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팔 끓이고 팍팍 무쳐낸 찜·국물·나물 ‘국민 반찬’ [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1 09:06
  • 업데이트 2023-06-0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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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팔팔 끓인 육수에 콩나물을 넣어 시원한 맛을 낸, 전주식 콩나물국밥. 한국인의 대표 해장국이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콩나물

한국인만 즐겨 먹는 유일한 채소
해외선 코리안 숙주나물로 불려
단백질·식이섬유·비타민C 풍부

건어물육수에 수란 등 고명 올린
전국 최고 향토 음식 전주식국밥
코다리 등 ‘찜’ 속 콩나물도 별미



코미디언 고 이주일은 1980년대 멕시코 가요 ‘베사메 무초(Besame mucho)’를 개사한 코미디 노래 ‘콩나물 무쳐’로 인기를 끌었다. “고춧가루 넣고 참기름 넣고 팍팍 무쳐”로 끝나는 노랫말처럼 콩나물은 여느 집에서 모두가 즐겨 먹는 ‘국민 반찬’이던 시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콩나물은 거의 한국인만 먹는 채소다. 아니 지금도 거의 매일 먹는다. 의심이 난다면 한번 떠올려보라. 최근 며칠 동안 콩나물을 먹지 않았던 날이 있었는지. 하루 이틀이 멀다 하고 집 밥상에 오르고 식당 기본 찬으로 깔려있다. 그것도 아니라면 얼마 전 먹은 국과 찜, 볶음에 모두 들었다. 학창 시절 도시락 반찬이었으며 아무 재료 없을지라도 큰 고민 없이 끓일 수 있는 국거리요, 반찬거리였다.

예전에는 동네 ‘점방(店房)’마다 콩나물을 팔았다. 저녁 찬거리가 궁할 때 어머니가 “콩나물 100원어치만 사오너라” 하면 달려가 가게 앞 고무통에 빼죽하니 고개 내민 콩나물을 몇 움큼 사 왔다. 그러고 나면 금세 국이 되고 찬이 되어 밥을 단단히 챙겨 먹을 수 있었다. 세상이 바뀌었어도 마트나 슈퍼, 편의점에선 밀봉된 콩나물을 판다. 한국인의 식생활에 퍽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콩나물은 우리네 입맛을 쉽사리 변하지 않도록 지키는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추억은 한국인에게만 있다.

물산(物産)이 서로 비슷한 중국과 일본에서도 콩나물은 좀처럼 찾기 힘든 작물이다. 녹두를 싹 틔운 숙주나물은 많이 먹는다. 콩나물에 비해 훨씬 여린 식감 덕에 두루 쓰인다. 하지만 대두(백태)를 길게 키워 먹는 콩나물은 주로 한국에서만 생산 및 소비된다. 이게 알려지면서 요즘 외국에서도 콩나물을 두고 ‘한국 숙주나물(Korean soybean sprout)’이라 부른다. 과거 외국에 나가 사는 교민들은 콩나물이 먹고 싶으면 직접 집에서 시루에 키워 먹을 수밖에 없었다. 요즘은 규모 있는 한인마트에서 대부분 팔고 있지만….

콩나물은 대두에 햇빛을 가리고 수경재배한 나물을 이른다. 볕을 가리지 않으면 대가리가 녹색으로 변하고 육질이 질겨진다. 아직 양념이나 조리하지 않고 그저 키워 거뒀을 뿐인데 ‘나물’이라 이름 붙여 콩 자체와 구분한다. 대두를 많이 먹는 나라에서도 콩나물은 좀처럼 키우지 않는다. 먹을 때 특유의 비린내가 나는 까닭이다. 일단 콩나물은 날것이 아니라 무조건 데쳐 먹어야 하는데 이때 단백질 냄새가 물씬 풍긴다. 한국인이라면 다 아는 조리기술이 있다. 처음부터 아예 냄비 뚜껑을 열고 콩나물을 익히거나 아니면 콩나물이 완전히 익을 때까지 뚜껑을 열지 말아야 한다는 것. 소금과 마늘을 넣고 끓이면 비린내가 덜 난다는 조리 팁도 있다.

한국인의 밥상을 장악한 채소답게 우리 콩나물 재배의 역사는 꽤 길다. 고려 건국 즈음에 ‘구황작물’로 문헌에 등장한다. 935년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멸하고 통일을 이룰 때, 이후 개국 공신이 되는 배현경 장군이 보관 중이던 군량 콩에 싹이 튼 것을 먹어보았더니 맛도 좋고 양도 늘어나는 것에 주목했다. 이후 식량부족으로 굶주리던 병졸에게 냇물에 콩을 담가 콩나물을 키워 먹게 했다는 대목으로 처음 등장한다. 역사상 첫 등장 자체가 ‘저렴하고 먹을 만한 식재료’였던 셈이다. 물만 주면 양이 몇 배나 늘어나는데 누가 이를 마다할까. 게다가 빨리 자라기까지 한다. 최고의 구황작물이었다.

