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기적을 일으키는 사즉생… 바로 ‘K-정신’ 아니겠습니까[소설, 한국을 말하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09-04 10:42
  • 업데이트 2023-11-20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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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 토끼도둑



AI(인공지능)는 우리 삶을 어떻게 바꿀까. 가속하는 저출산과 고령화, 사교육 광풍, SNS가 발신하는 끝 모를 욕망 속에서 한국인은, 또 한국 사회는 어디를 향해 가는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이 질문에 답한다. 4일부터 연재하는 문화일보의 ‘소설, 한국을 말하다’는 문단에서 가장 첨예하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소설가 15명이 들여다 본 ‘지금, 한국’을 짧은 소설에 담아 게재한다. 매주 월요일 한 편 씩 공개되며, 12월까지 계속될 예정.

장강명 작가가 프롤로그 ‘소설 2033’으로 문을 연다. 장 작가는 빠르게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특정 문제들이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현실을 꼬집으며 ‘K-정신’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1) 장강명

프롤로그 - 소설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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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새 알파벳에서 제일 싫어하는 글자가 K야. 이거 왜 이렇게 어렵냐.”

문학 담당 선임기자가 회의실 의자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국장이 요즘 문학계가 어떤지 모르는 거 같아요. 10년 전에 자기가 문학 담당할 때 이후로 업데이트가 안 된 거 같아요.”

문학 담당 2진 기자가 한숨을 쉬며 맞장구를 쳤다.

“과거의 성공 공식이 계속 통할 거라고 믿는 거지. 2023년에 그 시리즈가 진짜 반응이 좋긴 좋았나 봐. 조회수도 포털에서 며칠이나 1위 찍었대. 국장이 그 담당 기자였고.”

“그때 작품들이 재미는 있더라고요. 작가들 선정도 정말 잘했고, 타이밍도 시대정신이랑 맞았던 것 같고요. ‘K-스러움, K-정신’이라는 게 있다면 그게 뭐냐, 없다면 앞으로 ‘K-정신’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느냐, 그런 얘기 한창 나올 때이기도 했잖아요.”

두 문학 담당 기자가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33〉 기획 지시를 받은 건 꼭 한 달 전이었다. 기획의 뼈대 자체는 명료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소설가 15명을 섭외해 4000자 분량의 짧은 소설을 청탁한다. 한국인, 한국적인 현상, 한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나 한국의 문화, 한 마디로 ‘K-스러움’을 말하는 원고를 받아 문화일보 지면에 연재한다.

그런 뼈대에 붙은 디테일이 문제였다. 각 회 소재들이 서로 겹치지 않으면서도 한국 사회 이슈를 골고루 다뤄야 한다, 참여 소설가들과 아이템 회의를 치열하게 벌여서 리스트를 가져와라, 1회는 전체 기획을 아우를 수 있는 내용으로 해라, 이 순간 ‘K-스러움’이 뭐라고 생각하는지 독자에게도 질문을 던지면 좋겠다…. 10년 전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23〉을 바로 그렇게 만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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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이라. 이제 그 단어 자체가 의미를 잃은 거 아닐까? 다 같이 관심 갖는 사안, 함께 이야기해야 하는 이슈라는 게 있긴 있나? 사회가 다 파편화돼서 공통 감각이라는 게 없어진 시대잖아. 지금 어떤 문제 제기가 모든 한국인한테 시의적절할 수 있는 거야?”

“사교육, 돌봄노동, 소셜미디어, 저출생, 번아웃.”

“다〈소설, 한국을 말하다 2023〉에서 했던 얘기잖아.”

“그렇죠.”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23〉에서 다뤘던 소재는 피하라며. 10년 내내 문제였던 거 말고, 지금-여기의 문제를 얘기하라며.”

“그 지시가 잘못이에요. 제대로 해결된 게 없는데 왜 피해야 돼요? 대한민국에서 사교육 문제 같은 건 2043년에도 그대로일 텐데. 지겨워도 계속 얘기해야죠. 다른 이슈들도 다요.”

