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주지 못한 말[유희경의 시:선(詩:選)]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0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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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그렇게 하면 예순이 되겠지./ 이런 건 늘 며칠 후처럼 느껴진다./ 유자가 숙성되길 기다리는 정도의 시간.// 그토록이나 스무 살을 기다리던 심정이/ 며칠 전처럼 또렷하게 기억나는 한편으로// 기다리던 며칠 후는/ 감쪽같이 지나가 버렸다.’

- 김소연 ‘며칠 후’(시집 ‘촉진하는 밤’)


다 늦은 시간, 서점에 찾아온 어린 학생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나는 애써 못 본 척하였다. 이럴 때 호들갑을 떨며 위로를 건네거나, 그럴 일이 아니다. 다그치는 것은 도움이 되지 못한다. 지금은 입을 꾹 다물고 그가 하고 싶은 말을 들어줄 때이다.

막막하다고 한다. 대학 졸업이 목전인데 자신의 삶은 물음표투성이라서. 두렵다고 한다. 섣부른 결정이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될까 봐서. 잘 안다고 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나이이고, 겁 없이 나아가도 된다는 것을. 모두그리 다독여주는데도 가시질 않는 막막함을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요. 안타깝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너만 할 수 있지 않겠니, 하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단다. 그저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야. 이렇게 답할 수도 없다. 그러니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멀거니 지켜보는 수밖에. 그가 돌아간 뒤에도 심란한 밤이 이어진다. 볼 것 없는 밤 창문에는 어렴풋한 모습의 내가 어리어 있다.

‘나 역시 같은 질문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어요. 미래는 막막하고 현재는 보잘것없고, 아무 준비도 못 하고 있죠. 예순이 되고 일흔이 되어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그리하여 이제 나는, 이 불안이 차라리 흥미롭습니다. 내 삶은 어떻게 될까. 달리 근사할 리 없겠지만 주어진 날들은 감쪽같이 지나가 버리니까요.’ 차마 해주지 못한 말을 뒤늦게 중얼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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