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동의 시론]너무도 편안한 문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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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17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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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동 논설위원

나라 근간 허물고도 반성 없이
문빠 거점 책방 내고 다큐 출연
文 “5년간 성취” 도착적 인식

부정입학 딸과 북콘서트 조국
평산 찾아 文 축복받은 이재명
문·조·이 3인 無恥 난형난제


영화 ‘밀양’에서 주인공의 어린 아들을 해친 유괴범은 교도소로 면회와 자신을 용서하겠다는 신애(전도연 분)에게 담담한 표정으로 “이미 하나님께 눈물로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했다. 아들을 잃고 방황하다 기독교에 귀의해 구원을 받으려던 신애는 죄책감 하나 없는 가해자를 보고 절망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도 문동은(송혜교 분)의 고교 시절 동창생이 “난 너한테 한 짓 다 회개하고 구원받았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털끝만큼의 죄의식도 보이지 않는 가해자의 태평한 태도에서 충격받는 건 영화에서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모습이 너무도 편안하고 당당해 운동권 정권의 설익은 실험으로 정치 경제 외교·안보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나라의 근간을 허물어 5년 만에 정권을 내준 데 대한 일말의 반성도, 자책도 찾아보기 어렵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부터 경남 양산 사저 바로 옆에 평산책방을 내고 책방지기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개점 1주일 만에 1만여 명이 다녀갔고, 책도 5600권 가까이 팔렸다고 한다. 평산책방을 찾은 전국의 지지자들과 사진 찍기 바쁜 문 전 대통령은 ‘파워 유튜버’ 같은 모습이다. 의욕이 과했는지 자원봉사자 50명을 오전·오후 각 4시간 근무와 8시간 근무 등 3종류로 구분해 모집하면서 8시간 근무자에게 점심만 제공하겠다고 했다가 ‘최저임금 급상승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을 떠들었던 사람으로서 차마 못 할 열정페이, 노동착취’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모집을 스스로 취소했다. 문 전 대통령과 관련된 온갖 서적과 캐릭터 상품(굿즈), 커피를 팔아 돈도 모을 평산책방은 문빠들의 정치적 거점이 될 전망이다.

퇴임 1년에 맞춰 5월 10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문재인입니다’에 출연한 그는 ‘김어준의 다스뵈이다’가 사전 공개한 장면에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지고 과거로 되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해 제정신 갖춘 사람들을 경악하게 했다. 영화제작사 측이 민망해서 그랬는지 공개된 영화에서는 빠졌지만, ‘5년 성과’ 운운은 참으로 가당찮은, 도착(倒錯)된 상황 인식을 보여준다.

문 정권은 23번이나 거듭된 ‘오기’스러운 부동산 정책의 실패로 서울 아파트 가격을 2배 가까이 올려놓았고, 지금의 빌라 전세 사기 사건의 단초도 제공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탄소중립 정책이 강요되는 판국에 탈원전을 강행하는 앞뒤 안 맞는 옹고집으로 한전의 천문학적인 적자 사태를 자초했다. 재정 건전성은 나 몰라라며 퍼주기 정책으로 일관해 국가채무를 임기 내 400조 원 이상 늘려 총 1068조 원을 넘겼다. 임기 내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미국 등 전 세계에 보증했지만, 북한은 미사일 성능을 획기적으로 개량하고 핵무기 탑재·폭발 실험도 하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유감 표명도 없다.

문 전 대통령의 기이한 인식 구조는 이 다큐 영화에서 ‘지금 당장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은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에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라고 답한 대목에서도 드러난다. 엽기적이고 기상천외한 내로남불 행태를 보인 조국을 문 전 대통령이 장관에 임명만 하지 않았어도 정권을 잃지 않았을지 모른다. 자녀 부정입학과 관련한 온갖 스펙 및 서류 조작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조국도 일말의 반성과 사과 없이 자신이 쓴 ‘조국의 법고전 산책’ 북콘서트 전국 투어를 하면서, 부정입학의 주인공인 딸 조민과 동행하는 등 후안(厚顔)과 무치(無恥)의 최고 경지를 보여준다.

본인의 사법 리스크는 물론,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사건, 김남국 의원 가상화폐 보유 논란 등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은 이재명 대표도 지난 10일 평산책방에서 임종석·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 유은혜 전 교육부총리 등 전 정부 당시 당·정·청 고위인사 25명가량이 모여 개최한 퇴임 1주년 행사에 참석해 ‘문재인의 축복’을 받았다. 문 전 대통령은 이 대표를 앞치마 차림으로 마중 나와 포옹한 뒤 사저로 옮겨 “민주당이 단합하고 통합하는 모습으로 국가적 어려움을 타개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날 찍힌 사진에서 문 전 대통령과 이 대표는 환하게 파안대소하고 있다. 정권 상실 3인방의 무죄책감, 무의식이 난형난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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