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화한 인물 vs 정제된 선긋기… 실존 향한 두 접근

  • 문화일보
  • 입력 2023-08-16 09:42
  • 업데이트 2023-08-16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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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우성,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 2023, 자투리로 만든 천에 아크릴릭 구아슈 Acrylic gouache on a quilted cloth, 260×600㎝. 학고재 제공



■ 신진 작가 이우성·지근욱, 키아프리즈 앞두고 개인전

이우성, 가족·친구 등 주변 주목
누군가 떠올릴 수 있는 경험 그려

지근욱, 색연필로 선·파동 반복
미시세계·우주공간 동시에 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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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미술 비평가이자 미학 철학자 아서 단토(1924~2013)는 일찍이 예술의 종말을 고했다. 거대한 담론과 서사는 사라지고, 형식보단 해석이 예술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선언이다. ‘진정한 미술이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형해화됐다지만, 그래도 여전히 미술가가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해 찾아 헤매는 불변의 가치가 있다. 사랑과 실존이다.

예술이 방향성을 잃었다는 오늘날 사랑과 실존의 단서를 찾아낸 작가들이 한국에도 있을까. 국내 최대 미술 축제 ‘키아프 서울’(Kiaf SEOUL)과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을 앞두고 대형 화랑 학고재는 그 해답으로 지난 9일 개최한 신진작가 이우성과 지근욱 개인전 ‘여기 앉아보세요’와 ‘하드보일드 브리즈’를 제시했다. 학고재 관계자는 “거대한 담론이 사라진 시대에 두 작가는 외피는 다를지언정 사랑이라는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다”면서 “같은 세대 서구 작가들과 견줘도 손색없는 세계관을 형성했다”고 설명했다. 이른바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에 맞춰 국내외 미술애호가들의 시선이 한국에 쏠리는 시점에서 한국 현대회화의 미래로 두 작가를 꼽았다는 것이다.

이우성과 지근욱은 사랑과 실존에 대한 각자의 시선을 화폭에 충실하게 그려낸다. 하지만 두 작가의 작업물은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것처럼 분위기가 다르다. 이우성이 구상회화를, 지근욱이 추상회화를 다룬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풀어내는 방식도 차이가 분명하다. 화랑 본관에 걸린 이우성의 사랑이 감성적이고 직접적이라면, 신관을 차지한 지근욱의 실존은 이성적이고 은유적이다.

이우성의 사랑은 ‘카르페 디엠’(Carpe Diem·지금을 즐겨라)으로 요약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 일상에서 함께 웃고 우는 가족이나 친구 같은 평범한 사람이 소재다. 작가 본인과 13명의 친구, 그리고 친구의 딸이 한자리에서 어깨동무한 모습을 담은 ‘해질녘 노을빛과 친구들’ 앞에 선 이우성은 “사람이 가진 구체성을 드러낼 때 특별함이 생기는 것 같다”며 “그림 속 인물을 모르는 사람이 봐도 누군가를 떠올릴 수 있는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마감에 쫓기는 작가 자신의 일상 속 순간도 만화적 캐릭터처럼 단순화해 담아낸 ‘지금 작업 중입니다’ 연작은 위트가 넘친다.

지금 이 순간을 주제로 삼는 만큼 이우성의 화풍도 과거와 달라졌다. 환한 미소를 짓는 그림 속 인물들은 2012년 웃음기 없고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가득한 자신의 또래 남성들을 단체로 그린 ‘정면을 응시하는 사람들’과 분위기가 다르다. 88만 원 세대로 대표됐던 불안 속에서 번민하던 청년이 주변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는 유쾌한 어른으로 바뀌며 생긴 변화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근욱, 교차-형태(복사), 2023, Mixed media on canvas, Dimensions variable (approx. 300×790㎝). 학고재 제공



현실을 군더더기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문학 용어 ‘하드보일드(hard-boiled)’로 설명되는 지근욱의 작품은 파동으로 설명하는 정제된 세계관이다. 지근욱은 문래동에서 직접 주문 제작한 묵직한 크기의 자를 캔버스에 놓고 수많은 색연필로 선 긋기를 반복한다. 미학적 수식이나 철학적 담론을 배제하고 상호 교차하는 형태의 파장을 통해 작가가 생각하는 실존을 설명한다. ‘임시의 테(Inter-rim)’ ‘상호-파동(Inter-wave)’ ‘교차-형태(Inter-shape)’ 연작은 연하고 짙은 색연필의 선이 다른 층위를 주며 묘하게 하나로 합쳐진다.

15개의 캔버스가 작품 한 벌을 이루는 ‘교차-형태(복사)’를 마주하면 양자역학의 미시세계와 거시적인 우주 공간이 동시에 떠오른다. 지근욱은 “이번 전시는 서로 투과하는 세계이자 상반된 세계 사이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로 설명할 수 있다”면서 “모든 공간과 사물이 뚫려 있다고 생각하는 양자적 세계관과 작업이 맞닿아 있다”고 밝혔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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