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구찌 경복궁 패션쇼의 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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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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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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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미 문화부 차장

프랑스 브랜드 루이비통이 한강 잠수교에서 패션쇼를 해 화제가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지난 16일 저녁엔 이탈리아 브랜드 구찌가 경복궁 근정전을 화려한 런웨이로 변신시켰다. 조선 왕실의 의식과 외국 사신을 위한 행사가 열리던 곳에서 구찌는 아시아 최초로 ‘2024 크루즈 컬렉션’을 공개했다. 휴가 시즌을 겨냥한 위트 넘치는 의상들이 밤의 궁궐을 수놓았고, 구찌의 앰버서더(홍보대사)로 활동하는 뉴진스 하니, 아이유, 이정재 등 국내외 톱스타들이 프런트 로(패션쇼 1열)를 가득 채웠다.

이른바 ‘명품’ 패션쇼다. 전문가들은 ‘콧대’ 높은 브랜드들이 앞다퉈 몰려온다며, ‘문화 발신지’ 서울의 위상과 이를 가능케 한 K-컬처의 위력을 논한다. 한쪽에선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한 마케팅의 일환일 뿐이라고 말한다. 모두 맞는 얘기다. K-팝을 비롯해 드라마, 영화, 패션, 뷰티, 게임 등 지금의 K-콘텐츠를 키워내고, 다시 그것들로 채워진 서울은 지금 세계인들이 가장 동경하는 ‘스타일’ 그 자체다. 따라서 패션쇼를 단순한 신상품 전시가 아니라 공간의 가치와 문화적 취향까지 담는 콘텐츠로 여기는 명품 브랜드들이 서울을 탐내는 건 자연스럽다. 물론, 비즈니스 측면도 강하다. 명품 시장 규모 세계 7위, 1인당 명품 소비량 1위. 가격을 인상해도 해마다 매출액을 경신하는 나라. 바로 한국이다.

한국 대표 문화유산인 경복궁이 SNS 생중계를 통해 세계인들의 눈과 마음에 가닿았다고 하니, 뿌듯하고 자긍심이 생긴다. 하지만 동시에 가장 ‘힙’할수록 가장 ‘상업적’일 수밖에 없는 패션계의 이면을 떠올리면 씁쓸하다. 경복궁에서 열린 구찌 패션쇼는 BTS의 빌보드 1위, ‘기생충’의 아카데미상 수상, ‘오징어 게임’열풍과는 또 다른 차원, 그리고 새로운 단계로 K-컬처가 진입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나’의 일상과 아무 관계 없는 ‘K’의 실체를 목격한 것 같아 마음을 어지럽힌다. 사실 패션뿐만이 아니다. 지금 ‘K’라는 자장 안에서 거의 모든 문화 콘텐츠가 비슷한 방향으로 흐른다.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이 연출하고 정호연 배우가 런웨이에 서도(루이비통), ‘기생충’ 정재일 작곡가가 음악을 만들고 ‘K-헤리티지’ 경복궁이 세계로 발신돼도(구찌), ‘나’는 잠수교 출입 통제가 불편하고, 경복궁 앞 정체가 걱정될 뿐이다. 농담처럼 하는 얘기지만, 외국인들에게 ‘두 유 노 BTS?’를 백번 물어도 우리 삶은 달라지지 않는다.

같은 날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취임 1주년 간담회가 있었다. 박 장관은 자신이 경험한 ‘K’는 마치 ‘요술지팡이’ 같았다며 K-컬처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발표했다. ‘K’는 강력하고, 중요하다. 지난해 수출 130억 달러를 돌파한 K-콘텐츠는 국가적 차원의 ‘먹거리’다. 경복궁 어도(御道·임금이 다니던 길)가 기품 있는 패션쇼장으로 변신할 때는 정말 ‘마법’ 같았다. 다만, 이제는 그 요술지팡이 효력이 ‘나’와 ‘너’에게까지 오는 방안도 모색할 때다. 그렇지 않고서는 K는 더 빛나고 거대해지더라도, 어느 순간 국민의 관심과 마음에서 멀어질지도 모른다. ‘나’만 빼고 하나씩 다 든 것 같은 루이비통과 구찌 가방에 시선을 뺏긴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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