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정상”… 고상돈, 한국인 첫 에베레스트 등정[역사 속의 This week]

  • 문화일보
  • 입력 2023-09-11 09:03
  • 업데이트 2023-09-11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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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977년 9월 15일, 고상돈이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사진에 잘 나오게 하기 위해 빨간색 방한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 커다란 무전기를 멘 모습이다. 고상돈기념사업회



■ 역사 속의 This week

“여기는 정상, 더 오를 곳이 없다.”

1977년 9월 15일, 고상돈은 해발 8848m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무전을 통해 이렇게 외쳤다. 한국인으로 최초였고,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8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나라가 됐다. 1인당 국민소득이 불과 1000달러였던 시절, 온 국민에게 기쁨과 희망을 준 쾌거였다.

1948년 제주에서 태어난 고상돈은 고교생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상실감을 메우기 위해 산을 타기 시작했다. 고교를 졸업하고 충북산악회에 가입하면서 본격적으로 산악인의 길을 걸었다. ‘77 에베레스트 원정대’에 선발돼 29세 때인 1977년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9월 9일 박상열 부대장이 셰르파(등반 안내인)와 1차 정상 공격조로 나섰다. 그러나 산소가 바닥나 정상을 100m 남겨둔 해발 8700m 지점에서 등정을 중단하고 간신히 귀환했다. 6일 뒤 고상돈에게 기회가 왔다. 셰르파 펨바 노르부와 함께 2차 공격조로 오전 5시 30분 캠프를 출발해 4시간 만에 남봉에 도착했다. 그러나 앞에는 50m 길이의 칼날 능선이 버티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칼날 능선을 통과하자 마지막 관문인 수직빙벽 힐러리 스텝과 마주했다.

“하아, 하아…”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필사적으로 힐러리 스텝을 넘어 앞만 보고 나아가던 그때, 뒤따르던 셰르파가 소리쳤다. “거기가 정상이다.” 낮 12시 50분, 7시간이 넘는 사투 끝에 드디어 세계의 지붕에 올라설 수 있었다. 장비와 기술 모든 것이 열악한 상황에서 불굴의 의지로 이뤄낸 성과였다. 그는 1평 남짓한 정상에서 1시간 동안 머물며 성경책과 함께 훈련 도중 목숨을 잃은 동료 3명의 사진을 눈 속에 묻었다.

귀국해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카퍼레이드를 하고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았다. 국민적 영웅이 된 그의 얼굴이 담긴 기념우표와 주택복권이 발행되고 기념담배까지 출시됐다.

에베레스트 등정 이듬해인 1978년, 고상돈은 원정길 내내 소중히 품고 다녔던 목도리를 떠준 연인 이희수 씨와 결혼했다. 그러나 신혼의 단꿈은 잠시였다. 배 속에 아기가 있던 부인에게 “이번이 마지막 원정”이라는 말을 남기고 1979년 5월 북미 최고봉 매킨리(현재 이름 디날리·6194m) 등정길에 나섰다. 또다시 한국인 최초로 매킨리 정복에 성공했지만, 하산 중 추락해 31세에 불꽃 같은 삶을 마감했다. 꿈을 이룬 이후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꿈을 키웠던 고향 제주 한라산 1100m 고지에 영원히 잠들었다.

김지은 기자 kimjieu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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