1236년 고려 고종대 저술된 것으로 알려진 의학서 향약구급방(鄕藥救急方)에는 콩나물을 대두황(大豆黃)이란 이름으로 소개하고 구체적 재배법도 적었다. 콩을 싹트게 한 뒤 햇볕에 말려 약재로 썼다는 것이다. 이후 조선시대 조리서 시의방(是議方·음식디미방)과 임원경제지(黃豆芽)에도 콩나물이 등장하니 우리 식생활에 이미 1000년 이상 자리를 잡아온 셈이다.

콩나물은 보통 소립종(크기가 작은 종류) 나물콩을 키워 사용한다. 껍질이 투명해서 국에 한두 개 들어도 크게 거슬릴 것이 없다. 다만 품종 개량이나 재배 기술을 활용해서 요즘은 껍질이 거의 없는 콩나물이 나온다. 껍질 자체가 얇아진 데다 쉬이 털어내기 좋도록 바꾼 결과이기도 하다. 다 비슷해 보이지만 찜용 콩나물과 국물용 콩나물, 나물용 콩나물이 따로 있다. 통통하고 짧은 것은 찜에 쓴다. 푹 익혀도 아삭한 식감이 그대로 살아있는 까닭이다. 콩나물국밥에 들어가는 것도 뿌리가 길면 먹는 데 불편하다. 얇고 기다란 것은 무쳐서 나물로 쓴다.

반찬이나 식재료로 콩나물을 많이 먹는 이유는 맛있고 영양분이 많은 데 비해 값이 싸서 그렇다. 농약이나 비료도 필요 없고 그저 암막을 친 공장에 두면 쑥쑥 자라니 비쌀 이유도 없다. 콩을 키웠을 뿐인데 영양분이 달라진다. 대두 단백질 덩어리인 콩에 싹이 나면 그 안에 식이섬유와 비타민이 생겨난다. 특히 비타민C는 콩나물에만 있고 콩에는 없다. 흔히 ‘콩나물 대가리’라 부르는 콩 자엽 부분은 단백질이 남아있다. 줄기(배축)엔 수용성 식이섬유, 뿌리엔 아스파르트산을 듬뿍 함유했다. 아르기닌도 상당량이 들었다. 피로해소와 해장에 좋다는 그 성분이다. 게다가 열량이 낮아(100g당 29㎉) 포만감을 충분히 주면서도 살이 찌지 않는 다이어트 식품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소금과 마늘 정도만 넣어 깔끔하고 시원한 맑은 콩나물국. 차갑게 해서 먹어도 맛있다.



예전엔 식감 때문에 뿌리를 뗐다. 옛날 TV드라마에서 저녁 준비하기 전에 온 식구가 둘러앉아 콩나물 뿌리와 콩 껍질을 떼는 장면은 왠지 익숙하다. 하지만 요즘 개량종은 그럴 필요가 거의 없다. 옛날보다 손질이 편해진 덕인지 더 많은 요리에 쓰는 듯하다. 해장에 좋은 콩나물국은 바지락을 넣든 마른 멸치를 넣든 국물이 시원하게 우러난다. 김치나 고춧가루를 넣어 발갛게 끓이거나 아니면 소금과 마늘, 대파 정도만 넣고 맑게 끓여내기도 한다. 요즘처럼 더위가 찾아오면 콩나물 냉국을 만들기에도 좋다.

콩나물을 주재료로 한 가장 유명한 요리(?)는 전주식 콩나물국밥이다. 호남 특유의 밑국물 식문화답게 각종 건해물을 넣고 우린 국물에다 콩나물을 넣어 팔팔 끓여낸 음식이다. 전주는 예로부터 콩이 유명한 곳. 그래서 콩국수와 콩나물 잡채 등 콩을 이용한 요리도 다양하다. 콩나물국밥은 그중에서도 가장 사랑받는 메뉴다. 전국구 향토요리로 잘 알려진 비빔밥보단 차라리 콩나물국밥이 현지인에겐 더욱 친근하다.

콩나물국밥은 얼핏 멀건 콩나물국에 밥을 말아낸 음식이라 생각되겠지만 전주식(정확하게는 남부시장식)은 다르다. 미리 건어물과 오징어 등으로 우려낸 육수를 팔팔 끓인 후 거기다 콩나물을 넣어 시원한 맛을 낸 다음 각종 고명을 올려 먹는 등 뜻밖의 화려함이 깃들어 있다. 수란과 장조림, 젓갈, 김까지 곁들이면 서민 음식 이상의 품격이 느껴진다. 딸려 나온 수란은 뜨거운 국물과 밥, 김가루를 곁들여 먼저 먹는 것을 권장한다. 달걀 단백질이 더해지면서 좀 더 든든하고 확실한 해장을 담보한다. 해장은 수분과 단백질의 빠른 공급이 이뤄내는 결과다.

