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천재 수학자 튜링, 동성애 밝혀지며 42세에 극단 선택[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5 09:03
  • 업데이트 2023-06-0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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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오른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암호해독기 ‘봄베’(왼쪽)를 만들어 난해하고 정교한 독일군의 암호체계인 ‘에니그마’를 풀어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 천재 수학자이자 ‘컴퓨터 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앨런 튜링이 1950년 논문 ‘컴퓨팅 기계와 지능’에서 던진 질문이다. 그는 기계가 지능을 지녔는지 판별하는 ‘튜링 테스트’를 제안했다. 질문자가 컴퓨터와 인간과 대화해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구별할 수 없다면 컴퓨터가 지능을 가졌다고 간주하는 것이다. 70여 년 전, 인공지능(AI)이라는 용어조차 없던 때였다.

1912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튜링은 케임브리지대 킹스 칼리지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프린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36년 24세 때 고안한 계산을 수행하는 가상의 기계인 ‘튜링 머신’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 컴퓨터의 이론적 기초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 정부 암호해독반 책임자로 발탁된 그는 암호해독기 봄베(Bombe)를 만들어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독일군 암호체계인 ‘에니그마(Enigma)’를 풀어내 연합군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종전을 2년 정도 앞당기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한 전쟁 영웅이라 평가받는 그의 공적은 군사기밀로 수십 년 동안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전후 국립물리연구소에서 컴퓨터 개발 프로젝트 팀장을 맡았고, 1948년부터 맨체스터대 컴퓨터연구소 부소장으로 일하며 AI 연구의 초석을 다졌다. 영국왕립협회 회원으로 선출되고 대영제국 훈장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듯했으나, 1952년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추락하기 시작했다.

연구직과 공직에서 쫓겨나고 당시 중죄였던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고 여성호르몬 주사를 투여하는 화학적 거세를 당하게 된다. 신체적 변화에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1954년 6월 7일 42세의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신 옆에는 청산가리를 주입한 후 베어 문 사과가 놓여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09년 튜링에 대한 부당한 대우에 공식 사과했고, 2013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그를 사면했다. 비운의 천재 수학자의 드라마틱한 삶은 2014년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만들어졌다.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66년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이 제정됐다. 2021년에는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인 마거릿 대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 쟁쟁한 후보들을 제치고 50파운드 지폐의 새로운 얼굴이 됐다. 지폐에는 컴퓨터와 AI의 출현을 예측하며 시대를 앞서간 튜링이 남긴 말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앞으로 다가올 일의 맛보기일 뿐이며, 앞으로 일어날 일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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