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세계 속 우리 문화재]도쿄 속 영친왕의 숨결이 서린 저택

  • 문화일보
  • 입력 2023-05-1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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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영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지원활용부 선임

일본 도쿄(東京), 고층 빌딩 사이 영국 튜더(Tudor)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길을 받는 이 인상적인 건물은 1930년 지어진 영친왕 저택(사진·필자 제공)이다. 고종(高宗)의 아들이자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이며 어린 나이에 일본으로 보내진 바로 그 영친왕(英親王·1897∼1970)이다.

이 저택에서 영친왕 일가의 삶은 겉으로는 부유해 보였으나, 일제의 감시 속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경제적 어려움으로 저택 본채가 아닌, 하녀가 쓰던 부속 건물에서 거주했다. 그 와중에도 영친왕은, 6·25전쟁을 피해서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밀항했다가 체포된 한국 학생들의 석방에 힘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결국 생활고로 1952년 세이부(西武) 그룹에 저택을 매각했다.

저택은 1955년 세이부 그룹이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로 사용했고, 1983년 호텔 신관이 별도로 준공되면서 연회장 등으로 사용되는 호텔 구관이 되었다. 세월이 지나며 ‘영친왕 저택’으로서 잊힌 듯한 이 건물은, 2005년 영친왕의 아들 이구(李玖·1931∼2005)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구관 곁, 신관 객실에서 숨을 거두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호텔은 2011년 영업이 종료돼 신관은 철거되고 주변은 재개발되었으나, 구관은 ‘구 이왕가 도쿄 저택’이라는 명칭으로 도쿄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건물 전체를 레일에 올려 원위치에서 약 44m를 옮긴 뒤 보수·복원 공사를 거쳐 2016년 ‘아카사카 프린스 클래식하우스’라는 이름으로 단장해 레스토랑, 결혼식장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왕저(王邸)는 사라졌지만, 왕저의 품위를 간직한 건물은 현존해 있다. 그러니 이용객들이 접하는 것은 건물의 외양만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지내던 이들의 기품과 비운이 뒤섞인 숨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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