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9세 동독병사, 총 멘 채 자유찾아 베를린 장벽 넘어[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8-14 09:23
  • 업데이트 2023-08-1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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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베를린 장벽이 세워지고 이틀 후인 1961년 8월 15일 동독 병사 콘라트 슈만이 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넘어오는 장면. 사진작가 페터 라이빙이 촬영했다. 위키피디아



■ 역사 속의 This week

1961년 8월 13일, 느긋하게 일요일 아침을 맞은 베를린 시민들은 베를린을 동서로 가르는 경계선에 철조망이 쳐진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밤사이 동독 군인과 경찰이 예고도 없이 기습적으로 설치한 것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동·서베를린 시민들이 자유롭게 왕래했는데 탱크와 장갑차까지 배치해 통행을 차단했다. 이 철조망이 30년 가까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망한 독일은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등 연합국이 분할 통치했고, 수도 베를린 역시 4개국에 의해 분할 점령됐다. 그러다 1949년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서독과 동독으로 갈라져 두 개의 정권이 들어섰다. 1961년까지 자유와 경제적 풍요를 찾아 서독으로 넘어간 동독인이 250만 명에 이른다.

동독 영토 안에 있던 베를린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탈출하는 주요 통로였다. 기술자들과 젊은이들의 계속되는 이탈에 위기의식을 느낀 동독은 전격적으로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사이 경계선에 43㎞의 철조망을 설치했다. 이후 높이 3.6m, 폭 1.2m의 콘크리트 장벽이 들어섰고 서베를린을 완전히 감싸며 길이가 155㎞에 달했다. 장벽을 따라 곳곳에 감시탑까지 세워졌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될 때까지 28년 동안 5000여 명의 동독인이 지하터널을 뚫거나 열기구를 동원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장벽을 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사살당하거나 지뢰 폭발로 14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베를린 장벽이 구축되기 시작한 지 이틀이 지난 1961년 8월 15일, 국경을 지키던 동독의 19세 병사 콘라트 슈만이 기관총을 어깨에 멘 채 철조망을 뛰어넘어 서베를린으로 넘어왔다. 이 순간을 극적으로 포착한 사진이 다음 날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장식했다. ‘자유로의 도약’이라는 제목의 사진은 분단과 냉전의 상징으로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베를린 장벽을 넘은 최초의 탈출자로 기록된 슈만은 서독 바이에른에 정착해 아우디 자동차 공장에서 30년 동안 일했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살았지만, 슈타지(동독 정보기관)가 자신을 암살하러 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떠나지 않았다. 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고향을 방문했으나 가족을 버린 배신자로 외면당했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그는 1998년 56세의 나이에 목을 매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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