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술·음악 ‘덕질’로 녹여낸 글맛… 슬럼프는 ‘번역’하며 이겨내[북리뷰]

  • 문화일보
  • 입력 2023-09-08 08:59
  • 업데이트 2023-09-0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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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사랑 받는 작가 된 비법

작품 곳곳에 취향·취미가 가득
부업 같은 번역 통해 문학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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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장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출간 즉시 한·일 양국 주요 서점 1위를 하며, 또다시, ‘하루키 열풍’이 불고 있다. 국내에 일본 현대 문학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이른바 ‘일류’ 붐이 인 건 2000년대 초·중반. 이후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 작가의 자리를 지켜온 하루키의 힘과 매력은 어디에서 오나.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번역까지, 경계 없이 넘나드는 하루키식 ‘쓰기’. 그리하여 단단하고 풍요롭게 쌓아 올려진 ‘하루키 월드’를 새삼 들여다본다. 그 세계를 더 넓고 깊게 유랑하기 위해.

◇한국인이 가장 많이 읽은 하루키의 책은 = ‘하루키 월드’의 반석은 소설이다. 최근 문화일보가 교보문고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가장 많이 팔린 하루키 책 1위는 소설 ‘1Q84’. 여성 킬러 아오마메와 작가 지망생인 남자 주인공 덴고의 이야기인 소설은 한·일 양국에서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일본에선 헤이세이(1989.1∼2019.4) 시대 최고의 문학으로 꼽힌다. 이어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해변의 카프카’ 등이 2, 3, 4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7위) 등 자신의 취미를 소설 쓰기, 인생살이에 견줘 설파하는 게 특징인 하루키의 에세이들도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

◇달리기·야구·술·음악… 하루키의 취향을 좇아서 = 하루키를 읽는 묘미에는 그의 취향과 취미, 즉 ‘덕질’이 한자리를 차지한다. 달리기에서 시작해 야구, 술, 음악, 여행 등을 아우르며 넓고 깊게 펼쳐지는 덕질은 그것 자체로 매력적인 산문이 되기도 하고, 그의 작품 세계 곳곳에 녹아 들어가 우리의 독서 경험을 더욱 풍요롭게 해준다. 예컨대,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에서는 어느 날 야구장 외야에 앉아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던 순간을 풀어놓더니, 소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에선 만년 꼴찌인 야구팀을 응원하며 시를 쓰는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또, 한때 재즈바를 운영했던 하루키는 중고 레코드숍 구경을 즐기고 레코드판이 그려진 티셔츠라면 무조건 사 모은다고 했는데, 음악에 관한 에세이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라는 소설에선 1955년 사망한 천재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를 부활시킨다.

◇취미로 번역을?… 하루키가 ‘덕질’하는 작가 = 하루키에게도 ‘덕질’하는 소설가가 존재한다. 바로, 레이먼드 챈들러와 레이먼드 카버. 장편을 준비할 때는 오전엔 소설을 쓰고, 머리를 식히기 위해 오후엔 번역 작업을 한다고 알려진 하루키는, 애정하는 작가 챈들러와 카버의 작품을 일본어로 직접 옮기며, 이들을 알리는 데에도 열성을 쏟아왔다.

본업은 소설가이고, 번역은 부업이나 취미에 가깝지만, 챈들러의 책은 2년에 한 번꼴로 번역하고, 그가 “가장 소중한 문학적 스승”이라 일컫는 카버에 대해선 “거의 평생의 업이 됐다”고 했을 정도. 그야말로 ‘덕업일치’의 삶이다. 슬럼프에 빠졌을 때에도 이들을 번역하며 마음을 달랬다고 하니, ‘하루키 월드’를 단단하게 만들어 준 감사한 퍼즐이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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