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밥상 풍성하게 한 세계적 육종학자 우장춘 박사 사망[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8-07 09:10
  • 업데이트 2023-08-07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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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세계적인 육종학자 우장춘(왼쪽) 박사가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소장 당시 실습생에게 피튜니아 교배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1930년 겹꽃 피튜니아(일명 우장춘 꽃)를 개발했다. 자료사진



■ 역사 속의 This week

‘씨 없는 수박’ 하면 우장춘 박사가 떠오르지만, 일본의 기하라 히토시(木原 均)박사가 개발한 것이다. 우장춘이 신품종에 대한 농민들의 불신을 없애고 육종학(育種學)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재배해 보여준 것이 잘못 알려진 것이다. 그런데 이 씨 없는 수박 역시 우장춘의 ‘종(種)의 합성’ 이론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우장춘은 1898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일본인이었고 아버지 우범선은 조선군 훈련대 제2대대장으로 1895년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했다가 일본으로 망명한 후 자객에게 암살당했다. 다섯 살 때 아버지를 여읜 그는 조선인의 자식이라는 멸시를 받으며 가난하고 불우하게 성장했다. 도쿄제국대 부설 농학실과에 진학했고, 1919년 졸업 후 농림성 농사시험장에 취직해 육종 연구에 몰두했다.

1930년 겹꽃 피튜니아를 만드는 데 성공한 그는 1935년 논문 ‘종의 합성’을 발표해 육종학계를 놀라게 했다. 같은 속(屬) 다른 종인 배추와 양배추를 교배하면 새로운 식물인 유채가 만들어짐을 보이며 다윈의 진화론을 일부 수정하도록 만든 획기적인 이론이었다. 이 논문으로 도쿄제국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1945년 해방이 됐으나 한국인들은 빈곤과 굶주림에 시달렸다. 식량난 해결을 위한 적임자로 우장춘이 거론되면서 ‘우장춘 환국추진위원회’가 결성됐다. 일본 정부가 귀국을 막자 그는 스스로 조선인 수용소에 들어가 추방당하는 형식으로 귀국선을 탔고, 1950년 처자식을 일본에 남겨둔 채 홀로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취임한 우장춘은 일본 수입에 의존하던 채소 종자를 한국 기후와 토양에 맞게 개발하기 시작했다. 김치의 주재료인 배추와 무부터 개량해 전국에 보급했다. 강원도의 척박한 땅에 병 없이 잘 자라는 감자를 개발하고, 제주도 환경에 알맞은 감귤 농사를 제안해 재배법을 확립했다. 그가 주요 채소 종자들을 개량해 대량 생산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마침내 ‘씨앗 독립’에 성공한다. 농림부 장관직도 고사하고 원예시험장에 박혀 오로지 연구에만 매달려 이뤄낸 성과였다.

1959년 8월 7일, 십이지장궤양이 악화해 병상에 누운 우장춘에게 대한민국 문화포장이 수여됐다. 그는 “고맙다… 조국은 나를 인정해 주었다”며 눈물을 흘렸다. 가족과 떨어져 조국에 헌신했던 생의 마지막 9년은 부친의 행적에 대한 속죄와도 같은 삶이었다. 한국에 도착했을 때 “이 나라에 뼈를 묻겠다”고 했던 그는 훈장을 받고 3일 뒤 61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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