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여담]‘촌장’ 김성수 주교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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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호 논설고문

“성직자로서 사랑을 실천하라고 가르치면서도 나는 사랑을 실천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았는지를 하루하루 돌아보며 살고 있다.” 김성수(93) 대한성공회 은퇴 주교가 한 말이다. 그를 지켜보며 존경해온 각계각층 저명인사 93명이 지난해 12월 헌정한 문집 ‘우리 마음의 촌장님’을 펴내고 북 콘서트를 연 추운 날의 자리였다. 배우 윤여정이 코트를 벗고 스웨터 차림인 것을 본 김 주교는 주변에 “코트를 좀 입혀 주세요. 감기 들면 안 돼요”라고도 했다. 행사 시작 때부터 펑펑 울던 윤여정은 그 말에 “주교님 늙은 것도, 제가 늙은 것도 속상해요. 오래 살아 주세요” 하며 울음을 그쳤다. 김 주교는 “너나 오래 살아라” 하고 웃으며 농담도 건넸다. 그 자리에 있던 이정호 신부는 이런 일화도 전했다. “군 복무를 해병대에서 한 제가 신학생 시절에 ‘교단이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에 해병대 복장으로 유인물을 돌렸다가 김 주교에게 불려가 들은 꾸지람이 ‘이 길은 그렇게 가는 길이 아니다’는 말이었다.” 그 뒤로 이 신부는 김 주교가 발령낸 경기도 마석의 한센인 마을에서 23년 동안 한센인들과 외국인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대한성공회 초대 교구장·관구장을 지낸 김 주교는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과 재산을 몽땅 털어, 인천 강화도에 발달장애인들의 일터인 ‘우리 마을’을 2000년 설립·운영해 오고 있다. 그 마을 ‘촌장’이다. 그는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나눔의 성자(聖者)’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대명사’ ‘어떤 이유로든지 한 번도 불평한 적 없는 진정한 성직자’ 등으로 일컬어진다. 현재 서울교구장인 이경호 주교도 “김 주교님의 삶은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항상 기억하며 본받고 싶어 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김 주교 책상 위에는 예쁜 디자인의 연필이 쌓여 있다. 발달장애인들이 커피 찌꺼기로 생산한 ‘커피 연필’이다. 판매 수익금 전액은 그들을 위해 사용된다. 김 주교는 그들의 자립을 더 도우려고 “우리가 평소 마시는 커피 두 잔의 찌꺼기로 한 자루씩 만드는 ‘커피 연필’을 많이 팔아야 한다”고 한다. 오는 6월 12일이 성인(聖人)에 가까운 김 주교 생신이다. “‘우리 마을’ 안에 발달장애 노인 전문시설을 마련하는 것이 남은 사명”이라는 김 주교 소망이 빨리 이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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