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 베트남서 지뢰밟고 사망[역사 속의 This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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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2 09:02
업데이트 2023-05-22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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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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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37년 스페인 내전을 촬영하는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의 모습을 그의 연인이자 동료였던 게르다 타로가 찍은 사진.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 제2차 세계대전 등 20세기 세계 곳곳의 전쟁에 뛰어들어 전쟁의 참상을 세상에 알린 전설적인 종군 사진기자 로버트 카파가 한 말이다.

본명은 앙드레 프리드만으로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31년 정치적 박해와 반유대주의를 피해 독일로 건너간 그는 사진 에이전시 데포트에서 암실보조원으로 일하다 러시아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의 연설 장면을 찍어 사진가로 인정받는다. 나치 집권 후 프랑스로 망명해 게르다 타로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로버트 카파’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자 두 사람은 스페인으로 갔다. 병사가 머리에 총탄을 맞고 쓰러지는 순간을 포착한 ‘어느 공화파 병사의 죽음’으로 카파는 전 세계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의 대표작인 이 사진은 연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연인이자 동료였던 타로는 1937년 7월 탱크에 치여 숨졌고, 전쟁터에서 사망한 최초의 여성 사진기자로 남게 됐다.

타로의 죽음으로 절망에 빠진 카파를 일으켜 세운 건 카메라였다. 전장을 오가던 그는 1944년 6월,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취재한 유일한 사진기자로 포탄과 총탄이 쏟아지는 오마하 해변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초점이 흔들려 당시의 공포와 긴박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사진을 라이프지는 ‘그때 카파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는 설명을 붙여 게재했고, 종군기자로서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사진에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초반부 전투 장면의 영감을 얻었다.

1947년에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등 걸출한 사진가들과 세계적인 보도사진 작가 그룹인 ‘매그넘 포토스’를 만들었다. 당대 유명 예술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해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파블로 피카소 등과 우정을 쌓았고, 할리우드 스타 잉그리드 버그먼과 밀애를 나눴다. 버그먼이 청혼했지만, 평생 정착하지 못하고 보헤미안의 삶을 살았던 카파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그가 다시 돌아간 곳은 전장이었다.

목숨 걸고 전쟁터를 누비며 포토저널리즘의 신화를 만들어낸 카파는 1954년 5월 25일 41세에 인도차이나 전쟁을 취재하다가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아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다.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는 카메라가 쥐어져 있었다. 그의 이름을 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자정신을 ‘카파이즘(capaism)’이라 부른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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