기와 발굴 상태를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만일 그 후 다시 3년간의 경주 생활을 통하여 새로이 모든 유적지를 답사하고 출토품들을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그 출토품들 가운데 걸작품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지 않았더라면, 성덕대왕 신종의 위대한 용 조각을 손으로 만지며 자세히 살펴보지 않았더라면 용의 본질은 영원히 풀려 지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그에 따라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미술은 물론 세계 미술의 난제들은 영원히 풀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용의 입에서 무량하게 나오는 보주의 본질을 밝히지 못했을 것이며, 인류 공용의 조형언어도 세계 최초로 찾아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복원한 용의 위상은 인류의 역사를 바꿔 버렸다. 나의 삶과 학문관 예술을 삽시간에 바꿔 버렸다. 그러나 용의 본질을 파악한 사람은 내가 처음이므로 사람들과 소통하기 어려운 것이 한편으론 비극이기도 하다. 이런 체험은 긴 세월 동안 일어난 것이지 하루아침에 깨친 것이 아니다. 귀면을 그대로 고집하면 영원히 오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퇴보의 길을 계속 걸을 뿐이고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나저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이 한자(漢字)를 전혀 읽지 못하여 2000년 역사는 물론 전통 예술을 터득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으니 어찌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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