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y - 사그라들지 않는 ‘당첨 음모론’ 왜?
지난해 6월 1등 당첨 50건
올 3월 2등 664건 달하자
커뮤니티서 “조작” 들끓어
“우연일뿐” 해명도 소용없어
“양극단의 주장에만 힘 실려
‘침묵의 나선’으로 의혹 부각”
“가짜뉴스 확산과 비슷한 원리
주최측서 명확한 대응 해야”
2002년 12월 2일 최초 발행돼 20년 넘게 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로또복권. ‘인생 역전’을 꿈꾸는 서민들의 간절한 바람들이 커지면서 로또복권 판매액은 지난해 기준 5조4467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기대만큼 실망감도 커진 것일까. 최근 ‘무더기 당첨’ 사례가 잇따르자 온라인상의 ‘로또 조작설(說)’이 재점화되고 있다.
사상 첫 ‘대국민 추첨 공개방송’까지 진행됐지만 조작설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불안과 불신이 일상화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와 복권 주관사인 동행복권은 지난 10일 서울 상암MBC 골든마우스홀에서 ‘대국민 로또 6/45 추첨 공개방송’을 진행했다.
3개월 전인 3월 4일 1057회차 로또 추첨에서 2등 당첨이 664건 나오면서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조작 의혹이 커지자, 이를 불식시키겠다는 취지에서다.
당시 664건 중 103건이 서울 동대문구의 한 판매점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조작설은 더 힘을 받았다. 복권위의 입장은 일관된다. “확률에 따른 우연”이라는 것이다. 홍덕기 동행복권 대표는 “로또 당첨은 확률에 따라 무작위로, 당첨 금액은 판매량과 당첨자 수에 따라 확정된다”며 “회차당 1억 건 가까이 팔리면서 확률상 1등이 10명 이상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작설은 여전히 건재하다. 공개 생방송 직후인 10일 저녁부터 21일 현재까지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에 올라온 로또 조작 의혹 관련 수만 40건 가까이 된다. 이 가운데 절반은 “생방송도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대체로 “공개방송을 하니까 1등 당첨자 수가 절반으로 줄어 1인당 당첨금이 51억 원으로 올랐고 수동 당첨자는 한 명도 없었다”며 또 다른 조작 근거를 제시하거나 ‘어차피 로또는 100% 조작’이라고 단정 짓는 내용이다. 회원 수가 많은 다른 유명 커뮤니티도 비슷한 분위기다.
‘무더기 당첨’ 사례가 반복된 탓도 크다. 지난해 6월 1019회차 로또 추첨에서는 1등 당첨자 수가 무려 50명에 달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당시 복권위는 “경찰관 및 일반인 참관하에 추첨 볼의 무게 및 크기와 추첨 기계의 정상 작동 여부 등을 사전 점검하고 있어 조작 가능성이 없다”며 “구매자가 선호한 번호의 조합이 우연히 추첨된 결과”라는 입장을 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조작 의혹이 계속돼 왔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전승훈 기자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각종 음모론이 보편화·일상화된 한국 사회의 단면이라고 설명한다. ‘가짜 뉴스’가 만들어지고 퍼지는 원리처럼, SNS 등을 통해 빠르게 퍼진 ‘로또 음모론’ 역시 바로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각박한 현실에서 느끼는 사람들의 불안감이 음모론화되는 것”이라며 “어떤 세력이 저 큰돈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아닐까, 나처럼 힘없고 약한 사람들은 로또를 사봐야 당첨될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불신이 작은 단서를 기점으로 확산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과학적 설명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반복되는 배경에 대해서는 “양극단의 목소리가 힘을 받고 중립적인 사람들은 입장을 밝히지 않는 침묵의 나선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음모론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져 보이는 이유”라고 말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우선 로또 자체가 ‘노력’이 아닌 ‘운에 거는 기대와 쾌감’을 상품화한 것이라고 전제하며 “사람은 우연에서 규칙을 찾으려는 랜덤의 오류를 흔히 범하는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사람들이 로또에서도 원인과 규칙을 찾으려다가 뒤에 조작 세력이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 교수는 “사회에 악영향을 미치는 대중의 부정적 합리화는 경계해야 한다”며 “조작 의혹이 일 때 사실관계를 명확히 바로잡는 대응을 (주최 측이) 해야, 아직 음모론을 수긍하지 않은 대중이 동조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강한 기자 str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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