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햄·만두·어묵… 살이 쪄도, 사리 추가![이우석의 푸드로지]

  • 문화일보
  • 입력 2023-06-08 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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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만두, 쫄면, 라면, 야채사리 등 10여 가지 사리를 넣을 수 있는 마복림떡볶이. 사리에 따라 다른 음식을 즐길 수 있다.



■ 이우석의 푸드로지 - 사리

‘사리다’에서 나온 순우리말
동그랗게 감은 국수뭉치 뜻
점차 ‘모든 추가메뉴’로 확대

즉석 떡볶이에 계란·소시지
김치찌개에는 라면·돼지고기
추가 아닌 ‘필수’로 맛의 완성

손님상서 끓이는 음식에 많고
싼값에 푸짐한 인심 만나기도



세계적으로 한식, K-푸드의 인기가 높다.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를 강타한 K-드라마 열풍에 힘입어 한식의 매력이 알려지며 그 인기가 동반 상승하고 있다. 방한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한국 방문 목적 설문조사 결과에는 항상 미식 탐방이 선두권에 포진한다.

글로벌 미식 시장에서 K-푸드의 영향력은 나날이 오르고 있는데 그 인기 요인을 분석하자면 다음과 같다. 채소를 많이 섭취하고 발효 과정을 거치는 건강식이면서 한꺼번에 쫙 깔아주는 푸짐하고 다양한 반찬 문화. 그리고 이를 웬만하면 다시 채워주는 넉넉한 인심을 꼽는다. 특히 거의 모든 사이드 메뉴를 주문할 때마다 돈을 지불해야 하는 구미권과 일본 등에서 온 외국인들은 (미리 알고 있었다고 해도 막상 받아들면) 깜짝 놀라게 마련이다. 일본 인기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에도 잘 나와 있다. 한국편(시즌7)에는 그리도 많은 식당을 다녔던 주인공 고로 씨가 화려하게 차려진 한식 반찬에 감동하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맥락에서 한국의 ‘사리’ 식문화 역시 저렴한 비용에 푸짐하게 음식을 맛볼 수 있는 한식의 강점으로 꼽힌다. 음식을 주문하고 걸맞은 사리를 추가하면 보다 넉넉하고 맛있게 즐길 수 있다. 국물요리가 많은 한식에 딱 어울리는 식문화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곱창전골에는 으레 넣어 먹는 우동사리.



사리에는 여러 종류가 있지만 사실 원뜻은 국수 종류를 이르는 말이다. 순우리말 ‘사리’는 동사 ‘사리다’에서 나온 말이다. 정확한 뜻은 ‘국수, 새끼, 실 따위를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 또는 그렇게 감아놓은 ‘뭉치’라는 의미다. 그러던 것이 이젠 ‘추가메뉴’로 변형되어 쓰이고 있다. 이유는 냉면집 때문이다. 과거 냉면을 한 그릇 먹고 아쉬울 때 면을 추가하면, 국수를 가지런히 포개 똬리를 틀어 내줬는데 이걸 ‘사리’라고 불렀다. (요즘도 그렇다) 추가하는 국수사리(뭉치)의 준말이었다.

국수 한 사리, 두 사리 등으로 쓰이던 것이 추가로 주문하는 모든 메뉴에 적용되어 요즘 쓰이는 의미의 사리가 됐다. 절대로 감거나 포갤 수 없는 라면사리는 물론이고 우동사리, 떡사리, 만두사리, 오징어사리(콩나물국밥집), 햄사리, 소시지사리, 감자사리에 매운탕이나 전골에 주로 넣는 채소사리, 미나리사리까지 등장했다. 김치찌개집엔 돼지고기사리, 감자탕집엔 뼈사리까지 생겼으니 이젠 사리란 단어에서 국수의 흔적이 사라지고 추가란 의미만 남은 셈이다.

