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윤 정부, 73년만에 명예 찾아줘”… 군번없는 켈로노병의 쪽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25일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73주년 기념식에서 이창건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이 한동훈 장관에게 전달한 편지. 법무부 제공

■ 6·25행사서 한동훈에 전달

北 후방침투 작전 등 활약했지만
미군소속 이유 역대정부선 외면

“2월에 보상금, 이달 靑오찬 초청
못 돌아온 동지들 생각에 눈물”

6·25전쟁 당시 미군 소속으로 북한 후방 침투 작전을 맡았던 ‘KLO(켈로·Korea Liaison Office) 부대’ 출신 참전 용사가 전쟁 기념식에 참석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즉석에서 감사 편지를 전달해 화제가 되고 있다. KLO 부대는 비공식 편제였다는 이유로 그동안 제대로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다 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유공을 인정받았다.

26일 문화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오전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6·25전쟁 제73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KLO 부대 기획참모 출신 이창건(94) 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한 장관의 인사를 받았다. 한 장관이 본인의 옆 좌석에 앉아 있던 이 전 회장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다. 이 전 회장도 한 장관에게 반갑게 인사하고 앉은 뒤 가지고 있던 쪽지에 즉석 편지를 썼다. 이 전 회장은 받침대도 없이 A4 용지 절반 크기의 쪽지에 꾹꾹 눌러 글을 썼다.

이 전 회장은 편지에 “나는 KLO 출신 이창건입니다”라며 “KLO가 (국가에서) 인정받은 건 이번(윤 정부)이 처음”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2월엔 국가로부터 보상금을 받았고 6월 14일엔 청와대 오찬에 초청받았다”며 “북한에 침투했다가 휴전 때문에 못 돌아온 동지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고 절절한 심경을 편지에 담았다. 이 전 회장은 1950년 서울대 전기공학과 2학년 때 참전해 KLO 부대에서 근무했다.

KLO 부대는 6·25전쟁 당시 북한 지역 정보 수집과 게릴라전 등을 비공식적으로 수행했지만, 미군이 병적(兵籍)을 공식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군번도 없고 공로가 인정되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부대원 명단 복원 및 신원 확인 작업 등이 이뤄졌고, 2021년에야 관련 지원 법률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보상금 지급 절차 등이 지연됐고, 지난 2월에야 부대원들에게 최초로 공로금이 지급됐다. 국방부는 지난 3월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이 된 ‘팔미도 탈환 작전’을 수행한 KLO 부대원 출신 부부 고 이철 씨와 고 최상령 씨를 국가 공로자로 인정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이 전 회장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 및 보훈 가족 초청 오찬’에 초대했다. 앞서 지난해 7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현 국가보훈부 장관)은 미국 버지니아 육군박물관을 방문해 KLO 부대 참전 기념비에 참배하고 헌화했다.

이 전 회장으로부터 편지를 받은 한 장관은 그 자리에서 “그 말씀을 잘 기억하고 (편지를) 집무실에 걸어두겠다”고 대답했다. 한 장관은 편지를 기념식이 끝날 때까지 직접 소지했고, 약속대로 26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 청사로 출근해 장관 집무실에 걸어놓았다고 한다. 한편 법무부는 최근 서울남부구치소 앞에 6·25전쟁에서 희생된 교도관 167명을 기리는 충혼탑을 세우고, 군 복무자 손해배상 청구 범위를 넓히는 등 현 정부 들어 자체 보훈 사업도 확대하고 있다.

염유섭·김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