전주나 그 음식 영향권 이외 지역에서 콩나물국이라 하면 대부분 맑은 국이다. 소금과 마늘 정도만 넣고 끓여낸다. 김치나 고춧가루를 살짝 넣기도 한다. 이 또한 깔끔하고 시원한 맛으로 인기가 좋다. 백반집이나 매콤한 찜, 볶음 요리를 내는 집에서 곁들이는 국으로 흔히 이런 국을 낸다.

콩나물 자체가 주연인 음식으로는 콩나물밥도 있다. 콩나물을 넣은 비빔밥이 아니라 아예 밥을 안칠 때 콩나물을 넣고 짓는다. 삶은 물로 밥을 짓고 나중에 나물을 고명으로 올려 내는 집도 있다. 양념간장으로 쓱싹 비벼 먹으면 개운하고 구수한 맛이 좋다. 양념간장 맛에 많이 의존하는 음식이다. 다진 고기나 잘게 썬 김치를 넣기도 하는데 이쯤 되면 ‘콩나물비빔밥’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정체성이 희미해진다.

음식 이름엔 콩나물이 들어있지 않지만 콩나물은 전골과 볶음, 찜, 냉채 등 요리에 단골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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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찜 요리에는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해물찜이나 아귀찜, 코다리찜, 대구뽈찜 등 볶는 방식의 찜요리를 할 때 콩나물을 즐겨 쓴다. 콩나물의 식감이 좋고 양념이 잘 배어들기도 하거니와 아귀나 대구뽈 등의 살점과도 함께 잘 어울리니 예전부터 콩나물을 많이 썼다.다만 국이나 찌개 요리에 콩나물을 너무 많이 쓰게 되면 그 향이 모든 맛을 지배해 버린다. 한식을 거대한 드라마 무대라 치면 콩나물은 나무랄 데 없는 주연급. 하지만 특출난 조연일 때가 더 인기 있는 듯하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신뱅이 = 콩나물국밥. 전주인데 남부시장식은 아니다. 한옥마을 내 한옥에서 비빔밥과 콩나물국밥을 파는 집이다. 황태와 밴댕이 등 건어물과 채소를 우려낸 육수에 백김치로 맛을 낸다. 수란조차 없다. 대신 김치가 다 했다. 국물맛에 김치가 들고 반찬으로도 김치를 낸다. 김치 명인 안명자 사장이 운영하는 곳이다. 직접 만든 모주 한잔도 빼놓을 수 없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경기전길 153-9. 8000원.

◇일해옥 = 콩나물국밥. 전주 이외 지역에서 가장 콩나물국밥 잘하기로 유명한 지역이 익산이다. 이 중 일해옥은 토렴식으로 콩나물국밥을 끓여내는 가게로 오랜 시간 시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멸치육수 시원한 국물에 수북하게 들어간 튼실한 콩나물이 맛을 보탠다. 수란 대신 날달걀을 하나 동동 띄워 준다. 전북 익산시 주현로 30. 7000원.

◇행복한콩이야기 = 콩나물밥. 흔한 음식이지만 파는 집이 드물다. 종로 뒷골목에서 콩나물과 관련된 음식만 파는 집이다. 그냥 콩나물밥과 고기를 올린 것이 따로 있다. 밥을 지을 때 넣은 것이 아니고 콩나물 채수에 밥을 짓고 아삭한 콩나물을 수북이 얹었다. 담백하지만 밥에 그득 밴 콩나물 향도 양념장 맛도 일품이다. 서울 종로구 수표로 89-11. 6000원.

◇해금강 = 복맑은탕. 동대구역 앞 노포다. 다양한 복요리를 판다. 맑은탕(지리)을 주문하면 팔팔 끓이다 콩나물만 빼서 따로 즉석으로 무쳐준다. 참기름과 고춧가루, 식초까지 넣고 발갛게 무쳐낸 콩나물 무침이 특별한 전채 역할을 한다. 해장은 덤이다. 대구 동구 신암남로 133. 1만9000원.

◇훼드라 = 해장라면. 1973년 개업한 신촌의 터줏대감 선술집. 콩나물과 청양고추를 넣고 맵고 시원하게 끓여낸 해장라면이 시그니처 메뉴다. 국물을 들이켜면 눈물이 찔끔 난대서 ‘최루탄’이란 이름까지 붙었다. 서울 서대문구 연세로5길 32. 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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