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발로 의사 소통했던 누나… 가슴엔 할 말 얼마나 많았을지[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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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3 09:05
업데이트 2023-05-2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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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생전에 누나(왼쪽 누워 있는 사람), 엄마(오른쪽)와 함께 찍은 사진. 필자 제공



■ 그립습니다 - 이정금(1961∼2016)

내게 두 살 터울의 아픈 누나가 있었다. 아주 어릴 적 원인 모르게 앓은 병으로 장애가 아주 심했다. 두 손은 전혀 사용하지 못했고 한쪽 발만 겨우 사용할 수 있었다. 말은 못 했지만, 다행히 정신은 멀쩡했다. 모든 의사소통 방식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물어보면 원하는 것이 아니면 가만있고 맞으면 발로 바닥을 두드렸다. 워낙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소통을 해왔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금방 알아차렸다.

누나는 고집이 상당히 셌다. 자기도 답답한 것이 많은지 간혹 굉장한 아집을 부려대기도 했다. 처음엔 달래도 보지만 그 단계를 넘어서면 불만에 찬 누나는 점점 더 크게 바닥을 두드렸고, 엄마는 어쩔 수 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맞은 후 한쪽 구석에서 훌쩍이는 누나를 보면 가슴이 아팠다. 그런 엄마도 당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가슴을 치며 우셨다.

그렇게 우리는 아픈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내가 대학을 다닐 즈음 하루는 누나가 나에게 이상한 행동을 했다. 발가락 두 개를 가지고 바닥에 대고 뭔가를 흉내 내듯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자주 하는 행동이 아니어서 조금 의아해했지만 그간 못 맞힌 것이 없었기 때문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누나도 답답했는지 얼굴과 온몸이 일그러졌고 나 역시 짜증이 났다. 누나는 계속 똑같은 행동을 계속했지만, 결국 알아내지를 못했다.

주변 이웃이나 친척들이 오면 불쌍하다며 누나에게 용돈 삼아 돈을 주곤 했다. 어느 날 누나는 무슨 마음인지 엄마에게 자석으로 된 한글 글자판을 사달라고 했단다. 그러더니 모아둔 돈으로 이웃 초등생에게 용돈을 조금씩 주면서 글자를 가르쳐 달라고 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누나가 글을 배운다는 것을 한참 지나서 알게 됐다.

엄마는 문맹이라 글을 가르쳐 줄 수 없었고, 나는 놀기 바빠 누나에게 글을 가르쳐 줄 생각을 못 했다. 사실 그때까지는 글을 몰라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밤에 집에 들어가면 누나는 컴컴한 방구석에 혼자 앉아 끙끙거리며 글자판 위의 자음 모음들을 이리저리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슬쩍슬쩍 본 누나의 글솜씨는 조금씩 늘어가는 것 같았고 나한테 간혹 질문하기도 했다. 그때까지 누나는 바깥세상의 모든 일을 TV에서 배워왔고 웬만한 것은 엄마보다도 더 잘 알았다. 만약 저런 병을 앓지 않았다면 얼마나 똑똑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

몇 달 뒤 누나는 약간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나는 그때 일이 떠올라서 그 당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물어보았다. 갑자기 누나는 경기를 일으키듯 놀라며 글자판 앞으로 부리나케 갔다. 마치 이날을 기다렸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그러더니 글자를 하나하나 맞추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다려 나에게 내민 글자는 바로 ‘병아리’였다. 병아리를 사달라고 한 것이었다. 갑자기 나는 가슴이 먹먹했다. 그러고 내 눈에는 금방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누나도 오열하며 구석으로 가서 흐느끼며 울었다.

지금 엄마와 누나는 다 돌아가셨다. 나는 한평생 아픈 누나와 같이 살았기 때문에 셀 수 없는 많은 아픔을 가슴에 간직하고 있다. 그중에서 그나마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리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지금도 간혹 누나가 어릴 적 허름했던 우리 집 방바닥을 한쪽 발로 세게 두드리는 환청이 한 번씩 들린다. 지금 그런 누나의 발을 한번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면서 그동안 고생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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