외국에는 거의 없다. 먹고 싶은 것을 추가하는 토핑(topping)이 있지만 중간에 넣지 않고 처음부터 올려 나온다는 개념이라 많이 다르다. 영어권에선 사리를 그저 국수(noodles)나 아예 사리(sarri)라 부른다. 한식 고유의 문화로 인정한 셈이다. 다만 일본 후쿠오카(福岡) 하카타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국수사리 문화가 있는데, 이를 ‘가에타마(替え玉)’라 한다. 라멘에 면을 추가하는 것을 말하는데 면을 한 그릇 더 주문하는 것보다 가격이 훨씬 저렴한 것이 우리네 냉면사리 문화와 유사하다. 후쿠오카 하카타 라멘 노포인 간소 바나가하마야(元祖 長浜屋)에서 처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가에타마의 원뜻도 추가 면과는 다르다. 영화나 연극에서의 대역을 뜻하는 말이다. 바꿔치기나 눈속임이란 말로도 썼다. 뭐 진짜 한 그릇이 아니니 어느 정도 뜻은 들어맞는 표현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라면·소시지사리를 넣은 벙커부대찌개.



뜻은 많이 변했지만 아무튼 사리는 한식에서 새로운 중요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나라에는 거의 없는 사리 문화가 한식에선 어떤 이유로 발달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한식상에는 타 식문화와는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바로 화기(火器)다. 상에서 바로 조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가령 예를 들어 찌개나 전골을 끓일 때 계속 화력을 유지할 수 있는 불이 상에 있으니 이것저것 넣어 먹기에 좋다. 복맑은탕 전골에는 미나리를 추가해서 먹고 부대찌개에는 라면사리와 소시지, 햄사리를 추가해서 넣어도 계속 끓일 수 있다. 게다가 한식 메뉴에는 국물을 넉넉히 잡은 국물요리 종류가 많기 때문에 사리가 드러누울 자리가 충분하다. 국수나 당면, 쫄면 등 대부분의 사리 종류가 국물에 들어가는 것들이다.

처음엔 양을 늘리는 목적으로 사리가 생겨났지만 요즘은 맛으로 챙겨 먹는다. 기본 제공되는 식재료에 자신이 먹고 싶은 사리를 추가하면 또 다른 맛을 즐길 수 있는 까닭이다. 사리가 음식에 맛을 더하는 중요 요소가 됐다.


사리의 매력에는 저렴하다는 점도 작용한다. 거의 같은 양을 주는데도 냉면이 1만 원이면 사리는 5000원 안팎이다. 삶은 계란 반 개 정도만 제외하면 본 메뉴와 똑같이 주는 곳도 있다. 육수나 비빔장이 사리에 딸려 나오기도 하니, 심지어 물냉면을 먹고 비빔냉면 사리를 주문해 먹어도 괜찮다는 집도 있다. 사리 메뉴 하나로 넉넉한 인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양도 든든해지고 맛까지 챙길 수 있는 제도(?)가 사리니까.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절인 무까지 얹은 서오릉막국수 면사리.



한식엔 어떤 사리 종류가 있을까. 일단 국물이 있는 전골 요리엔 사리가 졸졸 따라다닌다. 라면사리는 사리의 기본이다. 사리의 집합체인 부대찌개를 비롯해 김치찌개, 부대찌개, 된장찌개, 동태찌개, 대구탕에도 라면사리가 들어간다. 라면사리가 들어가면 보통 가래떡사리도 있다. 사리 종류에는 주로 허기를 채우는 탄수화물이 많은데, 본말이 전도되어 고추장찌개나 김치찌개에 ‘고기사리’까지 넣을 수 있도록 한 식당도 흔하다.

국수사리 중에서도 우동이냐 라면 또는 쫄면이냐가 고민이 될 테지만 무엇을 넣든 그냥 전골만 먹는 것보다 한결 풍성해진다. 전용 불판에 국물 담는 공간이 있는 서울(평양)식 불고기에도 당면사리, 냉면사리를 넣어 먹을 수 있다. 골뱅이 무침에도 소면사리를 곁들이는 것이 정석이다. 새콤달콤한 양념무침에 소면을 넣어 비벼 먹는 것이 아예 기본이 됐다.

