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놂’은 값싼 욕망 아닌 현재를 즐기는 용기[김헌·김월회의 고전 매트릭스]

  • 문화일보
  • 입력 2023-09-22 08:59
  • 업데이트 2023-09-22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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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한가위

이백 ‘춘야연도리원서’

놀이는 문명원천 나아지려는 희망용기가 만들어

이백은 연회서 “왜 지금 안 노나 더 즐겨라”일갈

삶의 고통도놀면서 기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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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은 용기를 먹으며 자라난다. 희망을 품기 참으로 어려운 시절임에도 희망을 노래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음은 그들이 용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용기는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힘을, 사실을 책임질 수 있는 힘을 안겨준다. 희망은 이러한 힘을 거름 삼아 피어난다. 그러면 용기는 무엇을 먹으며 자라나는 걸까?

예로부터 그 가치가 강조되어 온 ‘놂’은 용기를 배양하는 원천의 하나였다. 용기는 본래 무언가를 기어코 이룩해내는 힘을 가리켰다. 그래서 공자는 “어진 이에게는 반드시 용기가 있다”(논어)고 단언했다. 어진 이는 용맹하거나 용감하기 마련이라는 뜻이 아니다. 어짊이란 덕목을 끝까지 이루어내는 힘을 지녔기에 어진 이가 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 힘이 바로 용기다.

놂은 그러한 용기를 빚어내 준다. ‘놀이하는 인간’(homo ludens)이란 말처럼, 사람이 다른 존재와 달리 문명을 일구어낼 수 있었던 까닭은 놀이할 줄 아는 힘을 지닌 덕분이었다. 문명은 지금보다 더 나아지겠다는 희망을 품고 이의 실현을 위해 끝까지 노력할 때, 그러니까 용기를 발휘할 때 비로소 형성되고 진전된다. 놀이함, 곧 놂에는 이처럼 희망과 용기를 길러내는 힘이 내재돼 있었다. 그만큼 놂이 대단했음이다. 예로부터 놂을 다룬 글이 적지 않은 이유요, 명시와 명문 가운데 놂과 연관된 것이 유독 많은 까닭이다.

당나라의 대시인 이백이 지은 ‘춘야연도리원서’도 그중 하나다. “봄밤 복사꽃 오얏꽃 핀 정원에서 쓰다”라는 제목의 이 글에는, 이백이 고향을 떠나 타지를 떠돈 지 6년여 만에 만난 아우들과 어느 봄날, 복사꽃과 오얏꽃이 흐드러지게 핀 정원에서 연회를 즐겼을 때의 감회가 오롯이 담겨 있다. 술술 풀어놓는 오랜 회포에 형제의 정은 갈수록 깊어 갔고, 달이 뜨자 주위를 가득 채운 복사꽃잎과 오얏꽃잎은 말간 달빛을 투사하며 화사함을 빛내고 있었다. 아우들이 흥에 겨워 시를 읊조리는데 하나같이 형인 자신보다 뛰어나니 기꺼운 마음이 한없이 커져만 갔다.

그렇게 풍성한 주연상에 꽃을 마주하고 앉아 술잔 돌리며 달 아래 취해가는 순간, 문득 “옛사람들 촛불 들고 밤늦게까지 놀았음에는 다 까닭이 있어서였구나!” 하는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수백 년 전 선인들이 “낮은 짧고 밤이 긴데 어찌하여 촛불 들고 놀지 않는가!”라고 읊은 시구가 온 마음에 진동하였다. “어찌하여 촛불을 들고 놀지 않는가”, 한문으로 ‘何不秉燭遊(하불병촉유)’인 이 일갈은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는, 고대 중국판 ‘카르페 디엠’(Carpe diem)의 선언이었다. 이백은 아우들과 함께 놂이 절정으로 치닫는 순간 이 선언의 참뜻을 깨닫고는 전율했던 것이다.

그것은 인생이 얼마 안 되니 즐길 수 있는 대로 즐기자는 값싼 욕망의 발로가 결코 아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안이 되고 도움이 되며 기쁨이 되는 이 순간이, 이 자리가 영원히 지속되었으면 하는 절실한 바람이었다. 이백이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다며 탄식한 까닭도 이렇게 서로에게 힘이 되고 즐거움이 되는 순간과 자리가 얼마 안 되는 데서 오는 야속함의 표출이었다. 그렇기에 이 순간, 이 자리에서의 놂은 더욱더 값졌다. 그 덕분에 사회가 주는 고통을, 자연이 주는 상처를 버텨내며 고단한 삶을 살아내는 데 동력이 되는 희망과 용기를 품어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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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있으면 한가위다. 한가위만큼은 유난했던 폭염 아래 다사다난했던 여름을 살아낸 우리가 희망과 용기를 다시 품어내는 놂의 시간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송대의 대문호 구양수는 청명하기 그지없는 가을 달밤을 이렇게 노래했다. “하늘 높고 말간 달빛 강물에 녹아든다. / 강은 넓고 바람 산들, 수면엔 서늘함이 감돌고. / 강물은 하늘 함께 어우러져 한 빛인데 / 하늘에는 밝은 빛 가로막는 구름 한 점 없고.”(달[月]) 모쪼록 놂을 가로막는 구름 한 점 없는 한가위이기를 기원한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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