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에선 거북이가 이겼지만, 제약·바이오는 토끼처럼 빨라야 산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5-26 09:12
  • 업데이트 2023-05-2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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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이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의 기본 책무는 신약개발과 양질의 의약품 생산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노 회장은 “빅파마에 견줘 미흡한 연구·개발(R&D)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백동현 기자



■ 현안인터뷰 -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2027년 ‘6대 제약강국’ 목표
자본·기술력 갖춘 빅파마 맞서
속도·효율성까지 앞서야 가능

신약, 장기간 조 단위투자 필수
해외 1개사가 년 19조원 투입
국내 제약사 전체 2.9조 불과

코로나 19로 제약주권 깨달아
한, 의약품 생산역량 갖춘만큼
원료 자급률 50%대로 높여야



지난 3월 2일 공식 취임한 노연홍(68)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은 지난 2월 정부가 제시한 ‘2027년 글로벌 6대 제약·바이오 강국 달성’ 비전을 뒷받침해야 하는 중책을 맡았다. 그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가 글로벌 빅파마(대형 제약사)에 맞서기 위한 전략으로 ‘속도’와 ‘효율성’을 강조했다. 취임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동화 속에서는 거북이가 토끼를 이기지만, 제약·바이오 업계의 현실은 다르다”며 “더 좋은 기술과 자본력, 인력을 가진 글로벌 빅파마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어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고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현실에 기반을 둔 냉철하고 합리적인 사고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노 회장을 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서 만났다.


―취임한 지 두 달이 지났는데 소감이 어떤가.

“10여 년 전 공직에 있을 때보다 제약·바이오 업계 위상이 크게 올라간 것을 느꼈다.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한 제약·바이오 산업은 명실상부한 국가 미래 성장동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협회는 정부와 교감을 통해 육성·지원 정책을 조율하고, 성장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개선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런 시기에 회장을 맡게 돼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기억나는 소통 행보가 있다면.

“총 272개 회원사가 있는데, CEO 등을 차례로 만나 애로사항과 산업 지향점 등을 청취하는 데 힘썼다. 정부 관계자들도 찾아 제약·바이오 산업의 중요성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지원에 대한 감사도 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들과도 소통을 통해 주요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협조를 당부했다. 취임 직전 지난 2월 말 윤석열 대통령이 ‘바이오 헬스 신시장 창출 전략’을 직접 발표했는데, 그날 제약·바이오 산업의 가능성과 협회에 주어진 사명을 다시금 깨달았다.”

―관료인 출신으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한다.

“기대감이 있다는 데 대해 감사를 표한다. 다른 산업과 달리 제약·바이오 산업은 정부 정책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약품 등을 개발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한 데다, 식약처의 엄격한 안전성·유효성 검토를 거쳐 허가도 받아야 한다. 정부 정책에 대한 이해 없이는 주도하기가 쉽지 않다. 약업인 출신은 아니지만 공직에 있을 때 관련한 많은 업무를 맡아 이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꽤 있는 편이다.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정부 정책과 산업계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현주소를 어떻게 평가하나.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규모는 2021년 기준 세계 시장의 1.3% 수준인 25조4000억 원이다. 세계 순위로는 13위 정도다. 아직은 규모 면에서 상위 국가와 큰 차이가 있다. 그간 복제약(제네릭)과 내수 위주의 저위험·저수익 사업에 치중한 측면이 있다. 연구·개발(R&D)을 본격 시작한 지도 30여 년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은 제약·바이오를 미래 주력 산업으로 인식하고 글로벌 강국으로 나가고자 하는 명확한 목표의식이 있다. 적극적인 투자와 연구·개발(R&D),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 글로벌 진출 등을 통해 산업 경쟁력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시기다. 국제적인 신인도는 과거에 비해 크게 올랐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백신 생산 기지로 주목받고 지난해 2월에는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글로벌 바이오 인력 양성 허브’로 지정됐다. 기업들의 R&D 투자 노력에 힘입어 현재 36개의 신약 허가도 이뤄졌다.”

