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버지’ 박지성, 맨유 입단… 한국 첫 프리미어리거 탄생[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7-10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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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2005년 7월 14일 박지성(왼쪽)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함께 유니폼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역사 속의 This week

2005년 7월 14일 박지성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했다. 이날 맨유의 홈구장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입단식에서 24세의 박지성은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함께 등 번호 13번의 유니폼을 들어 보이며 기념촬영을 했다. 한국 최초 프리미어리거의 탄생이었다. 그것도 세계적인 명문 구단 맨유라니 보고도 믿을 수 없는 놀라운 장면이었다.

한국 선수로 가장 먼저 EPL에 입성해 후배들의 유럽 진출 길을 열어준 박지성은 축구팬들로부터 ‘해버지’(해외 축구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는 수원 세류초 4학년 때 처음 축구화를 신고 국가대표를 꿈꿨고, 6학년 때 ‘차범근 축구상’을 받을 만큼 재능이 있었다. 하지만 왜소한 체격 탓에 수원공고를 졸업했을 때 어느 구단이나 대학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게다가 평발이었던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난 그렇게 보잘것없는 나의 조건을 정신력 하나로 버텼다”고 했다.

어렵게 진학한 명지대에서 허정무 감독이 이끌던 올림픽 축구대표팀과의 연습 경기가 운명을 바꿨다. 좋은 경기 감각과 체력에 가능성을 본 허 감독의 눈에 띄어 2000년 시드니올림픽대표팀에 발탁된 데 이어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월드컵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뤄내고 히딩크 감독이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번으로 불러들여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데뷔 직후 무릎 부상으로 부진을 면치 못하다 유럽축구연맹(UEFA)컵 이탈리아 페루자 원정경기에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홈팬들이 퍼붓던 야유는 환호로 바뀌고 ‘위송빠르크’라는 박지성 응원가가 경기장에 울려 퍼졌다.

박지성은 UEFA 챔피언스리그 AC밀란과의 준결승전에서 빼어난 활약을 펼쳐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맨유에 입단했다. 그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웨인 루니 등 세계 최고의 선수들 사이에서 쉴 새 없이 지치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비며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냈다. ‘산소탱크’ ‘2개의 심장, 3개의 폐를 가진 선수’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7년 동안 맨유에서 205경기를 뛰며 27골을 기록했고, EPL 우승 4회,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1회 등 13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2년 퀸스파크 레인저스로 이적한 후 PSV 에이트호벤으로 다시 옮겨 2014년 은퇴한 박지성은 그해 비유럽권 선수 최초로 맨유 앰배서더(홍보대사)로 임명됐다. 그는 맨유를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도 이타적 플레이로 팀을 위해 헌신했던 ‘언성 히어로’(unsung hero·숨은 영웅)로 기억되고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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