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産團 예타 면제는 첫 단추일 뿐[포럼]

  • 문화일보
  • 입력 2023-09-0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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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규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전 세계는 지금 총성 없는 전쟁 중이다. 과거에는 석유가 산업의 쌀이라고 불렸지만, 4차 산업혁명과 인공지능(AI)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반도체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쌀이 되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반도체 공급망이 흔들리면서 거의 모든 산업의 생산 일정이 무너진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전략적 가치가 커지면서 미국·독일·일본·네덜란드·프랑스·스위스·중국·대만은 자국의 반도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 천문학적인 정부 예산을 경쟁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일례로 미국은 지난해 8월 ‘칩스(CHIPS) 및 과학법’, 일명 ‘반도체 지원법’을 제정해 약 70조 원을 지원키로 했다. 구체적으로, 미국 내 반도체 공장에 약 50조 원 정도의 보조금을 주는 것은 물론 25% 세금 공제 혜택을 주며, 반도체 연구·교육에 약 20조 원을 지원한다. 특히, 신규 반도체 공장을 건설하는 경우에는 최대 15%까지 보조금을 지원키로 했다. 여기에 독일·일본·네덜란드를 비롯한 많은 나라가 가세했다.

이처럼 미국 정부가 자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해 천문학적인 지원을 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자국 내 반도체 산업이 위기에 처했다는 판단보다는, 미국 반도체 산업의 미래 경쟁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목적이다.

지난 40년간 전 세계 반도체 기업 상위 10개 중에서 적어도 7개 정도가 미국 기업이었고, 지금도 그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최근 AI시대를 대표하는 엔비디아의 시가총액이 1조 달러를 돌파한 것은 물론, 시가총액 기준으로 100조 원이 넘는 기업이 10개나 있다. 고전을 면치 못하는 인텔 역시 시가총액 기준으로는 쉽게 150조 원대에 육박한다. 그 외에도 브로드컴(약 430조 원), AMD(약 250조 원), 텍사스인스트루먼트(약 230조 원) 등 쟁쟁한 기업들이 미국의 반도체 산업을 지탱하고 있다. 이들은 천문학적인 시가총액을 기반으로 과감한 미래 투자를 거침없이 이어가고 있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대외적으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이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나라의 수출이 지난 8월까지 11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대내적으로는 주식시장 시가총액의 20% 이상이 반도체 산업에서 창출된다. 그런데도 한국 반도체 산업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서 적자를 기록하고, 전 세계 반도체 산업 1위 자리를 지키는 데 실패했으며, SK하이닉스를 비롯한 다른 반도체 기업들도 다양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특히, 시가총액 기준으로 100조 원이 넘는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

그나마 반가운 소식은, 지난 4일 정부가 용인 반도체국가산업단지 구축을 위해 예비 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추진키로 한 것이다. 산단 조성을 맡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공기관이어서, 총사업비 2000억 원 이상이면서 국가재정·공공기관 부담분이 1000억 원이 넘는 이번 사업은 예타 대상인데, 이를 면제하는 것이다. 그 경우 전체 사업 기간이 6개월 정도 단축될 수 있다.

하지만 예타 면제가 전 세계와 싸우는 한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지원 정책의 마지막이 돼선 안 된다. 지금은 ‘전시 동원’ 같은 체제가 필요한 때다. 정부가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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