―아직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은 미흡하지 않나.

“신약 개발에는 10여 년간, 많게는 조 단위의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2021년 기준 국내 상장 제약 기업 274개사의 R&D 투자비용은 2조9000억 원에 그쳤다. 반면 해외에선 지난해 로슈 한 곳이 R&D에 19조 원이 넘는 비용을 썼다. 다만 반드시 빅파마만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희귀 질환, 면역 항암제 등에 특화된 중소기업들이 식품의약국(FDA) 허가 신약의 38%를 점유하고 있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에도 기회가 있음을 시사한다. 규모에 한계가 있지만 공동 R&D와 재무·전략적 투자, 인수·합병(M&A) 등 다양한 협업 모델을 구축하고 도전해야 한다. 저마다 영역에서 키운 기술·사업화·임상 개발 역량 등을 합하고, 민관 협업을 통해 규모·효율성 향상을 지원하면 혁신 성장 기회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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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제약·바이오 산업 성장을 위해 어떤 정책이 시급한가.

“국무총리 산하 디지털·바이오 헬스 혁신위원회 설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정부의 제약·바이오 지원 사업은 체계성·효율성이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들의 기초·임상연구, 제품화 등 주요 지원사업이 연계성 없이 분절적으로 이뤄졌다. 범정부 차원의 컨트롤타워인 혁신위가 앞으로 R&D, 정책금융, 세제지원, 규제법령 개선, 인력 양성, 기술거래소 설치, 글로벌 진출 등을 총괄하며 정책 조정자 역할을 해야 한다. 후발 주자로서 글로벌 빅파마를 따라가려면 훨씬 더 빨리 뛰고, 국가적으로 지혜롭게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쳐야 한다. 조속히 혁신위가 설치·가동됐으면 한다.”

―지난 2월 정부가 ‘2027년 글로벌 6대 제약·바이오 강국 달성’ 비전을 제시했다. 블록버스터 신약 2개 창출, 글로벌 50대 제약·바이오 기업 3곳 육성, 의약품 수출 2배 확대 등 목표가 담겼는데.

“지혜롭게 노력한다는 전제하에 충분히 달성이 가능하다고 본다. 정부와 국회, 산업계, 대학, 연구소 등이 가진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이 격차가 큰 1∼4위까지 현실적으로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다만 블록버스터 신약 2개만 만들면 6위까지는 올라설 수 있다. 지난 30∼40년간 의학, 생물학 등 제약·바이오 기반 학문에 뛰어난 인재들이 많이 들어왔다. 인적 자원의 활약과 산업계 혁신 노력, 정부의 강력한 지원 등이 뒷받침되면 충분히 길이 열릴 것이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강국 중 주목하는 국가가 있나.

“한국과 산업 생태계가 비슷한 일본이다. 일본은 합성의약품 제네릭부터 개량 신약, 신약까지 모두 집중하고 있다. 지난 40∼50년간 제네릭 위주 생태계를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약을 만들어나가는 우리로서는 일본 사례를 살펴야 한다. 일본은 ‘성장전략 2021’을 통해 바이오와 건강 의료, 인공지능(AI) 등 10대 핵심 기술 분야에서 경제 안보를 위한 기술 우위 확보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 자국 내 바이오 제조 인프라 및 제품 의무 구매 확대, 연구 혁신 강화와 산업화 신속지원 등에 힘쓰는 상황도 눈여겨봐야 한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와 제약주권 확보가 주요 과제로 제시된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에 백신·제약 주권의 필요성을 깨닫게 했다. 후진국과 개발도상국은 물론 선진국조차 의약품 부족 현상을 겪으면서 각국이 수출 봉쇄와 같은 자국 우선주의와 원료의약품 자국화 전략을 강화했다. 한국은 완제의약품의 생산 역량이 충분하지만 이를 만들 수 있는 원료의약품 공급이 끊기면 당장 수급난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20%대인 원료의약품 자급률을 50% 이상으로 높이고 우리가 필요한 원료를 자국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료의약품 자급률이 낮으면 세계적인 전염병과 기후변화, 자연재해 등 긴급상황이나 다른 국가들의 외교적 논리에 따라 국민 건강이 좌우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 등이 자국 내 원료의약품 생산 및 제조업 활성화 정책에 힘을 쏟아붓는 이유다.”

