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미국 고금리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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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17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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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고문

한국은 금리 인상으로 집값이 급락하고 역전세까지 나타나는 등 난리법석이다. 반면, 미국은 일부 지방 은행에만 뱅크런이 일어났을 뿐이다. 지난 1년 3개월간 한국 기준금리는 2.25%포인트(1.25%→3.5%) 올랐다. 미국이 무려 5%포인트(0.25%→5.25%)나 가파르게 끌어올린 것치고는 너무 잠잠하다. 수수께끼다. 기준금리 인상은 시중 금리 상승→은행 여수신 금리 상승 등 단기간에 차례로 파급된다. 반면, 경제성장이나 물가 같은 실물 변수엔 상당한 시간을 두고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금리 정책 외부 시차는 3개월∼1년으로 조사됐다. 문제는 이번엔 이런 전통적 전파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전 세계가 미국의 고금리 여파가 언제 본격화할지 숨죽이고 지켜보는 이유다.

한·미 간 금리 민감도가 크게 차이 나는 데는 두 가지 비밀이 숨어 있다. 우선, 한국의 가계대출은 80%가 변동금리다. 반면, 미국 주택 모기지(잔액 기준)는 90% 이상이 30년 고정금리 상품이다. 기존 주택 소유자의 원리금 상환 부담에 별 변화가 없어 급매물이 쏟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미 당국의 걱정은 상업용 부동산이다. 5년 안에 만기가 도래하는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이 2조5000억 달러에 이르고, 그중 절반이 지방 중소은행 대출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미국 가계와 기업의 유동성이다. 팬데믹 기간에 엄청난 보조금 살포로 가계는 1조7000억 달러의 현금을 쌓았고, 기업도 기업공개(IPO) 열풍을 타고 유동성이 풍부하다. 투기등급 회사채는 2025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물량이 8%에 불과하다. 금리 인상에도 버티는 힘이다. 그 단면이 드러난 게 실리콘밸리은행 파산이다. 금리 급등으로 은행이 보유한 국채 가치는 곤두박질한 반면, 그동안 막대한 현금을 맡겼던 스타트업들이 갑자기 돈을 빼내면서 사달이 났다.

고금리 앞에 장사 없다. 미국 가계·기업의 유동성은 고갈돼 가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상업용 부동산부터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고 경고했다. 위기는 해결된 게 아니라 늦게 찾아올 뿐,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미국도 연말부터 본격적인 고금리 후유증을 맞을 것이란 관측이 대세다. 한국이 상저하고(上低下高) 낙관론만 믿고 있을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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