그래도 각 회 소재를 정하는 일은 ‘이슈들의 이슈’를 제시해야 할 1회에 비하면 쉬운 편이었다. 편집국장이 1회에 기대하는 바를 들은 소설가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 작가는 농담처럼 독자들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복잡하고 맥락 없는 문장을 가득 담은 전위적인 원고를 실으라고 제안했다. 그게 바로 한국 사회 아니냐며.

머리가 터질 지경이 된 문학 담당 기자 두 사람은 국장의 지시를 챗GPT 2033에 그대로 입력해 답을 묻기까지 했다. 챗GPT 2033은 염상섭의 작품들을 딥러닝으로 모두 공부한 염상섭™에게 원고를 청탁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1933년을 살았던 사회파 소설가를 복원한 인공지능(AI)이 2033년 한국 언론기사 반년 치를 읽은 감상을 글로 쓰게 하자는 것이었다. 괜찮은 아이디언데…? 두 기자는 얼굴을 마주 보았다. 한데 염상섭™이나 심훈™, 채만식™에게 원고를 청탁하려면 이 소설가들의 신작 저작권을 보유한 사모펀드나 로펌과 협상을 벌여야 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 회사들이 요구하는 원고료는 아득히 높았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 캐시 정이 1회 원고를 쓰겠다고 했을 때 두 기자는 감격에 겨워 하이파이브를 했다. 캐시 정이 누군가. 지난해 낸 데뷔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앤드루 카네기 메달을 모두 받은 소설 천재 아닌가. 조너선 새프런 포어가 캐시 정의 작품을 읽고 절필을 고민했다지? 화상 인터뷰 중에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가볍게 던진 제안을 캐시 정이 흔쾌히 오케이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캐시 정 엄청 바쁜 거 아니었어? 지금 미국에서 원고 청탁이 막 물밀 듯 밀려올 텐데? 두 기자는 그날 밤 회사 앞 술집에서 신나게 소폭을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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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캐시 정 아이템 진짜 괜찮지 않아요? 2013년에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이 2033년 한국에 대한 기사들을 읽으며 20년 동안 가보지 못한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한다. 우리 시리즈 1회로 아주 딱이잖아요.”

문학 담당 2진 기자가 소폭을 한 잔 시원하게 들이켜며 말했다.

“내용이 뭐가 중요하겠어. 캐시 정인데. 캐시 정 그 자체가 바로 K-정신의 구현이야.”

이미 얼굴이 불콰한 선임기자가 화답했다.

“그래요? 말하는 건 ‘난 한국적인 게 뭔지 K-정신이 뭔지 모른다, 난 뉴욕 사람이다’ 하는 느낌이던데요. 작품에 딱히 한국이나 이민 얘기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캐시 정이 본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거랑은 상관없지. 작품 내용하고도 상관없어. 네가 한국 X 같다, 한국인 X나 싫다, 이런 내용으로 영화를 찍거나 노래를 만들었다고 쳐. 그런데 그 영화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거나 그 노래가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잖아? 그러면 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 되는 거고 네 영화나 노래는 한국의 이미지를 드높인 K-컬처가 되는 거야. 사람들은 모순도 못 느낄걸? 난 성공을 찬미하는 게 K-정신이라고 생각해. 여기서는 성공 그 자체가 이데올로기야.”

“이야 선배, 옛날 모습 다 죽은 줄 알았는데 아직 쏴라있네?”