―산업계는 어떤 노력에 집중해야 할까.

“산업계의 기본적 책무는 신약 개발과 양질의 의약품 생산이다. 특히 의약품은 생명과 직결되는 만큼 제조 및 품질관리에 있어 일관되게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빅파마에 비해 미흡한 R&D 경쟁력 강화도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선택과 집중 전략도 중요하다. 아무리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빅파마라도 수백 종에 달하는 모든 질병을 전부 커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협회 차원의 향후 계획과 임기 중 목표는 무엇인가.

“올해 협회는 제약·바이오 강국 실현을 통해 국민 건강과 국가 경제를 선도하겠다는 비전을 세웠다. 이를 위해 블록버스터 신약 창출 환경 조성, 의약품 자급률 및 산업 경쟁력 동반 제고, 글로벌 중심 국가 도약 기반 마련, 산업 고도화 환경 구축 등을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특히 제약의 주권 확립과 개방형 혁신 생태계 조성 작업에 힘쓸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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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없던 걸 만들면 이윤 지속가능 창조적 독점 위해 ‘제로투원’ 지향”

“가득 차면 넘침을 경계하라”
부친이 써준 글귀가 좌우명


“전에 없던 새로운 하나를 창조해 모든 사람에게 편리함을 주면서도 창조자에게 지속 가능한 이윤을 창출하게 하는 것이 바로 창조적 독점입니다. 제약·바이오 산업이야말로 이런 창조적 독점을 지향하는 사업으로 볼 수 있어요.”

노연홍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문화일보 인터뷰에서 최근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페이팔 공동 창업주인 피터 틸 팰런티어 테크놀로지 회장이 쓴 ‘제로 투 원(ZERO to ONE)’을 꼽으며 이같이 말했다. 제로 투 원은 기존의 만들어진 것에 더해 비슷한 아이디어를 적용하면 1부터 N까지의 수평적 확장에 그치지만, 새로운 분야에 도전해 없던 것을 새로 만들면 0에서 1로 가는 수직적 확장이 가능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수직적 확장에 도전해 독점 기업이 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노 회장은 “신약 사업은 과정이 너무 힘들지만, 성공만 하면 특허를 기반으로 한 독점 사업권을 20년간 부여한다”며 “특히 약이 없었을 때 치료가 불가능했던 환자들의 후생을 높이면서도 기업에는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합성의약품 복제약(제네릭)을 통해 양질의 의약품을 국민에게 제공할 의무가 있지만 결국 제로 투 원을 지향해야 한다”며 “수평적 확장과 수직적 확장이 균형적으로 가야 한다는 측면에서 틸 회장의 주장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고 설명했다.

노 회장은 소통을 중시하는 보건·의료 전문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영국 요크대에서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파견 근무를 하는 등 영국과 인연이 깊고 부드러운 업무 스타일도 갖춰 ‘영국 신사’라는 별명을 얻었다.그는 “리더가 교만하지 않으려면 사람에 대한 존중과 겸손함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회장은 27회 행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부친이 붓글씨를 써 선물해준 글을 평생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당 태종의 황금기를 도운 명재상 위징(魏徵)이 ‘거고사추 지만계일(居高思墜 持滿戒溢)’이라는 말을 했는데, 높은 곳에 거처하면 떨어질 것을 생각하고 가득 찰 정도로 가졌으면 넘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마음에 새기고 예나 지금이나 임하고 있다”고 했다.

노 회장은 보건복지부 요직을 거쳐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청와대 고용복지수석비서관, 가천대 부총장,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코로나 특별위원으로 참여했다.

최준영 기자 cjy324@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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