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진보… 스승과 제자의 교감서 비롯[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문화일보
  • 입력 2023-05-15 09:34
  • 업데이트 2023-08-07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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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카페 - 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26) 스승의 날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비극작가 꿈꾸던 20세 플라톤
소크라테스 철학적 대화에 빠져
스승의 가르침 평생토록 복기
더욱 발전시켜 철학 기틀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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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를 통합하고 그 힘을 동방의 대국 페르시아를 향한 원정으로 돌리는 데 성공하여 위대한 그리스 문명의 제국을 만든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는 여러 뛰어난 스승이 있었다. 그들 중에 가장 유명한 이는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그를 존경하다 못해 숭배했고, 아버지 못지않게 사랑했다고 한다. “아버지 필리포스는 나에게 생명을 주었지만, 아리스토텔레스 선생님은 인생을 아름답고 멋지게 사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플루타르코스 영웅전’) 내가 아내와 사랑으로 결합하여 낳은 자식이 혈연적인 친자 관계를 이룬다면, 내가 나의 사상과 가치관을 누군가에게 가르쳐 그가 그것을 마음에 새겨 넣고 살아간다면, 그의 삶의 유전자는 나로부터 이어지는 것이니, 가히 영혼의 자식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임을, 알렉산드로스는 잘 보여주었다.

아리스토텔레스와 알렉산드로스의 사제 관계는 더 엄청난 학연의 한 부분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스승이 플라톤이고, 플라톤의 스승이 소크라테스이기 때문이다. 서양역사 최고의 사제지간 인맥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관계 속에서 플라톤이 소크라테스를 만나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플라톤은 다재다능했다. 어려서 꿈이 비극 작가였는데, 디오니소스 극장에서 아테네 시민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멋진 비극을 연출하여 감동을 전하고 경연대회에서 우승하여 인기를 누리고 싶었나 보다. 약관의 나이 20세에 최초의 비극 작품을 완성한 뒤, 플라톤은 경연대회에 출품하려고 극장으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극장 앞에 웬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었다. 그 중심에 소크라테스가 있었다. 그는 삶의 중요한 문제를 놓고 사람들과 철학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대화에 플라톤이 푹 빠져들었다. 플라톤은 손에 들고 있던 비극의 출품작을 불 속에 던지고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기로 했다고 한다.

플라톤을 만나기 전날, 소크라테스는 꿈을 꾸었다. 백조 새끼가 무릎에 앉아 있었는데, 곧 깃털이 나더니 고운 소리로 높이 노래를 부르더니 날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꿈을 희한하게 여기던 소크라테스는 디오니소스 극장 앞에서 플라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아, 저 젊은이가 내가 꿈에 본 그 백조로구나!’라고 외쳤다고 한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제3권 ‘플라톤’ 편 5장)

그로부터 약 9년 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서야 했다. 아테네가 믿는 전통적인 신들을 믿지 않고 해괴한 신을 도입하려고 한다는 ‘종교적 이단’의 죄와 교묘한 말재주로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풍기문란’의 죄로 고발당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법정에 서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가운데, 자신은 아테네의 청년들을 타락시키지 않고 오히려 올바른 길로 가게 하였다고 했다. 그 자리에 플라톤이 있었고, 사람들은 플라톤을 소크라테스 변론의 한 증거로 여겼을 것이다. 플라톤은 그렇게 소크라테스의 자랑스러운 제자였고, 기꺼이 소크라테스의 백조가 되어 스승이 살아생전 수많은 사람과 때론 유쾌하게, 때론 진지하게 나누었던 고담준론을 철학적 드라마의 형식에 담아 노래처럼 아름다운 글로 전해주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비록 단 한 권의 책도 남기지 않았지만, 우리가 그를 최고의 철학자로 기억하는 것은 플라톤의 기록 때문이다.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당한 후, 플라톤은 여러 다른 스승을 사사하며 자신의 학식을 쌓아나갔지만, 평생 그는 소크라테스를 영원한 스승으로 여겼다. 그의 가르침을 내내 복기하고 발전시켜 나가면서 서양철학의 기틀을 마련했다. ‘서양철학사는 플라톤에 대한 일련의 각주’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것은 결국 소크라테스가 서양철학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셈이다. 어디 철학뿐이겠는가? 인류의 문명에서 이뤄진 진보는 다양한 분야에서 훌륭한 스승과 제자들 사이의 교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가 스승의 날을 기리는 것도 이런 점을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 아닐까?

김헌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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