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 양정모, 한국 첫 올림픽 金…캐나다서 날아든 승전보[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7-31 09:05
  • 업데이트 2023-07-31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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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딴 레슬링의 양정모(가운데)가 몽골의 오이도프(왼쪽·은메달), 미국의 진 데이비스(오른쪽·동메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대한체육회



■ 역사 속의 This week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한국 레슬링 양정모 선수가 마침내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1976년 8월 1일 일요일, 건국 이래 첫 올림픽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폭염과 가뭄이 이어지던 때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날아든 단비와도 같은 승전보였다.

몬트리올 올림픽 대회 마지막 날이었던 이날 레슬링 자유형 페더급 결승리그가 열렸다. 양정모와 세계선수권 챔피언이었던 몽골의 오이도프, 미국의 진 데이비스가 결승에 올랐다. 당시에는 리그를 치러 승패에 따른 벌점을 가장 적게 받는 선수가 우승하는 방식이었다. 폴(fall·상대의 양쪽 어깨가 모두 바닥에 닿는 것)로 이기면 무벌점, 판정승은 1점, 판정패는 3점, 폴패하면 4점이 된다.

양정모는 데이비스에 폴승하고, 오이도프는 데이비스에게 판정패해 각각 벌점이 0점과 3점이었다. 두 사람의 마지막 경기 결과에 따라 메달 색깔이 정해지게 됐다. 1·2회전에서 밀리던 양정모는 3회전에서 8대7로 역전했으나 끝내8대 10으로 패했다. 하지만 최종 벌점이 1점 높은 오이도프는 고개를 떨궜고 양정모는 환호했다. 양정모가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고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지 40년 만에 민족의 한을 풀어준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1948년 정부를 수립하고 태극기를 앞세워 올림픽에 출전한 후로는 28년 만이었다. 온 국민의 간절한 염원이 이룬 쾌거였다.

양정모의 부친이 국제전화로 “정모야, 욕봤다”고 한 말은 한동안 유행어가 됐다. 금의환향한 그는 선수단과 함께 김포공항에서 시청 앞까지 카퍼레이드를 했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 최고 등급인 청룡장을 1호로 받았다.

부산 방앗간 집 아들이었던 양정모는 중학교 시절 체육관에 구경 갔다가 레슬링에 입문했다. 양쪽 귀가 뭉개질 만큼 매트에서 살았던 훈련의 결실로 올림픽을 제패할 수 있었다. 그의 금메달은 47년 전 우리 국민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줬다. 당시 ‘체력은 국력’이라는 기치 아래 이뤄낸 그의 기적 같은 성과는 오늘날 스포츠 강국 대한민국의 초석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양정모는 올림픽 2연속 제패를 노렸으나,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보이콧으로 도전이 무산되자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조폐공사 감독을 맡았다가 팀 해체 후 레슬링계를 떠나 고향 부산으로 내려갔다. 올해 70세인 그는 재능기부 공동체인 ‘희망나무 커뮤니티’ 이사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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