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유럽, 부유한 소국[오후여담]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0 11:33
프린트

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이철호 논설고문

“유럽이 가난해지고 있다.”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쏟아지는 뉴스 보도들이다. 10년 전 엇비슷했던 미국과 유럽 경제 규모 격차가 1.8배로 벌어졌다. 가난해진 프랑스는 와인을 아껴 마시고 독일은 고기 소비까지 줄였다. 디지털 혁신이 늦은 데다 코로나 위기,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겹쳐 유럽은 복합골절 상태다. 독일은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는 유럽의 병자 신세다. 영국은 선진국 중 유일하게 코로나 이전의 경제 규모를 회복하지 못한 나라다.

이렇게 쪼그라드는 유럽을 한 꺼풀 벗겨 보면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지난 3년간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아일랜드·덴마크·네덜란드·아이슬란드 등이 유럽에 숨겨진 강소국들이다. 아일랜드는 글로벌 기업의 메카로 우뚝 서면서 28.7%의 기록적 성장을 이뤄냈다. 영어권인 데다 법인세가 유럽 평균의 절반에 불과하고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반사이익까지 챙겼다. 네덜란드의 비밀 병기는 반도체용 극자외선 노광장비(EUV)를 독점 공급하는 ASML이다. 이 세계적 ‘슈퍼을(乙)’은 시가총액에서 글로벌 석유 메이저인 로열더치셸은 물론, 전통 강호인 하이네켄·ING금융그룹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네덜란드 간판 기업으로 올라섰다.

올해 유난히 뜀박질하는 나라는 덴마크다. 낙농업과 레고, 칼스버그 맥주의 나라에서 노보노디스크의 나라가 됐다. 100년 전통의 당뇨병 치료제 전문 기업이 비만 치료제 ‘위고비’로 대박을 친 것이다. 당뇨병 임상시험에서 체중이 크게 줄어든 ‘부작용’이 특효약으로 둔갑했다. 이 약으로 일론 머스크 등이 감량에 성공하면서 한 세트 180만 원짜리 주사약도 못 구해서 난리다. 이 회사 시가총액은 839조 원으로 덴마크 국내총생산(GDP)의 1.5배를 넘어섰고, 압도적 유럽 1위다. 덴마크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6%에서 1.2%로 두 배나 끌어올렸을 정도다.

가난해진다는 유럽 곳곳에서 초격차 기업 활약이 눈부시다. 압도적 경쟁력으로 나라 전체를 먹여 살린다. 핀란드 노키아 신화가 아일랜드 바이오,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덴마크의 비만 치료제로 부활하고 있다. 단일 기업 비중이 너무 높지 않으냐는 비딱한 시선은 사치다. 부러울 따름이다.
주요뉴스
기사댓글
AD
count
AD
AD
AD
AD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