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욕받이서 재간둥이로… 재미 추구해 살아남았죠”

  • 문화일보
  • 입력 2023-09-06 09:08
  • 업데이트 2023-09-0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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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출판계 기획의 귀재로 손꼽히는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자신의 아이디어로 제작한 머그잔을 손에 들고 웃고 있다.



■ 장르문학 전문가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미야베 미유키 소설 활용해
우표·괴담지도 등 굿즈 제작
펀딩 반나절만에 목표액 달성

18년간 사실상 ‘1인 출판사’
한때 ‘이벤트 회사냐’ 비난도
“언제나 기본은 재미있는 책”


글·사진=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장르문학 출판사 북스피어는 요즘 하루에도 수십 통의 “우표 없냐”는 전화를 받는다. 우표라면 우체국의 일인데, 무슨 이유일까.

“오랜만에 실력 발휘 좀 해봤어요.”

너스레를 떠는 주인공은 김홍민(47) 대표. 일본 추리소설 거장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 시리즈의 우키요에 표지 20장을 오롯이 담은 우표를 제작했는데, 이게 히트를 쳤다. ‘외딴집’ ‘안주’ ‘눈물점’ 등 일명 ‘미미여사’의 대표작 스무 편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우표는 우체국 ‘나만의 우표’ 형식으로 단 500장만 발행됐다. 김 대표가 직접 쓴 미야베 소설 길라잡이인 ‘미미독본(美美讀本)’, 소설을 그림으로 옮긴 ‘괴담 지도’ 등과 함께 얼마 전 진행한 ‘삼가 이와 같이 아뢰옵니다’의 펀딩 참가자들을 위한 굿즈다. 최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 대표는 “이런 우표나 지도를 만들 수 있는 출판사는 흔치 않다”며 잔뜩 상기된 표정이다. 그럴 만하다. 펀딩은 반나절 만에 목표액을 달성, 3주 만에 1500%가 넘는 3000만 원을 돌파했다.

올해로 창립 18주년을 맞이한 북스피어는 직원이 세 명 이상 늘어난 적이 없다. 2005년부터 김 대표가 직접 작가 섭외·기획·편집·출간을 도맡아 온 ‘1인 출판사’에 가깝다. “우표나 지도를 만들 수 있는 출판사”도 없지만, 이렇게 ‘작은 몸집’을 유지하며 오랜 세월 ‘잘 만들고 잘 파는’ 출판사도 드물다. “몸집을 불렸거나 망했거나…, 보통 둘 중 하나죠(웃음).”

체급은 그대론데 매출과 수익은 늘었고, 주 4일 근무에 야근도 없다. 의기양양한 김 대표에게 비결을 물으니, 이날 입고 온 티셔츠 문구를 보여주며 웃는다.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어크로스·2015)는 일념뿐이었다는 것. 출판론이자 인생론을 명료하게 정리하고, 자신이 쓴 책까지 슬쩍 홍보한다. 과연, 출판계 ‘재간둥이’라 불리는 김 대표다운 대답이다.

“한때 ‘욕받이’였어요. 이벤트 회사냐, 여행사냐, 주객전도다, 출판 말세다…. 별소리를 다 들었는데, 그때 제가 했던 이벤트나 마케팅을 요즘 안 하는 출판사들 없잖아요. 격세지감이죠.”

십수 년 전, 다소 고루했던 출판 시장에서 김 대표가 벌이는 일들은 매번 화제가 됐다. 한강 유람선을 통째로 빌려 개최한 ‘장르문학부흥회’, 상반신 탈의 사진을 실어 논란이 된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 발간 등 지금 들어도 기발하다. 김 대표는 아이디어가 매일 샘솟았고, 과감하게 실행했다고 돌아본다. 시험을 봐서 합격한 독자들에게 저자 인터뷰를 시켜줬고, ‘워런 버핏과의 식사’를 흉내 낸 ‘마포 김 사장과의 대화’를 판매했다. 또, ‘뉴스 레터’격인 ‘마포 김 사장의 지령’을 정기적으로 발송해 북스피어 팬을 모았고, 그로 인해 5000만 원 펀딩에 성공한 사례는 심심한 책 동네에 ‘전설’처럼 남은 이야기다. 참고로 ‘마포 김 사장’은 과거 김 대표의 별칭. 경기도로 이사한 지금은 ‘삼송 김 사장’을 쓴다.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미야베 미유키 에도 시리즈 표지로 구성된 우표(왼쪽)와 괴담 지도.



지금은 ‘재간둥이’라고, 옹골찬 출판사라고 칭찬받지만, ‘진심’을 몰라주는 것 같아 당시엔 섭섭했다고 김 대표는 토로했다. “동종업계의 인정이 고팠던 것 같아요. 그건 엄마가, 또 친구들이 나를 인정해 줬으면 하는 그런 ‘마음’과 비슷한 거였어요.”

창립 20주년 계획을 벌써 세우고 있는, ‘이벤트 마니아’ 김 대표. 철학은 변함없다. “재미가 없으면 절실함이라도 보여야 한다”고, “책을 위해선 ‘야매’라고, ‘이단’이라고 하는 뒷담화도 다 견딜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주특기 하나를 더 풀어놓는다. 바로, ‘측은지심’ 유발하기. 김훈의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문장 ‘사람들아 책 좀 사가라’를 활용해 주목받은 머그잔이 좋은 예다. ‘아아 사람들아 책 좀 사라’. 유머와 간절함이 깃든 말에 눈길과 손길이 절로 간다.

책 판매를 위해 각종 ‘기술’을 가져다 쓰지만, 주객전도한 적은 없다. 언제나 기본은 재미있는 책, 자신이 읽고 싶은 책, 좋은 책이다. 북스피어를 지탱해 온 힘은 이것이고, 김 대표는 그 결정적인 역할을 ‘미미여사’가 했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억대 선인세의 저자를, 아직 한국에서 그 진가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 ‘운 좋게’ 만날 수 있었기에. 지난 18년간 출간한 180종 중 50종이 미야베의 작품이고, 이 중 25종이 시대물이다. 김 대표는 “이만하면 출판인 그리고 장르문학 마니아로서 소임을 거의 완수했다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래도 재미를 방향키 삼아 출판이라는 바다를 조금 더 항해해 볼 생각. 여전히, 그 배가 작더라도. “‘미미여사’의 은퇴가 아마 제 은퇴가 될 거예요. 그게 언제냐고요? 이번에 제가 쓴 ‘미미독본’에 있습니다(웃음).”
박동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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