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민주당 ‘최악 위기’의 근본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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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입력 2023-05-2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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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겸 연세-EU 쟝모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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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 중산층 野 이탈 가속
정치적 자원 상실은 존립 위협
포퓰리즘과 팬덤 결합 땐 심각

부당한 정치는 위법 이전 문제
과학성과 논리적 自淨이 관건
尹정부 실책 공격만으론 한계


더불어민주당이 상실한 것이 빨간색 점퍼만은 아니다. 자유주의적 중산층의 지지라는 중요한 정치적 자원을 상실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손실인지 아직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러나 제대로 정치경제사를 공부해 본 사람이라면 계층 혁명의 궁극적인 주역은 교육과 재산권을 보유한 중산 부르주아 계층임을 안다. 이들과 연합하지 않고는 혁명은 고사하고 선거에서 이길 수도, 정권을 유지할 수도 없다.

18세기 영국의 애덤 스미스는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자신들을 식민지화한 채, 대영제국의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모든 이권을 독점한 잉글랜드의 왕과 귀족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상층부 상공업자들을 비판하기 위해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을 썼다. 이 책은 한 나라의 부(富)는 국가가 만드는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 속에서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 즉 시민의 수가 증가함으로써 확대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가의 개입은 집권 세력의 배만 불릴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영국의 보수 기득권 세력들은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을 탄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논리로 내재화했다. 국가 덕에 부를 얻고 나니 국가로부터 이를 보호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19세기 자유주의의 전성기를 맞은 영국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간섭하지 않는 최소국가가 미덕이 됐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대영제국은 보수 기득권층이 신흥 부르주아 계층을 끌어안아 건설된 것이다.

중산층과 보수정치 세력 간의 연합이 다시 등장한 것은 1980년대에 시작된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자유방임주의에 대한 실망으로 국가 역할의 확대를 열망하던 중산층은 노동 진보세력과 손을 잡았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목격한 보수세력도 정치적 양보를 함으로써 반동적 혁명을 예방하고자 했다. 그러나 중산 부르주아 계층은 이내 복지국가의 비효율성과 낭비에 환멸을 느꼈고, 보수세력과 연합해 개혁을 도모했다. ‘작지만 강한 국가’라는 신우파의 모토는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의 결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통적으로 중산층은 보수정당의 지지 세력이었다. 그러나 보수정권 아래서 금융위기나 대통령 탄핵이 일어나며 중산층은 진보정당으로 지지를 선회했다. 문재인 정부도 그렇게 탄생했다. 하지만 문 정부는 그 지지 보존에 실패했다.

문 정부의 정치경제적 패착은, 노동계층과 하위 계층의 요구에만 부응하는 포퓰리스트적 정책을 도모함으로써 자유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의 중산층이 상당수 이탈했다는 점일 것이다. 이재명 대표 체제의 민주당에서 이러한 문제는 더욱 악화하고 있다. 문제는 돈의 액수가 아니라, 몇몇 주도 정치인의 부당한 정치 행위 방식이다. 중산 시민계층이 중시하는 상식과 신뢰를 훼손했다. 이는 합법 또는 위법의 판결을 넘어서는 상위의 기준이다. 팬덤 정치는 공정한 경쟁에 입각한 정치 질서를 위협한다.

한때 같은 진보 진영이던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보수정당의 주도 세력으로 변신한 현상의 의미를 민주당은 차근히 분석해 봐야 한다. 노조와 진보 정치인들의 실책이 온전히 드러나면 중산 부르주아 계층은 이를 결코 간과하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산물인 이들은 합리주의로 무장했다. 이들은 노동이든 자본이든 공정한 경쟁의 룰을 깨거나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하면 저항한다. 민주당이 강남좌파의 진보적 의식이 중산 부르주아 계층 전체를 대표하는 것으로 판단했다면 이는 심각한 착오다. 신종 좌파의 진보적 행태가 이타주의에 기반한 사례도 있지만,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이기적 선택인 경우도 있다.

윤 정부가 진보 정치 세력을 대상으로 한 진실 게임에서 승기를 잡는다면 현재 모습의 민주당은 역사상 가장 위험한 순간을 맞게 될지 모른다. 민주당은 박애주의와 온정주의를 혼동하면서 진보의 존재 가치를 망각하고 있다. 과학성과 순수성 그리고 논리적 자정(自淨)능력을 확보하지 못하면 진보세력의 개혁 프로그램은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작지만 강한 정부’를 설파하며 중산 부르주아들에게 다가서는 윤 정부의 ‘자유전략’이 단지 절반만 성공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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