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 ‘최연소’ 타이틀 휩쓸며… 세계 발레단 간판된 K-무용수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 발레 무용수들이 해외 명문 발레단 수석무용수 자리를 꿰차며 ‘K-발레’를 이끌고 있다. ‘최연소’ ‘최초’라는 기록을 세우며 각 발레단의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파리오페라발레단의 박세은(왼쪽부터),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서희. 각 발레단 제공

박세은, 파리 첫 동양인 ‘에투알’
김기민, 마린스키 2회 단독공연
서희, ABT에서 7년 만에 수석

과거 1~2명서 현재 250명 활동
“영재 발굴 기관·체계 등 발전
경쟁률 수천대 일까지 뚫은 것”


최근 유니버설발레단 강미선이 무용계 오스카상 ‘브누아 드 라 당스’를 받으며 한국 발레의 저력을 증명했다. 해외 유명 발레단에서 활약하는 한국 무용수들도 늘어나면서 한국 발레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마린스키발레단의 김기민을 비롯해 파리 오페라발레단의 박세은, 미국 보스턴발레단의 채지영,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서희,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의 최영규, 그리고 영국 로열발레단의 전준혁 등이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입단하는 것 자체로도 주목받았으나 최연소, 최초 등의 기록을 세우며 승급을 거듭했고, 이제는 ‘간판스타’로 우뚝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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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까진 해외 발레단에 국내 무용수들이 입단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세계 각국의 최정상 무용수들과 경쟁해야 하고 한국은 발레 불모지였기 때문이다. 해외 발레단에 입단한 한국인 무용수들은 1982년 워싱턴발레단에 몸담은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1986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강수진 국립발레단장 등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들의 입단을 계기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현재는 세계 최정상 발레단에서 한국인들이 수석무용수로 활약 중이다. 솔리스트, 군무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더 많아진다. 과거엔 동기간에 많아야 1∼2명의 한국인 무용수가 해외에서 활동했다면 지금은 250여 명이 전 세계 발레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해외 주요 발레단 입단 경쟁률은 수천 대 일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주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털사발레단의 경쟁률은 1000대 1이고 ABT, 보스턴발레단 등 해외 주요 발레단의 경쟁률은 5000대 1을 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김기민은 2011년 동양인 최초로 마린스키발레단에 입단해 23살이었던 2015년에 최연소 수석무용수가 됐다. ‘백조의 호수’와 ‘돈키호테’의 주역을 맡으며 발레단의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넓은 객석을 채워야 하는 러시아 마린스키극장에서 2019년과 2021년 단독 공연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티켓 파워를 자랑한다. 2020년엔 ‘브누아 드 라 당스’ 최고 남성 무용수상을 받았다. 박세은은 350년 역사의 파리오페라발레단의 최초의 동양인 에투알(별·수석무용수)이다. 에투알은 전체 단원의 10% 이내의 제한된 인원에게만 부여되며 42살까지 그 자격이 유지된다. 그는 2011년 발레단의 준단원으로 시작해 2021년 에투알로 승급했다. 한국인 최초로 ABT 수석무용수가 된 서희는 2005년 수습단원으로 입단하고 단 7년 만에 수석무용수로 승급했다. 2018년 한국인 남성 무용수 최초로 영국 로열발레단 정단원이 된 전준혁의 성장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입단 4년 만인 지난해 퍼스트 아티스트로 승급했다.

독일 명문 슈투트가르트발레단 간판 무용수로 활약하다 오스트리아 빈 국립발레단의 수석무용수로 스카우트된 강효정(38), 미국 보스턴발레단 수석무용수 채지영(31), 미국 워싱턴발레단 이은원(32), 스위스 취리히발레단 임수정 등도 ‘K-발레’를 이끄는 주역들이다. 이들은 오는 28일부터 29일까지 열리는 ‘제20회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초청공연’에서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수적으로 늘어났을 뿐 아니라 해외에서 학업을 마치고 해외 발레단에 입단한 1세대 문훈숙, 강수진 단장과 달리 최근엔 대부분 국내에서 학업을 마친다는 점에서 한국 발레가 한 단계 올라섰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1996년 한예종 무용원 설립 및 영재 발굴 프로그램 등이 한몫했다. 조 교수는 “영재 발굴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접근성이 좋아지며 뛰어난 인재들을 찾기 수월해졌다”고 평가했다. 채지영, 김기민, 박세은, 최영규 모두 한예종 출신이다. 1세대 무용수들이 인종차별이 심한 시기에 어렵게 입단해 ‘우수하고 성실한 한국인’ 이미지를 잘 쌓은 것도 후배들의 해외 진출을 수월하게 한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다.

한국 무용수들의 활약과 ‘K-발레’ 위상 강화는 고무적이지만, 역설적으로 국내 인재의 해외 유출을 우려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또한, 그 원인으로 국내보다 해외 발레단에서 더 다양한 공연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장광열 무용평론가는 “지금은 국립발레단이 한 해 120회 이상 공연하는데 1990년대엔 공연 횟수가 20∼30회에 불과했다. 무용수들이 공연할 기회가 많이 없었고 더 많은 기회를 위해 해외로 떠나게 된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등 국내 주요 발레단들은 공연 횟수를 늘리고 창작발레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국립발레단은 2015년부터 안무가 육성 프로젝트 ‘KNB Movement Series’를 진행 중이며 유니버설발레단은 창작발레 ‘심청’ ‘춘향’을 성공시킨 데 이어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만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강미선이 ‘미리내길’로 ‘브누아 드 라 당스’를 수상한 것이 그 결실이라고도 평한다. 한국인이 이 상을 받은 것은 다섯 번째인데, 국내 창작발레로는 최초 수상이기 때문이다.

장 평론가는 “현재 국내 발레 위상은 해외랑 경쟁해도 밀리지 않고 역량이 우수하다. 다양한 안무를 만들고 창작 작품도 늘려 공연 기회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유민우 기자 yoom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