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고 힘들어도 버티며 지켜오신 분… 오늘밤 꿈에라도 뵈었으면[그립습니다]

  • 문화일보
  • 입력 2023-10-11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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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버지 생전 모습. 나와 함께 찍은 사진을 찾았는데, 지면에 실을 만한 게 없어 안타까웠다.



■ 그립습니다 - 아버지 한규석(1932∼2011)

아버지는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니고 바로 생활 전선에 뛰어드셨다. 많은 밑바닥 직업을 거치셨다. 미군이 쏘는 총알을 피해 가면서 PX 물건을 빼 와서 팔기도 하셨고, 나이트구락부에서 지배인도 하시는 등 살기 위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이것저것 하셨다. 그렇게 모으신 돈으로 집 근처에 중국집을 운영하시면서 돈을 버셨다.

아버지는 소위 못 배우신 분이었다. 자신은 못 배웠지만 자식들은 제대로 교육시키고 싶으셨는지 우리 삼남매 모두 등록금이 비싼 유치원과 사립 초등학교로 입학시켰고, 맹모삼천지교 말처럼 유흥가 한가운데 있던 집에서 신흥 명문 아파트단지로 이사했다. 그 동네 내 친구들의 부친들은 아버지와는 달리 대졸 이상 출신이 많고 사회 고위층들이 많았다. 아버지의 학창 시절을 들은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나는 아버지 학력과 직업을 얘기하는 친구들이 마냥 신기했다.

아버지는 엄격하고 무섭고 자기 고집이 심하셨던 말이 잘 안 통하는 분이셨다. 6·25전쟁 때 한쪽 귀를 다쳐서 잘 안 들리시기 때문에 항상 목소리가 컸는데 그 이유를 알면서도 내게는 항상 화가 난 거처럼 들렸고 자연스럽게 아버지와의 대화는 끊어졌다.

그런 아버지가 뇌암으로 돌아가신 지 1년 후, 어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옛 추억을 들려주셨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병원에서 집에 돌아갈 생각을 않고 나만 계속 쳐다보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나를 낳은 후유증으로 온몸이 뒤틀렸을 때, 지네를 닭백숙과 함께 쪄 먹으면 좋아진다는 소리를 듣고, 바퀴벌레도 무서워 못 잡는 아버지가 지네의 다리를 일일이 잘라서 어머니가 드시도록 했다. 어머니가 동생을 낳고 하혈이 심해 죽을 고비에 있을 때 아버지는 큰 병원들을 돌아다니며 울고불고 사정해서 수혈할 피 한 팩을 구해오셨다. 내가 대학 입학이 결정되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안방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아버지는 그런 분이셨다.

어느 날, 아버지 친구분이 나를 찾으셨다. 그분도 뇌암으로 투병 중이셨는데 병색이 심해 보였다. 그분의 말씀. “자네 아버지가 꿈에 자꾸 나타나. 내게 남은 마지막 친구였는데 나보다 먼저 가니까 내가 너무 심심해. 자네 부친을 보고 싶어서 자네를 불렀어. 자네 부친이 생전에 자네를 많이 걱정했어. 내 자식들이 좋다는 납골공원 여기저기를 샀는데 그때마다 다 팔았고 가족 모두 모인 자리에서 결정을 했다네. 내가 죽으면 자네 부친 옆자리에 묻히고 싶다고. 그런데 그 친구가 현충원에 있어서 내가 거기는 못 가잖아. 그전에 그 친구가 있던 납골공원 자리에 내가 들어가고 싶네(아버지는 납골공원에 계시다가 현충원으로 모셨다).” 그분은 함께했던 젊은 시절을 얘기하시며 아버지의 눈빛으로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셨다.

병실을 나온 나는 주저앉아서 고개를 떨구고 꺼이꺼이 울었다. 나는 아버지가 생전에 진정한 친구 하나 없는 참 불쌍하고, 안타까운 분이라고 생각했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연세가 드실수록 굽은 어깨의 아버지가 자식들 외면에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생각하면 너무나 죄송스럽다. 내 나이 50을 넘어서야 알았다. 아버지도 울고 싶을 때가 많았겠구나, 가족 몰래 흘렸을 눈물이 많았겠구나. 참 많이 외로우셨겠다. 옆에서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해드리고 생전에 사랑한다는 말씀을 못 드린 게 너무나 한이 된다. 그래서 현충원에 가서 아버지를 뵐 때마다 요즘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얘기한다. 생전에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누가 그러더라. 아버지를 삼행시로 하면 ‘아프고 힘들어도 버티며 지켜오신 분’이라고. 오늘 밤 아버지가 꿈에라도 나타나시면 좋겠다. 죄송하고 고맙고 사랑합니다.

장남 한원진(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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