그렇게 흥겹게 폭탄주를 주거니 받거니 했건만, 그 흥은 숙취보다도 수명이 짧았다. 다음날 뉴욕타임스가 캐시 정이 한 사람이 아니라 소설 창작 소프트웨어 7종을 사용하는 크리에이터 팀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후 일주일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퓰리처상과 전미도서상, 앤드루 카네기 메달 심사위원회는 캐시 정의 수상을 재검토하겠다고 했다. 조너선 새프런 포어는 신작 장편소설 집필에 들어갔다. 캐시 정은 캐시 정™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겠다고 발표했다. 캐시 정™이 찬미할 만한 K-성공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부장회의에서 ‘캐시 정™은 안 된다’는 결론이 최종적으로 났다.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33〉 1회 게재 예정일인 9월 4일까지 남은 기간은 이제 고작 5일. 문학 담당 2진 기자는 이름 있는 소설가들에게 전화를 돌려 시리즈 취지를 설명하고 K-정신을 말하는 소설 한 편을 3일 만에 써달라고 읍소했다. 선임기자는 2∼15회 원고를 쓰기로 한 작가들에게 “쓰시기로 한 글을 1회에 맞게 고칠 수 없느냐”고 사정했다.

가망 없는 작업에 지친 두 기자는 회의실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선임기자가 알파벳에서 가장 싫어하는 글자와 성공의 함정과 시대정신에 이어 헤겔과 관념론에 대해 떠들려는 찰나 2진 기자가 입을 뗐다.

“선배, 장강명 작가한테 부탁하면 어때요?”

“장강명…? 장강명 요즘도 글 쓰나?”

“웹소설을 쓰는 것 같던데요. 무슨 웹진에 에세이 실은 것도 봤고요.”

“장강명은 이미 섭외된 작가들이랑 급이 안 맞는 거 같은데….”

“10년 전에 〈소설, 한국을 말하다 2023〉 시리즈 1회를 장강명 작가가 썼잖아요. 그래서 같은 사람에게 다시 요청했다, 2023년 한국을 떠올리며 2033년 한국을 평가해보자는 취지다, 이렇게 말을 만들면 그럴듯하지 않을까요?”

2진 기자는 그렇게 말하며 ‘K-스러움’의 한 가지 특징을 깨달았다. 이곳에서는 늘 명분이, 간판이 중요하다.

전화를 받은 장강명은 신이 난 것 같았다. 3일 만에 4000자를, 취지에 맞게 써 보내겠다고 했다. 그게 가능하냐고 2진 기자가 오히려 되물어야 할 판이었다.

“불가능한 마감 일정 앞에서도 몸을 갈아 넣어 준수한 완성도로 결과물을 내는 것, 그게 바로 K-정신 아니겠습니까. 매번 기적을 일으키는 사즉생 정신!”

아니야, 그걸 그렇게 부르면 안 돼. 그건 땜질이라고 하는 거야. 그 땜질 때문에 사교육, 돌봄노동, 소셜미디어, 저출생, 번아웃 문제가 10년째 제자리인 거야. 2진 기자는 생각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작가님. 마감 꼭 지켜주세요”라고 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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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소설 2033’은 2023년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2033년을 그린다. 인공지능(AI) 소설가 등 새로운 풍경도 엿볼 수 있지만, 대체로 ‘지금, 여기’의 모습이다. 장강명 작가는 “2023년 사회상을 겨냥했다”면서 “우리 사회가 굉장히 빨리 변하는 것 같지만 이상하게 어떤 부분은 잘 변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소설 속 미래는 여전히 사교육 문제가 심각하고, ‘소폭’으로 상징되는 집단적 알코올의존증도 나아지지 않았다. 또, ‘공통의 감각이 사라진 시대’라는 진단도 그대로다. 첫 회인 만큼 총론처럼 써보고 싶었다는 장 작가는 현재 한국 사회의 핵심 키워드 ‘K-’에 대해 묻는다. 소설 속 인물들은 ‘K’를 예찬하는 듯 결국 자조하는데, 그렇다고 소설이 ‘K’를, 또 우리 사회의 미래를 부정하는 건 아니라는 게 작가의 말이다. “원고 내용이 좀 시니컬(냉소적)하지만, 저는 세상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한 번도 접은 적이 없습니다. 교과서 같은 얘기지만, 우리 하기 나름입니다.”

■ 장강명은 …
1975년생. 2011년 ‘표백’으로 등단.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등을 썼다. 이상문학상, 한겨레문학상 등을 받았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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