즉석 떡볶이야말로 사리를 위한 음식이다. 떡볶이는 간판일 뿐, 그냥 커다란 양념국물 냄비일 뿐이다. 이 공허한 무대에 튀긴 만두, 라면, 쫄면, 어묵, 소시지사리를 넣어 자신이 연출한 요리를 완성시킬 수 있다. 같은 시간, 한 공간에서 한 가지 메뉴(떡볶이)를 먹지만 저마다 서로 다른 음식을 먹고 나온다. ‘사리’라는 오브제(objet)로 완성시킬 수 있는 미완의 작품이 바로 즉석 떡볶이라 할 수 있겠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국물 없는 요리에도 간혹 사리 메뉴가 있는 경우가 있다. 곱창을 구워 먹을 때 곁들이는 얇게 썬 감자를 추가메뉴로 ‘감자사리’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흘러나온 기름에 가래떡을 굽거나 비엔나소시지를 곁들일 때도 ‘사리’라 해서 주문한다. 이를 두루 섞은 것은 ‘모둠사리’. 원래 국수 똬리였던 사리가 이젠 한국인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곁들임 식단으로 자리를 잡았다. 어떨 때는 본 메뉴보다 사리가 맛있어서 입소문을 타기도 한다. 사리를 먹기 위해 메뉴를 주문한다는 것. 사리가 있어서 행복한 외식이 완성되는 셈이다. 오랜만에 막국수에 사리 한 사발 시켜 연달아 후루룩 해치우고 싶은 유월의 정오다.

놀고먹기연구소장

■ 어디서 맛볼까

◇마복림떡볶이 = 만두, 쫄면, 라면, 야채, 훈제계란사리 등 공식적으로 10여 가지 사리를 넣을 수 있다. 그리 달거나 화끈하지 않은 고추장 육수에 매끈한 떡볶이와 어묵 등을 넣고 전골식으로 끓여 먹는 즉석떡볶이집이라 사리를 추가하는 재미가 있다. 단단하게 튀긴 만두사리를 넣으면 국물에 기름 풍미가 더해지면서 더욱 맛이 좋아진다. 서울 중구 다산로35길 5. 1000∼4000원.

◇서오릉순메밀막국수 = 물, 비빔사리. 자가제면 막국수를 잘하는 집이다. 평양냉면 전문점처럼 순메밀로 면을 뽑아서 물과 비빔막국수, 들기름막국수, 들기름비빔막국수 등을 차려 내는 집이다. 1인당 하나씩 주문하면 사리를 추가할 수 있는데 먹던 것과 다른 것을 고를 수 있다. 물과 비빔 중 하나. 고명만 빼고 거의 본 메뉴와 같은 양을 내준다. 경기 고양시 덕양구 서오릉로 440-1 1, 2층. 7000원.

◇오레노라멘 = 가에타마(替え玉). 닭 육수를 기본으로 진하게 우려낸 도리빠이탄과 매콤한 카라빠이탄, 쇼유라멘, 시오라멘 등을 파는 라멘 전문점이다. 언제나 오픈런과 함께 문전성시를 이룬다. 어떤 메뉴를 주문하든 밥과 면을 무료로 추가해준다. 일본 라멘집에서 가에타마라 부르는 면 사리는 살짝 삶아낸 면에 고기 고명까지 얹어서 주니 황송하다. 서울 마포구 독막로6길 14. 무료 제공.

◇해운대소문난암소갈비 = 감자사리. 상호처럼 (맛좋고 비싸기로) 소문난 소갈빗집이다. 수많은 식당이 명멸하는 해운대에서 갈비 하나로 노포 반열에 오른 맛집. 감자사리가 있는데 진짜 감자가 아니라 제법 굵고 존득한 감자면을 준다. 고급스럽게도 갈비양념에 넣어 자작하게 볶아먹는데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맛이다. 갈비맛의 추억을 더욱 견고하게 지켜준다는 평. 2000원.

◇한성식당 = 우동사리. 곱창전골 잘하는 집으로 소문났다. 곱창전골 메뉴에는 당연히 우동사리가 따라붙는다. 가만 보면 다들 마무리로 우동을 넣어 팔팔 끓여 먹는다. 기름진 국물에 쫄깃한 면발이 잘도 어울린다. 우동을 먹은 뒤에도 구수한 국물이 남아 아깝다면 밥사리를 넣어 볶아먹으면 된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11길 8. 1000원.

◇벙커202 = 라면사리. 격납고처럼 생긴 커다란 건물에 부대찌개를 전문으로 파는 집이다.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에 햄과 소시지, 채소 등을 잔뜩 넣고 끓여낸다. 여기다 라면사리를 곁들이는 건 당연한 일. 라면이 들어갈 것을 고려해 애초 국물을 넉넉히 잡아준다. 라면이 지겹다면 당면사리를 주문해도 매끈한 식감이 좋다. 경기 파주시 교하로 1167. 1000원. 당면사리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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